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립', 풋풋한 첫사랑의 줄다리기

유수미 | 기사입력 2019/11/25 [16:33]

'플립', 풋풋한 첫사랑의 줄다리기

유수미 | 입력 : 2019/11/25 [16:33]

▲ <플립> 스틸 이미지  ©유수미

  

 

"첫눈에 반했다는 게 이런 걸까?" 7살 소녀 줄리는 브라이스의 주변을 맴돌며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한다. 그 후 6년 동안 해바라기처럼 브라이스만 바라본 줄리. 브라이스를 '내게 첫 키스를 줄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그의 뒷모습을 몰래 훔쳐보고, 향기를 맡고,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키우던 닭이 알을 낳자 브라이스에게 달걀 선물 공세를 시작하는 줄리. 미소를 지으며 달걀을 받는 그를 보며 '다행이다. 마음에 들었나 봐.', 문도 두드리지 않았는데 문을 열어주는 그를 보며 '내가 오길 기다렸나 봐.'라며 줄리는 설렘을 느낀다.

 

'혹시 그 아이도 날...?' 짝사랑의 즐거움은 줄리뿐만 아니라 대게의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다.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오붓한 데이트를 하는 상상을 하고, 별것 아닌 것 에도 의미 부여를 하며 기대감을 안게 되는 등 짝사랑은 기분 좋은 설렘을 안겨준다. 더군다나 사랑에 빠지게 되는 순간은 말로 설명될 수 없듯, 예기치 못하게 찾아온다는 점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은 특별하게 느껴진다. 흔히 친구들이 "너 왜 좋아하게 됐어?" 라고 물어보면 "나도 몰라." 라고 답하는 것처럼 사랑은 '그냥'이라는 말이 통용된다.

 

나도 짝사랑을 해본 경험이 있다. 자꾸만 그 사람 얼굴에 눈길이 가고 혹여나 길을 가다 닮은 사람이라도 보면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느낌을 받는다. 어떤 때는 집에 같이 가고 싶어서 일부러 같은 버스를 타려고 버스 2-3대를 보낸 적도 있다. 나를 봐줬으면 좋겠어서 일부러 그 애 주위를 맴돌기도 하고. 카카오톡 답장이라도 오면 세상을 다 가진 듯 좋았다.

 

이렇듯 현재 나의 상황과 줄리의 상황이 겹쳐 보여 그녀의 감정에 공감이 갔다. 내레이션으로 펼쳐지는 줄리의 속마음은 마치 나의 마음 같았고 긍정적이고 낙천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녀의 관점이 무엇보다 와 닿았다.

 

▲ <플립> 스틸 이미지  ©유수미

  

"이제 그만 벗어나고 싶어." 브라이스는 줄리의 러브 빔이 부담스럽다. 줄리는 틈만 나면 브라이스를 쳐다보고 있거나 언제는 그의 냄새를 맡곤 했는데, 그럴 때면 브라이스는 꺼림칙한 감정을 느꼈다. 그리하여 브라이스는 다른 여자와 다정한 수다를 떠는 등 줄리에게 벗어날 방법을 이리저리 궁리한다. 건너편에서 달걀 바구니를 들고 걸어오는 줄리를 보며 '또 시작이네.', 부끄러운 표정으로 달걀을 건네는 모습을 보며 '이걸 또 어떻게 처리한담.' 라며 남몰래 얼굴을 찌푸리는 브라이스. 살모넬라균이 묻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족들의 말에 그는 달걀을 그녀 몰래 쓰레기통에 갖다 버린다.

 

친한 친구의 첫 연애담을 들은 적이 있다. 남자의 적극적인 애정공세로 친구는 남자와 얼떨결에 사귀게 된다. 남자는 친구를 매우 좋아하지만 친구는 남자가 점점 부담스럽게 느껴질 뿐이다. 남자가 꽃을 주면 쓰레기통에 버리고 "마음이 식은 것 같아..." 라는 문자를 보내는 친구.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좋아서 한 행동이 상대방에겐 오히려 거부감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라는 말을 믿고 계속 들이댄다면 그건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이라고 여겨지기도 했다. 친구의 연애담이 영화에 오버랩되면서 브라이스의 마음 또한 이해할 수 있었다.

 

줄리의 관점과 브라이스의 관점, 이 두 가지 시점이 교차되면서 영화는 전개된다. 줄리가 브라이스의 행동을 긍정적으로 해석했다면 그건 브라이스가 예의상 그렇게 행동한 것뿐이다. '왜 자꾸 귀찮게 해.' 라는 속마음이 브라이스의 전부인 것이다. 러브 빔을 쏘아대는 줄리와 철벽을 치는 브라이스. 과연 이들의 교차편집은 어떤 결말을 맺을까?

