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회고록 쓴 여배우, 그럼에도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는

[프리뷰]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 12월 05일 개봉 예정

김준모 | 기사입력 2019/11/29 [14:05]

'거짓' 회고록 쓴 여배우, 그럼에도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는

[프리뷰]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 12월 05일 개봉 예정

김준모 | 입력 : 2019/11/29 [14:05]

▲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포스터.     © 티캐스트



 

[씨네리와인드|김준모 기자] 인생의 말년에 접어든 여배우가 회고록 발간을 준비한다. 회고록을 미리 받은 가족과 주변 사람들은 그 내용에 실망한다. 딸에 관한 내용은 거짓이고 멀쩡히 살아있는 남편은 죽은 사람이 되어 있었으며 항상 그녀의 곁을 지켰던 매니저 겸 비서에 대한 내용은 한 줄도 없다. 프랑스 영화의 역사를 함께했다 할 수 있는 대배우 카트린느 드뇌브를 주연으로 내세운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잔잔한 드라마와 진실과 연관된 미스터리가 묘한 결합을 이룬 영화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서구권 진출 작품인 이 영화는 그의 전작 <걸어도 걸어도>를 연상시킨다. <걸어도 걸어도>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오래된 갈등과 그 갈등의 원인이 무엇인지 밝혀가는 구조를 통해 가족 간의 따뜻한 사랑을 그려냈는데,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도 비슷하다. 차이점이라면 부자 관계가 모녀 관계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또 두 작품 모두 손주가 등장해 갈등을 완화시킨다는 공통점이 있다. 
  
모녀 관계인 파비안느와 뤼미르 사이 갈등의 원인과 미스터리의 중심에는 사라라는 여배우가 있다. 한때 파비안느의 라이벌이자 뤼미르가 어머니 대신 애정을 품었던 그녀의 존재는 뤼미르가 파비안느에게 지니는 불만과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을 상징한다. 이 오래된 갈등은 뤼미르가 회고록 발간을 축하하기 위해 미국에서 프랑스로 오면서 불이 붙게 된다. 그 책의 안에는 어떠한 진실도 담겨있지 않기 때문이다. 

 

▲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스틸컷.     © 티캐스트

 

파비안느가 진실을 담지 않은 이유는 그녀가 최고의 여배우라는 점에 있다. 배우란 직업은 카메라 앞에서 거짓으로 연기를 해야 한다. 기분이 나빠도 웃어야 되고 반대로 좋아도 찡그릴 줄 알아야 한다. 그녀에게는 회고록 역시 대중에게 선보이는 '작품'과 같다. 작품 속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여배우의 모습처럼 스크린 뒤 '인간' 파비안느 역시 대중에게 보이는 모습이기에, 그녀는 완벽한 엄마이자 여자로 자신을 묘사한다. 
  
이런 파비안느의 선택은 뤼미르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긴다. 파비안느의 이런 교만은 촬영장에서도 두드러진다. 그녀는 자신이 작정하고 한 연기에 대해 OK 사인이 떨어지지 않자, 감독에게 분노를 표하기도 한다.

 

파비안느는 식사 자리에서 자신을 질책하는 뤼미르에게 당당하게 말한다. "네가 나를 용서하지 않아도 세상 사람들은 나를 용서할 것이다." 이 말은 카메라 안에 세월을 바친 그녀가 내세울 수 있는 자신감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은 파비안느가 찍은 영화의 내용을 통해 조금씩 서로의 마음을 알아간다. 

 

파비안느가 찍은 영화는 병에 걸린 어머니가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우주로 향하고 가끔 딸을 만나기 위해 지구로 온다는 내용을 담은 SF물이다. 우주에서는 시간이 아주 천천히 흘러간다는 설정 때문에 어머니는 늙지 않지만 딸은 늙어간다. 이 내용을 파비안느와 뤼미르의 관계에 대입하면, 파비안느는 스타라는 병에 걸려 그 안에서 나오지 못하는 어머니와 같다. 또 영화 속 딸은 우주에 간 어머니를 쉽게 볼 수 없고, 뤼미르 역시 영화에 어머니를 빼앗겨 외로운 유년시절을 보냈다.

 

 

▲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스틸컷.     © 티캐스트



파비안느는 노년의 딸 역할을 맡으면서 뤼미르의 감정을 이해하게 된다. 젊은 시절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어머니에게서 거리감을 느끼는 영화 속 딸처럼 회고록에서조차 자신에 대한 솔직한 마음을 표현해주지 않는 자신에 대해 뤼미르가 느낄 야속함을 헤아리게 된다. 이는 촬영장에서 파비안느의 매니저 역할을 하는 뤼미르 역시 마찬가지다. 뤼미르는 어머니에 대한 원망을 지닌 영화 속 딸의 모습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뤼미르는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우주로 간 어머니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영화 속 딸의 모습을 보며, 자신도 파비안느가 지닌 열망과 삶을 향한 열정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는 점을 알게 된다. 여기에 주변 인물들은 두 사람 사이의 드라마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뤼미르의 남편 행크는 3류 배우지만 자신의 꿈을 향한 의지와 믿음을 가지고 있다. 가족을 정성스레 돌보는 그의 모습은 파비안느로 하여금 가정에 충실한 삶 역시 행복을 위한 선택지가 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손녀 샤를로트는 파비안느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이 있는 뤼미르나 행크와는 달리 있는 그대로의 파비안느를 바라봐 준다. 파비안느는 샤를로트에게 '마법을 이용해 사람을 동물로 반들 수 있다'고 말하는데, 판타지적인 이 요소는 극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풀어줌과 동시에 소소한 유머로 즐거움을 안겨준다. 

 

어린 시절부터 영화에 모든 걸 건 파비안느는 사람을 대하는데 익숙하지 않다. 다른 사람의 내면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통찰력을 지니고 있지만 그 내면에 접근하고 관계를 맺는 방법은 잘 모른다. 파비안느의 영화 인생을 곁에서 도운 비서이자 매니저인 뤼크는 이를 알기에 오랜 시간을 그녀 곁에 있었고, 뤼미르가 어머니에게 품은 오해를 해소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영화 속 어머니로 등장하는 마농은 극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서 갈등 해결의 열쇠가 되는 캐릭터가 된다.

 

▲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스틸컷.     © 티캐스트



영화가 그려내는 파비안느는 거짓 속에 살고 있지만 그 거짓마저 진실로 보이게 만드는 열정과 자신감을 지닌 사랑스러운 인물이다. 위트와 진중함 사이를 넘나드는 드라마는 모녀의 관계를 때론 긴장감 있게, 때론 유쾌하게 그려내며 그들이 진심으로 엮일 때 가족이란 이름으로 탄생한다고 강조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첫 해외진출 작품에서 풍성한 드라마를 통해 자신의 장점을 가감 없이 발휘했다. 
  
다큐멘터리 감독 출신답게 사람 사이의 관계와 삶의 양태를 관찰하는 여전한 관찰력과 악인 없는 따뜻한 이야기 역시 인상적이다. 여기에 엔터 사업이 지닌 거짓과 허구성, 판타지와 SF의 요소를 적절히 버무리며 대중적인 색을 덧칠했다.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공간이 바뀌어도 여전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감수성과 이야기의 마력이 존재하는 매력적인 드라마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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