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가 아닌 '무언가' 되고 싶었던 공주, 그가 일궈낸 것은 [BIAF]

'아리테 공주', 공주가 저주의 마법에서 벗어난 방법

김준모 | 기사입력 2019/10/21 [09:55]

공주가 아닌 '무언가' 되고 싶었던 공주, 그가 일궈낸 것은 [BIAF]

'아리테 공주', 공주가 저주의 마법에서 벗어난 방법

김준모 | 입력 : 2019/10/21 [09:55]

▲ <아리테 공주> 포스터.     © Studio 4°C



이번 제21회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특별전의 주인공은 카타부치 스나오 감독이다. <이 세상의 한구석에>를 통해 주목받는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이름을 올린 그는 이번 영화제에서 <아리테 공주>와 <마이 마이 신코 이야기> 두 편으로 한국 관객들과 만나게 되었다. <아리테 공주>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자리에서 그는 원작과 다른 이야기 전개에 대해 "원작과는 다른 주체적인 주인공을 그려보고 싶었다"고 답했다.

 

우연의 반복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모습이 아닌 주인공이 주체적으로 운명을 개척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그의 말은 카타부치 스나오 그 자신의 삶을 떠올리게 만든다. 애니메이션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었지만 주체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없었던 세월 동안 일을 그만두고 싶었을 때도 있었다는 감독은 41살의 나이에 <아리테 공주>를 통해 감독으로 데뷔했고 현재 일본 애니메이션계를 이끌어 나갈 감독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 <아리테 공주> 스틸컷.     © Studio 4°C



가타부치 스나오 감독의 데뷔작 <아리테 공주>는 서양 중세를 배경으로 했다는 점과 귀여운 캐릭터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신나는 모험극이나 환상적인 판타지를 기대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작품은 <이 세상의 한구석에>처럼 정적이고 진중하며 울적한 분위기를 유발한다. 공주 아리테는 작은 키에 볼품 없는 외모를 지니고 있다. 그녀의 모습을 모르는 이웃 나라 왕자들은 아리테와 결혼하기 위해 왕이 낸 보물찾기에 열을 올린다.

 

왕은 공주를 미끼로 전국 각지에서 마력을 지닌 보물들을 왕자들을 통해 모은다. 아리테는 성 안에만 갇혀 있는 자신의 모습을 좋아하지 않는다. '공주'라는 신분이 아닌 '무언가'가 되고 싶은 아리테는 탑에서 빠져나와 성 밖으로 나가려고 하나 실패하고 이런 아리테의 모습에 왕과 신하들은 실망한다. 왕실의 어두워진 분위기를 반영하듯 음침한 분위기의 마법사가 나타나 공주와 결혼하겠다 말한다.

 

아리테가 성에서 나가고 싶어 하는 건 저주에 걸렸기 때문이며 그 저주를 풀 수 있는 건 자신뿐이라 말하는 마법사는 아리테의 외형을 성숙하게 바꾼 건 물론 그녀에게 최면 마법을 걸어 자신에게 복종하게 만든다. 마법사의 성에 갇힌 아리테는 수동적으로 변하고 왕자가 자신을 구하러 오기만을 하루하루 기다린다. 마음 속으로는 저주를 풀어야 된다는 걸 알지만 마법사의 강한 마법은 서서히 정신마저 복종시킨다.

 

▲ <아리테 공주> 스틸컷.     © Studio 4°C



작품은 세 가지 소재를 통해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아리테의 모습을 그려낸다. 첫 번째는 손이다. 아리테는 손을 통해 무언가를 만드는 일에 관심이 많다. 도입부에서 신분을 숨기고 몰래 마을로 내려간 아리테는 길드에 들어가 바느질 기술을 배우려고 한다. 손은 일을 하고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신체의 도구이다. 아리테는 손을 통한 작업이 인간이 부리는 마법이라 생각한다.

 

두 번째는 마법반지다. 마녀에게 받은 이 마법반지는 세 가지 소원을 이뤄준다. 아리테는 마법에 걸린 상태에서 두 개의 소원을 사용한다. 첫 번째는 자신이 갇힌 더러운 지하실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왕자가 자신을 구해줄 때까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자수(刺繡)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대다수의 관객들은 아리테의 세 번째 소원이 마법사의 저주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게 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아리테를 저주에서 구해내는 건 마법사의 공포 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지닌 소녀 앰플과 아리테 자신의 의지라는 점에서 마법반지는 일종의 맥거핀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마법반지는 작품의 세계에서 왜 마법사들이 사라졌는지를 보여주는 소재라 할 수 있다. 마법은 자신의 의지나 노력이 아닌 주문이고 요행이다. 이에 의존했던 마법사들은 진정한 자신을 찾지 못했고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했다.

 

▲ <아리테 공주> 스틸컷.     © Studio 4°C



세 번째는 물이다. 마법사는 마법의 돌을 이용해 한때 녹지였으나 사막화가 되어버린 마을 사람들에게 물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평생 죽지 않는 자신의 식사를 매일 제공하라는 저주를 내린다. 물은 모든 생명체에게 꼭 필요한 존재이다. 물이 없어 갈라진 땅과 말라비틀어진 식물도 다시 물을 주면 살아나고 살기 위해 떠났던 동물들 역시 돌아온다. 물은 생명의 보고이자 열쇠이다.

 

마법사의 통제 안에 있던 물이 해방되고 황야가 푸른 들판으로 바뀌는 순간 세상은 변하게 된다. 이런 세상의 변화는 아리테가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보여준다. 아리테는 공주라는 신분에 갇혀 있었고 이 신분 때문에 남자에게 사랑받기 위해 노력해야만 하는 원하지 않는 역할을 해야만 했다. 세상에 관심이 많고 더 많은 일을 해보고 싶은 꿈 많은 소녀는 대지를 적시는 물처럼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희망을 보여준다.

 

카타부치 스나오 감독은 원작동화에 새로운 색을 부여하여 자신만의 스타일을 갖춘 색다른 작품을 탄생시켰다. 공주와 왕자, 마법사가 등장하지만 모험의 색체가 강하지 않고 마법과 저주가 등장하지만 판타지의 매력이 짙지 않다. 그 대신 한 명의 주체로서 자신의 정체성과 가능성을 찾아나가는 한 편의 성숙한 성장드라마를 완성시켰다. <아리테 공주>는 여성 서사와 정체성, 개인의 내면 의식 탐구라는 카타부치 스나오 감독의 작품세계를 잘 보여주는 데뷔작이라 할 수 있다.

 

[씨네리와인드 김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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