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세상의 무게감 속에서 고독하게 살아가는 그들, 아버지

영화 『집 이야기』,『포드V페라리』,『미안해요, 리키』

김준모 | 기사승인 2019/12/27 [11:30]

기획|세상의 무게감 속에서 고독하게 살아가는 그들, 아버지

영화 『집 이야기』,『포드V페라리』,『미안해요, 리키』

김준모 | 입력 : 2019/12/27 [11:30]

[씨네리와인드|김준모 기자] 아버지가 된다는 건 무엇일까. 쉽게 정의를 내리기 힘든 질문일 것이다. 흔히 부모의 조건이란 건 자식을 위해 헌신하고 사랑할 줄 아는 것이라 말한다. 그래서 어른이 된다는 건 하기 싫은 일도 해야만 하고 자신이 아닌 남을 먼저 생각할 줄 알아야 된다는 걸 의미한다. <집 이야기>, <포드V페라리>, <미안해요, 리키>. 올 연말 개봉한 이 세 편의 영화에는 공통점이 있다. 세상이란 거대한 풍파 속에서 누구에게 기댈 수 없는 고독한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담았다는 점이다.

 

▲ ▲ <포드V페라리> 스틸컷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포드와 페라리, 두 거대한 자동차 회사가 르망24 레이싱 대회에서 맞붙은 실화를 다룬 <포드V페라리>는 레이싱 영화라는 표면 속 아버지의 사랑이라는 따스한 드라마를 담아내며 주목을 받았다. 켄 마일스는 군 제대 후 늦은 나이에 카레이싱의 세계에 뛰어든다. 재능 면에서 특출 나지만 외골수 성향으로 쉽게 사람들과 친해지지 못한다. 꿈을 접을 위기 속 친구 캐롤 셸비의 도움으로 포드사의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되지만 마찰을 겪는다.

 

남들처럼 사회와 타협을 보고 적당히 눈치도 보면서 재능을 피우면 될 것만 같건만 그 일이 켄에게는 너무나 어렵다. 레오를 비롯한 포드사 직원들은 툭하면 캐롤과 켄의 일에 시비를 걸며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는 걸 막으려 든다. 그들의 눈치를 보면 페라리를 이길 수 없고 자신들의 뜻대로 나서면 원하는 꿈을 이룰 수 없다. 켄은 꿈과 현실 사이에서 꿈을 품은 현실적인 아버지가 되고자 한다.

 

이를 잘 보여주는 두 장면이 있다. 첫 번째는 켄이 헨리 포드 2세를 레이싱카에 태우고 질주하는 장면이다. 헨리 포드 2세는 빠르고 가벼운 새로운 레이싱카의 성능에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 그에게 아버지인 '자동차왕' 헨리 포드의 업적은 넘기 힘든 산이었다. 아버지의 그늘에 가려져 부담을 느끼던 그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린다. 켄은 아이와 같은 순수함을 지니고 있는 헨리 포드 2세에게 직접 프로젝트의 성과를 설명하며 꿈을 이루고자 한다.

 

두 번째는 켄이 아들과 함께 보랏빛 하늘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켄은 대회가 끝날 때면 아들을 차에 태우고 트랙을 한 바퀴 돌 만큼 아들을 사랑한다. 두 사람의 대화에는 아버지를 향한 아들의 존경과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이 담겨 있다. 켄에게는 꿈이 있지만 이 꿈을 위해 현실을 포기할 수 없다. 자신을 존경하는 아들을 위해 세상의 탕아가 아닌 남들과 같은 아버지로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 <집 이야기> 스틸컷.     © CGV 아트하우스



하지만 모든 아버지가 켄처럼 '선택'을 할 수 있는 상황에 놓여있진 않다. 현실은 모든 아버지들의 능력을 인정해주지 않고 캐롤처럼 이해심 많은 친구를 허락해주지 않는다. <집 이야기>의 아버지 진철은 어떤 열쇠 문이든 딸 수 있는 열쇠공이지만 막상 가족의 마음의 문은 열지 못한다. 혼자 서울살이를 하는 신문사 편집기자 은서는 살 집을 구할 동안 진철의 집에 머물기로 한다. 진철의 집은 세월을 그대로 담고 있다. 작고 낡았으며 어두운 단독주택은 진철의 삶 그 자체다.