 

▲ <플립> 스틸 이미지  ©유수미

  

'내 첫 키스의 대상은 바로 너야.' 라고 생각했던 줄리와 '그만 떨어져줄래?' 라고 생각했던 브라이스. 그런데 이 둘의 행보가 바뀌었다. 브라이스가 줄리가 준 달걀을 몰래 버리는 것을 목격한 후로 그녀는 브라이스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반면 브라이스는 줄리의 표정을 살피며 걱정을 하기 시작한다. 수업시간에도 멍하니 줄리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줄리의 신문기사를 간직하는 등 그에게도 사랑이 싹튼다. 이제는 줄리가 아닌 브라이스가 러브 빔을 쏘아대는 모습을 보며 상황이 뒤바뀐 아이러니가 흥미롭게 느껴졌다.

 

윗 장면, 백라이트가 두 인물을 감싸고 있다. 인물에게 집중되게 해 줄뿐더러 좋아하지만 좋아하는 마음을 쉽게 드러낼 수 없는 것을 은유적으로 나타낸 것 같다. 줄리가 서 있는 공간은 밝은 반면 브라이스가 서 있는 공간은 전체적으로 어둡다. 이는 상황이 역전된 것을 뜻하며 너와 영원히 말을 하지 않겠다는 줄리의 말을 듣고 상처를 받은 브라이스의 상태를 잘 표현해주었다.

 

줄리를 욕하는 친구의 말에 공감을 해주고 남들 다 있는데서 갑자기 그녀에게 키스를 하려는 브라이스. 줄리는 그런 브라이스가 너무나도 밉다. 브라이스는 줄리의 화를 풀어주기 위해 그녀의 집을 몇 번이나 찾아가며 고군분투를 한다.

 

줄리와 브라이스를 보며 사랑의 작대기는 참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여겨졌다. 사랑의 타이밍은 항상 빗나갔고 자꾸만 원치 않는 오해가 쌓여갔다. 세상에 여러 힘든 일이 있어도 사람 마음을 바꾸는 게 제일 어려운 일인 듯하다. 엇갈리는 두 남녀의 사랑은 관객들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며 애간장을 태운다.

 

▲ <플립> 스틸 이미지  ©유수미

    

"뭐 하는 거야?" 줄리가 앞마당에 무작정 땅을 파는 브라이스를 보고 한 말이다. 그런데 브라이스가 나무를 심는 것을 보고 줄리의 마음이 바뀐다. "플라타너스 나무네." 줄곧 플라타너스 나무 위에 올라가 석양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지만 집주인의 반발로 인해 나무는 무참히 베어진 지 오래였다.

 

줄리는 금세 마음이 풀리며 브라이스를 돕는다. 브라이스의 손이 줄리의 손 위에 옮겨지고 둘은 함께 나무를 심는다. 햇빛은 줄리의 앞마당을 환히 비추고 있으며 빛은 따뜻한 감정과 파릇파릇한 기분을 불러일으킨다. 빛을 받고 있는 잡초의 풀 끝은 바다 위의 물비늘을 보는 것처럼 아름답고 예쁘다. 더불어 그린색의 잡초는 그린 라이트를 뜻하는 것 같기도 하다.

 

영화의 색감은 단아하고 아련하다. 이는 과거의 편지를 펼쳐놓은 듯 첫사랑의 추억 속에 젖게 한다. 두 남녀의 클로즈업된 얼굴을 볼 때면 '내가 줄리 라면.', '내가 브라이스 라면.' 등 두 인물에 더욱 몰입하게 해 준다. 줄리와 브라이스의 순수하고 풋풋한 마음 하나만으로도 영화는 어린 시절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브라이스와 줄리는 서로 엇갈리며 혼자만의 사랑을 했다. 그러나 이제는 둘이 무언가를 함께 해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아직은 작은 나무지만 언젠간 무럭무럭 자라나는 것처럼 그 둘의 사랑도 작은 새싹 일지언정 꽃을 피웠으면 좋겠다.

 

마지막 장면, 카메라가 뒤로 빠지며 이 둘을 하이 앵글로 포착한다. 환기시키며 그들을 놓아주는 느낌이 드는데 '이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라는 메시지를 안겨주는 듯하다. 더 이상 엇갈리지 않고 두 남녀가 사랑의 주파수를 맞춰 나가길 바라본다.

 

[씨네리와인드 유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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