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살 소년이 짊어진 삶의 무게, '가버나움'

당신이 마주해야만 하는 이야기

전세희 | 기사입력 2019/11/22 [13:40]

12살 소년이 짊어진 삶의 무게, '가버나움'

당신이 마주해야만 하는 이야기

전세희 | 입력 : 2019/11/22 [13:40]

▲ <가버나움> 포스터     © 네이버 영화


레바논의 12살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 부모를 고소한다. 자신을 태어나게 했기 때문에. 분노로 가득 찬 소년의 얼굴로 영화 <가버나움>은 시작한다.

 

<가버나움>은 레바논 소년 '자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자인은 베이루트의 빈민가에서 자라고 있다. 학교에 다니긴커녕 자인의 하루는 생계를 위해 일만 하다가 끝난다. 자신보다 어린 동생들도 챙겨야 한다. 배달 일을 하는 슈퍼의 주인 '아사드'가 동생 '사하르'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자인의 부모는 아이들에게 관심이 없다. 사하르가 초경을 시작하자마자 아사드에게 팔아넘기듯 시집보내버린다. 이에 분노한 자인은 집을 나와 에티오피아에서 온 '라힐'과 그녀의 아이 '요나스'를 만나게 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오는 것은 한숨과 눈물뿐이었다. 대체 저 어린아이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것일까. 친구들과 뛰어놀아야 할 나이에 왜 길거리에서 일을 해야 하며, '조혼'이라는 이해하기 힘든 풍습 때문에 강제로 시집보내지는 것일까. 그리고 왜 영화 속 어른들은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행동하고 있는가. 방치되고 착취되는 아이들의 모습을 러닝타임 동안 가만히 보고 있는 것은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

 

 

▲ <가버나움> 스틸컷     © 네이버 영화

 

자인이 부모를 고소하여 법정에 서기 전까지, 그는 세상에 없는 존재였다. 실제로 존재하지만 서류상으로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의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자인은 자신의 나이도 정확하게 알지 못한 채 자라고 있었다. 본인의 생일이 언제인지는 알고 있었을까. 라힐의 집에서 누군가가 버린 케이크의 촛불을 분 것이 아마 태어나서 처음이었을 것이다. 탄생을 축하받아야 할 이들이 태어났다는 이유로 힘겨운 삶을 살아야 하는 사실은 견디기 힘들었다.

 

이러한 지옥 같은 상황에서 자인과 라힐, 이 두 사람의 연대는 더욱 감동이었다. 라힐은 불법체류자 신세에 언제 잡혀갈지 모르는 처지인데도 불구하고 자인을 외면하지 않았다. 떠도는 자인을 집으로 데려와 씻겨주고 재워주었다. 자인을 외면하지 않은, 유일한 어른다운 인물이었다. 자인 또한 라힐이 잡혀간 뒤에도 요나스를 돌보며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요나스를 자신의 친동생처럼 생각하며 보살폈다. 생명을 중요시하지 않던 베이루트의 어른들과는 달랐다. 이 둘은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행동을 자연스럽게 하고 있었다. 그것이 옳기 때문에. 타인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이 둘이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들을, 왜 베이루트의 다른 이들은 몰랐으며 이 사회는 묵인해왔던 것일까.

 

 

▲ <가버나움> 스틸컷     © 네이버 영화


<가버나움>의 리뷰 중 '아이를 기를 자격도 없으면서 왜 낳냐'라는 문장을 많이 찾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영화가 말하고자 했던 것이 과연 그것이었을까. 물론 <가버나움> 속 자인의 부모가 아이를 돌보지 않은 것은 맞다. 철저하게 아동을 학대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사회라도 나서서 자인을,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삶이 고통이라는 말을 무덤덤하게 뱉는 아이를 당연하다는 듯이 여기는 사회가 과연 옳은 것일까. 어린 소년이 혼자 버스를 타고, 밤길을 돌아다니고, 길에는 아이들이 본인의 몸 만한 짐을 들고서 돌아다니는데 그 누구도 이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자인이 고소한 대상은 부모를 넘어서 그를 고통 속에 방치한 사회가 아니었을까.

 

<가버나움>은 올해 초에 관람했지만 2019년이 다 끝나가는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 작품이다. 여전히 아이들의 눈동자가 생생하고 자인의 대사가 귓가에 맴돈다. 그들의 고통을 바라보는 것이 미안하고 두려웠기에, 이 영화를 다시 관람하기까지 큰 용기가 필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개월 만에 <가버나움>을 다시 본 이유는 이들의 현실을 외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인물들이 '관습'이라는 이유로 방치되고 학대당하는 사회를 인지하고, 그 잘못됨에 대해서 외치고 싶었다.

 

레바논이 처한 문제에 주목했던 나딘 라바키 감독 덕분에 <가버나움>이 제작될 수 있었으며, 아동학대와 난민, 조혼 등의 이슈가 주목받을 수 있었다. 실제 난민 출신이던 영화 속 대부분의 배우와 그들의 가족은 '가버나움 재단'을 통해 지원을 받고 있다. 시리아 난민 소년이던 자인 역의 자인 알 라피아는 가족들과 노르웨이에 정착하여 학교에 다니고 있다. <가버나움> 속 문제를 인식하고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나 또한 이들의 현실을 마주 보고, 이들과 연대하고자 한다. 힘든 날을 보내고 있을 제2의 자인과 사하르가 활짝 웃을 수 있기를 바라며. 제2의 라힐과 요나스가 행복한 하루를 보낼 수 있길 바라며.

 

당신 또한 <가버나움>을 외면하지 않고 마주할 수 있기를 바란다.

 

[씨네리와인드 전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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