 

진철은 무뚝뚝하다. 딸을 위해 밥을 하고 찌개를 끓였지만 짜장면을 먹자는 말에 밥을 했다 말하지 않고 짜장면을 시킨다. 자신의 의사를 가족에게 표현하는 게 서툴고 어색한 아버지는 항상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낸다. 가족을 사랑하지만 드러내지 못하는 그의 모습은 결국 가장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게 만든다. 진철이 가족을 잃은 이유를 작품은 두 가지 키워드를 통해 설명한다.

 

첫 번째는 열쇠다. 진철은 열쇠로 여는 문은 딸 수 있지만 전자식 도어락은 열지 못한다.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가족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 하지만 진철은 전자식 도어락을 여는 법을 배우지 않은 거처럼 이를 배우지 않았고 결국 모든 가족이 떠나간 뒤 홀로 남게 된다.

 

두 번째는 아파트다. 진철은 휴대폰 카메라로 아파트의 모습을 담는다. 그 아파트는 언젠가 가족이 다 같이 살기 위해 살 예정이었던 아파트다. 그는 아파트를 찍다 딸과 마주하고 오열한다. 만약 자신이 능력이 있었다면, 그래서 가족을 위해 아파트를 살 수 있었다면 홀로 남겨지지 않았을 것이다. 혹 자신의 사랑을 잘 표현하는 기술이 문을 여는 기술만큼만 되었더라도 그는 사랑하는 가족에게 고집불통에 화만 내는 아버지라는 오해를 사지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는 세상의 풍파 속에서 가족을 위해 노력하지만 홀로 그 모든 무게를 이겨내려 하기에 가족의 이해와 공감을 얻기 힘들 때가 있다. 아버지는 최선을 다했지만 현실은 그 속마음을 온전히 바라봐 주지 않았다. <미안해요, 리키>의 리키는 가족을 위한 헌신에도 불구 세상의 무게에 짓눌린 아버지의 초상이라 할 수 있다.

 

▲ <미안해요, 리키> 스틸컷.     © 영화사 진진



한때 리키는 건설회사에서 일을 했고 집을 얻을 기회가 있었다. 순조롭게 미래를 그려가고 있던 리키의 가족은 금융위기로 인한 은행의 파산으로 모든 걸 잃게 된다. 리키는 택배기사가 되고 다시 직장을 잡으면서 경제적으로 일어설 힘을 얻게 된다. 하지만 그 실상은 그의 예상과 전혀 다르다. 일을 위해 차를 사야 되지만 회사의 얼굴이란 이유로 자차처럼 편하게 이용할 수 없다.

 

택배 배송은 2분 안에 끝내야 하며 그러지 못하면 시간을 체크 당한다. 가족에게 어떤 일이 발생해도 일을 빠질 수 없다. 대리기사를 구하지 못하면 무조건 벌금을 물어야 된다. 리키에게 가장 중요한 건 가족이다. 가족을 위해 하루 종일 일을 하고 부당한 대우에도 돈을 더 벌기 위해 참고 일을 한다. 하지만 삐걱거리는 가족을 돌볼 시간조차 없는 업무와 인간적인 배려라고는 없는 택배회사의 처우에 점점 일상은 망가진다.

 

엇나가는 아들과 바쁜 일 때문에 아들의 마음을 들여다 볼 시간이 없는 리키 사이에는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아내와 딸마저 두 사람의 갈등 때문에 눈치를 보고 슬픔에 빠진다. 단 며칠이라도 좋으니 가족을 위해 시간을 내고 싶은 리키지만 직장을 잃을 위기와 쌓이는 빚 때문에 그럴 수가 없다. 가장의 역할과 가족의 생계 사이에서 무엇 하나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는 아버지의 모습은 눈물샘을 자극한다.

 

이 세 편의 영화는 청년세대의 고통과는 다른 아버지 세대의 고통을 담고 있다. 세상이 지닌 무게감 속에서 경제적인 문제와 가정 내의 소통 문제를 겪는 아버지들의 모습을 통해 항상 강인하고 듬직해만 보였던 등 뒤의 슬픈 그림자를 보여준다. 어쩌면 아버지야 말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지구를 짊어진 아틀라스보다 더 큰 무게감을 등에 업고 살아가는, 하지만 그 고통을 목 놓아 외칠 수 없는 고독한 존재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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