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 영웅은 없다, '플래툰'

미국이 써내려가는 월남전의 아픈 역사

김수민 | 기사입력 2019/11/18 [10:54]

전쟁에 영웅은 없다, '플래툰'

미국이 써내려가는 월남전의 아픈 역사

김수민 | 입력 : 2019/11/18 [10:54]

 

▲ '플래툰' 스틸컷.     © (주)시네마천국



전쟁에는 영웅도, 승자도, 패자도 없다. 전쟁은 아주 참혹하고 비인간적이다. 이 영화의 테마곡인 현을 위한 아다지오가 들려올 때마다 나는 그 잔인함을 마주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곤 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크리스는 소위 말하는 지식인이다.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고, 명문대를 나왔으며, 월남전에 자원입대한다. 가난한 사람과 배우지 못한 사람만이 어쩔 수 없이 전쟁터로 끌려나가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크리스는 이 영화의 프로타고니스트는 아니다. 인문학에서는 프로타고니스트를 앞에 나서서 논쟁을 제기하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크리스는 정의를 중시하는 인물이지만, 홀로 나서 주류에 반하는 의견을 제기할 만큼의 패기를 가진 인물은 아니다. 그가 존경하는 인물은 인간미 넘치는 군인, 부대장 일라이어스다. 일라이어스는 크리스가 자신을 다시 되돌아보게끔 만드는 존재다. 이 영화의 프로타고니스트인 그는 안타고니스트에 맞서 논쟁을 제기한다.

 

그리고 나는 이 작품의 안타고니스트를 반즈 중사라고 보았다. 반즈 중사는 군대 조직의 위계를 중시하는 인물로, 모두가 두려워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그는 조직에 반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 전쟁상황이라는 특수성은 무차별한 살인을 정당화시킨다. 따라서 그는 베트남의 한 마을을 침공하여 그곳의 주민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인다. 아무도 그의 광기 어린 모습에 반기를 들지 못하고, 심지어 몇몇은 그와 함께 동조하기도 한다. 이때 앞으로 나서는 인물이 바로, 일라이어스다.

 

 

▲ 윌렘 데포(일라이어스 그로딘 역)와 톰 베린저(밥 반스 역). 영화 '플래툰' 中.     © (주)시네마천국



 

반즈는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믿지’. 전쟁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시각은 확연히 상반된다. 따라서 누구를 프로타고니스트로 정하느냐에 따라서 상대는 안타고니스트가 될 수밖에 없다. 이 영화에서는 안타고니스트를 개인으로 상정하고 있으나, 때로 그것은 사회 구조일 수도 있고, 막강한 권력일 수도 있으며, 하나의 이데올로기일 수도 있다. 사실 이는 우리에게 상식처럼 통용되는, 당연한 것들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프로타고니스트는 당연함에 의문을 제기하는 인물이다. 전쟁상황에서 점점 인간성을 잃어가는 군인들에게, 일라이어스는 질문한다. ‘왜 아무도 말리지 않으셨습니까?’

 

하지만 인류애를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프로타고니스트의 결말은 비극적이다. 살고자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그의 모습에서 다시 한번 현을 위한 아다지오가 흘러나온다.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사람은, 놀랍지 않게도 이 영화의 안타고니스트, 반즈다. 보편적 선을 추구하던 일라이어스가, 적대자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는 결말은 우리에게 충격을 선사한다. 일라이어스는 자신의 신념이 옳다고 믿었기에, 권력으로 대변되는 반즈의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였다. 그리고 그 지적의 대가로, 목숨을 잃었다. 프로타고니스트가 위대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결국 반즈도 자신의 행동에 대한 나름의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이 영화에서는 둘 중 누가 정답인지를 이분법적으로 밝혀내기보단, 전쟁의 참혹함을 프로타고니스트와 안타고니스트의 대립으로 나타내고 있다. 전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크리스의 마지막 내레이션에서 드러나듯, ‘적은 바로 우리 안에 있었다.’

 

[씨네리와인드 김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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