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을 언제까지나 기억하고 있을게"

리뷰 : 영화 <소나기>

유수미 | 기사승인 2019/12/26 [10:00]

"그날을 언제까지나 기억하고 있을게"

리뷰 : 영화 <소나기>

유수미 | 입력 : 2019/12/26 [10:00]

 

▲ '소나기' 포스터.     © (주)리틀빅픽처스



[씨네리와인드유수미 리뷰어] 어제도, 오늘도 개울가에서 홀로 물장난을 치며 시간을 보내던 소녀. 소녀는 먼발치에서 자신을 바라보기만 하며 선뜻 다가오지 못하는 소년을 향해 소리친다. “이 바보야!” 자꾸 신경이 쓰이면서도 다가가지는 못하던 소년은 그렇게 징검다리를 건너지 못한 채 전전긍긍해한다. 소년은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 나 바보 같아?” 엄마는 실없는 소리라며 나무라지만 소년은 어쩐지 그 말이 계속 신경 쓰인다. 분홍색 티셔츠, 청색 치마, 그리고 머리띠. 소년의 시선은 항상 소녀에게로 향했고, 소녀는 소년이 매일 개울가에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소년과 소녀는 간지러운 눈치싸움을 해나간다.

 

쳐다만 보다 끝난 사랑이 있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말을 걸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괜히 어색하기도 하고, ‘내가 별로면 어떡하지?’ 하고 조바심이 든다. 침대에 누워서 눈감으면 생각나는데 어쩐지 좋아하는 사람 앞에만 서면 꽁꽁 얼어버린다. 그렇게 혼자 바라보고, 생각하고, 또 신경 쓰기를 반복하기까지 심장은 빠르게 뛴다. 다가가진 못하면서 계속해서 소녀를 찾는 소년의 눈동자를 보면서 소년의 숨겨진 마음이 와 닿았다. 감추고 싶어도 감춰지지 않는 소년의 마음은 소녀를 바라봄으로 나타나는데, 그 호기심 어린 눈빛은 촉촉하게 빛이나 보였다.

 

 

▲ '소나기' 스틸컷.     © (주)리틀빅픽처스



, 너 이 조개 이름이 뭔지 아니?” 정적을 깨고 소녀가 소년에게 건넨 첫마디다. 소년은 얼굴을 붉히며 비단조개라고 답한다. 이후, 소년과 소녀 둘만의 풋풋한 첫 여행이 시작된다. 소년은 소녀를 위해 꽃의 이름을 알려주고, 무를 따주고, 꽃을 꺾어준다. 소년은 소녀에게 헌신했고 소녀는 그런 소년에게 의지 했다. 둘만의 시간을 축복하듯 자연은 그 어떤 무지개보다 다채로웠고 아름답게 빛났다.

 

하지만 계속될 것 같았던 둘만의 데이트는 소나기로 인해 잠시 멈춰졌다. 그렇게 소년과 소녀는 움막 속으로 비를 피하고 소년은 옷을 벗어 소녀를 감싸준다. 소녀는 소년의 뒷모습을 보며 작게 읊조린다. “비가 안 그쳤으면 좋겠다”. 어쩌면 함께 데이트를 즐겼던 시간보다 자신을 지켜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이 시간이 소녀에겐 더 소중한 걸지도 모르겠다. “사람의 표정을 보는 것보다 사람의 뒷모습에서 더 많은 것을 알 수가 있어.”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환하게 웃는 표정보다도 발가벗은 소년의 뒷모습은 내가 너를 지켜줄게라고 소리치는 것만 같아 소년의 사랑이 순수하고도 진심으로 느껴졌다.

 

그날 재밌었어. 근데 그날 어디서 이런 물이 들었는지 잘 지지가 않아.” 소녀가 며칠 뒤 소년을 만났을 때 자신의 분홍색 티셔츠를 보며 내뱉은 대사이다. 떠올려보니 그 물은 소나기가 내리던 날 소녀가 소년에게 업혔을 때 소년의 등에서 옮은 물이었다. 소녀의 티셔츠에 옮은 물은 소녀에게로, 또 소년에게로 전해진 첫사랑의 마음을 나타낸 표시 같다. 사랑에 빠지게 되면 그 사람이 줄곧 잊혀지지 않듯이 소녀의 티셔츠에 남은 자국도 그런 마음을 표현한 게 아닐까.

 

 

▲ '소나기' 스틸컷.     © (주)리틀빅픽처스



헤어지기 전
, 소녀는 알이 꽉 찬 대추를 소년의 손에 꼭 쥐어준다. 그러고선 울적한 표정으로 집을 내주게 됐다며 이사를 가야 된다고 말하는 소녀. 소년은 헤어지기 싫어라고 외치고 싶지만 선뜻 말이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소년의 마음은 그다음 장면, 행동으로 나타난다. 소년은 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힘껏 가지를 쳐가며 호두를 따낸다. 그러고는 껍질을 까고 곱게 갈아서 호두알 두 개를 손에 꼭 간직한다. 그러나 너를 다시 만나고 싶어라는 소년의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작게 읊조리는 부모님의 목소리는 소년을 침울하게 만들었다.

 

죽기 전에 이런 말을 했대 잖아. 자기가 죽거든 자기 입은 옷을 그대로 입혀서 꼭 묻어달라고.”

 

소년은 부모님의 목소리를 머릿속으로 되새기며 소녀를 계속해서 떠올렸다. 마지막 장면, 소년은 갈대밭 안에 서서 갈대를 매만지며 하늘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에 집중한다. “같이 못 있지만 너랑 함께해서 즐거웠어라고 소녀가 하늘에서 소나기를 내려 주는 것만 같다. 가슴 뛰었던 둘만의 여정은 슬픈 기억으로 마침표를 찍었지만, 계속해서 소나기가 내리는 한 둘만의 여정은 사라지지 않고 마음속에 남아있을 것이다.

 

 

▲ '소나기' 스틸컷.     © (주)리틀빅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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