어른이지만 어른 아닌, 우리는 모두 ‘미성년’이다 [BIFF][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영화 '미성년'※주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영화 ‘미성년’은 처음부터 끝까지 미성년들의 영화다. 극 중 미성년인 ‘주리’와 ‘윤아’가 주인공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런 표현을 쓴 것은 아니다. 나는 이 영화가 성년들의 ‘미성년’, 그리고 ‘미성년’들의 성년을 그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른스럽다’와 ‘책임감 있다’가 같은 의미로 쓰이는 건 의아한 일이다. 단순히 어른이 된다고 해서 책임감이 갑자기 커지지는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겉으로는 어른일지라도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사실 유치한 ‘미성년’에 머무르고 있는 순간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저 의연한 척, 어른인 척 연기하는 법에 익숙해짐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극 중 ‘영주’는 이러한 맥락에서 미성년이다. 남편의 불륜을 알게 되었을 때도, 불륜 상대가 남편의 아이를 임신, 심지어는 출산까지 하게 되는 순간까지도 영화 속 그녀는 격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분노나 슬픔 따위를 드러내기는커녕, 딸 ‘주리’의 도시락을 살뜰히 챙기고 불륜 상대인 ‘미희’, 그 딸인 ‘윤아’의 감정까지 걱정하는 장면까지 등장한다. 그러나 그녀는 전혀 괜찮지 않았다. ‘주리’의 도시락을 챙겨주러 나온 그녀의 발은 맨발이었다. ‘미희’와 ‘윤아’를 만난 후에는 뒤돌아서 눈물을 흘렸다. 정말 괜찮지 않은 상황에서 의연하게 행동하는 그녀의 모습을 누군가는 어른스럽다고 말할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성당에서 고해성사하는 그녀의 모습은, 어른이라기보다는 슬픔을 숨기고 잘 연기할 수 있도록 배운, 즉 어른인 척을 배운 미성년의 모습에 가까웠다.
한편 ‘미희’는 전혀 다른 맥락의 미성년이다. 불륜 상대와의 사랑을 꿈꾸며 낳은 아이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딸 ‘윤아’에게 자신의 삶을 한탄하는 모습, 천진한 모습으로 ‘주리’의 과자를 먹는 모습, ‘영주’가 바라보던 가게에서 일하는 모습까지. 그녀는 어른스럽다는 표현과는 한없이 멀게 느껴지는 인물이다. ‘영주’가 감정을 숨기고 어른처럼 연기하는 인물이라면, ‘미희’는 감정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는 인물이다. 불륜일지라도 사랑을 믿었던 그녀의 모습은 미성년, 어쩌면 그보다도 더 어린아이였다. 결국 ‘영주’도 ‘미희’도, 서로 형태는 다를지라도 성년이 겪는 심리적 미성년의 상태, 즉 ‘성년의 미성년’을 나타내는 인물들인 것이다.
진짜 미성년인 ‘주리’와 ‘윤아’는 ‘미성년의 성년’을 그리고 있다. 둘은 ‘대원’의 불륜 탓에 복잡하게 얽혀 버린 관계다. 미성년답게 둘은 극 초반 머리채를 잡고 싸우기까지 하는 격한 모습도 보이지만, 불륜 관계의 뒤처리와 ‘미희’의 아이를 함께 겪어가면서 차차 관계가 변화한다. 다시는 보지 않을 사이에서 열일곱 살 같은 학교 친구로, 이후에는 한 생명의 마지막을 함께 지켜보는 관계로. 관계가 변화하면서 그 형태가 어떠했던 둘은 늘 서로에게 진심만을 보였고, 그 진심에 대해서는 책임을 졌다. 그게 적의든 호의든 말이다. 상대를 진심으로 대하고, 그 진심에 대해 마지막까지 책임지는 것. 정작 진짜 미성년인 그들이야말로 성년에게 요구되는 그것을 해내고 있었다.
물론 ‘주리’와 ‘윤아’도 언젠간 ‘영주’와 ‘미희’처럼 성년의 ‘미성년’을 경험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분명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영주’와 ‘미희’, 심지어는 ‘대원’조차도 그 시절에는 자신들이 그렇게나 미성숙한 성년의 삶을 살아갈 것으로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객 중 ‘어른의 미성년’을 겪고 있는 누군가가 초코우유와 딸기우유를 마시는 그들의 모습에서 어떤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면, ‘주리’와 ‘윤아’의 역할은 충분히 다 한 것이 아닐까. 언젠가는 심리적 미성년이 될 그들일지라도 현재 그들이 선보이는 ‘미성년의 성년’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씨네리와인드 박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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