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실종(1)

김준모 | 기사승인 2020/01/03

[단편/소설] 실종(1)

김준모 | 입력 : 2020/01/03 [15:15]

 

혜정 : 한 달 전이었어요. 그이가 문자를 보냈어요. ‘낚시 좀 다녀올게 기다리지 말고 식사하고 자솔직히 야속하단 생각이었어요. 다른 집들은 임신했을 때가 가장 남편이 잘해줄 때라고 하는데 저흰 반대였거든요. 툭하면 야근에 회식에. 친구들끼리 약속이 있다고 나갈 때도 많았고요. 그래도 설거지며 빨래며 다 자기가 할 테니 내버려두라고 해서 참은 거죠. 그날도 그랬어요. 변기에 앉는 것도 힘들어서 누가 곁에 있어줬으면 했는데 어쩔 수 없잖아요. 그이도 힘든 일이 있을 테고 둘 다 짜증날 바에야 한 명이라도 마음이 편한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다음 날까지 안 들어오는 거예요. 이상했죠. 전화랑 문자를 아무리 보내도 받지도 않고. 그이는 자기 이야기를 거의 안 했어요. 친한 친구 한 명 소개해주지도 않았고요. 제가 방법이 있나요. 경찰에 전화를 했죠. 처음에는 콧방귀도 뀌지 않더라고요. 남편 분이 고민이 많은 거다. 부부 사이에 문제가 있었던 거 아니냐. 밤낚시 하면서 술 한 잔 하고 해장하느라 시간이 걸리는 거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라. 그래서, 그래서 기다렸어요.

 

생수를 들이킨다. 차가운 물이 갈라진 목구멍을 적신다. 타들어간 갈증의 골은 채워지지 않는다. 고개를 흔드는 그녀의 눈은 실망과 허망, 나락으로 가득하다.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었다면 애증이 남았을 것이다. 허탈한 한숨이 눈물과 함께 새어나온다.

 

혜정 : 위층이랑 싸웠어요. 평소에도 층간소음으로 시끄럽게 굴던 집인데 사라지기 전날 밤 그이가 그랬어요. ‘저것들 너무 시끄럽지 않아? 나 진짜 쟤들 때문에 못 살겠다.’ 대수롭지 않게 넘겼어요. 그 정도 소음이야 누구나 참고 사는 거라고 짜증을 냈어요. 남들 다 겪는 작은 다툼이었어요. 그런데 왠지 저 위층 때문에 그이가 떠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위층 여자 멱살을 잡았어요. 그 따박따박 따지는 말투 듣기 싫었거든요. 생활소음도 못 견디는 예민한 집 취급하는 걸 매번 참았어요. 그 집 남편이 절 밀치더라고요. 미친년이라며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참 웃기죠? 그이가 있었을 때 같이 그렇게 따졌다면 겁이라도 줄 수 있었을 텐데. 다음 날 경찰이 왔어요. , 하루가 지나고 나서야 실종신고가 받아들여진 거죠. 어머님은 친구 집에 갔을 거라며 걱정하지마라고 하셨는데 진정이 되지 않았어요. 엄마한테 전화를 해서 함께 있어달라고 했어요. 밤새 몇 번을 깼는지 몰라요. 위층 아이들이 더 뛰어다니더라고요. 그 집 부모가 시켰겠죠. 그 소리 때문에 심장이 뛰었어요. 그 소리에 맞춰 박동이 점점 빨라져서 터질 거 같더라고요. 엄마가 옆에서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면 죽었을지 몰라요. 엄마랑 같이 관리사무소에 갔어요. 형사 분이 보여줄 게 있다고 하시더군요.

 

조그마한 손이 떨린다. 위층의 소음이 들린다. 쿵쿵. 발망치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힌다. 밤이면 더 심해지는 소리가 가슴을 때렸을 것이다. 쿵쿵. 쿵쿵. 쿵쿵. 쉼 없이 심장을 내리쳤겠지. 두 개의 심장을 때리고 또 때렸겠지.

 

혜정 : 이거 좀 보세요. 여기 벤치에 앉아있는 사람이 그이인데 시간 좀 보세요. 오전 7시 반. 아파트 안 놀이터 벤치에 앉아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요. 이렇게 30분을 있다가 가더라고요. 다음 CCTV 화면을 보니 다른 동 놀이터에 가서 고양이를 보고 있어요. 그 다음 CCTV는 공터를, 다음 CCTV는 다른 아파트 화단에 있는 거예요. 그렇게 하루 종일 동네를 돌아다녀요. 6달을, 6달을 그랬더라고요. 웃기지도 않죠? 완전 속은 거예요. 직장에 전화를 해 보니 6달 전에 사표수리가 완료되었대요. 그런데 그이는 아무런 구직활동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밖에서 돌아다니다 퇴근 한 척 한 거예요. 차라리 친구들을 만났으면, 어디 PC방이라도 가거나 다른 여자라도 만났으면 괘씸하단 생각이라도 했을 거예요. 그런데 이게 뭐지? 대체 뭐하는 거지? 왜 저러는 거야? 하하, 어떻게 표현이 안 되더라고요.

 

몸이 뻐근한지 어깨를 뒤로 젖힌다. 튀어나온 배가 시야에 들어온다. 홍조가 오른 볼과 눈 밑의 다크서클은 상반된 느낌을 준다. 더 이야기를 내뱉고 싶다는 흥분과 이제는 지쳤다는 피로. 그는 사라졌고 그녀는 남겨졌다. 아니, 그가 남겨졌고 그녀가 사라졌을지 모른다.

 

혜정 : 그날 CCTV 영상을 보았어요. 저녁시간이 되니까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더라고요. 차를 몰고 나와서 정문으로 나갔어요. 그래도 쭉, 쭉 달리더니 그러니....... 사라졌어요. 경찰도 알 수 없대요. 도로 한 가운데에서 사라진 걸 무슨 수로 찾느냐고 그러는데 할 말이 없더라고요. 그이는 사라지고 싶어서 사라진 거예요. 그래서 이상해요. 우리 사이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어요. 신혼 때부터 한결 같았어요. 부부 사이도 좋았어요. 임신을 하고 나서 침대가 흔들리는 게 싫어서 아래에서 잤지만 항상 잠들기 전까지 손을 잡고 이야기했어요. 그날 아침도 그랬어요. 제가 깰까봐 조용히 침대에서 내려오고, 드라이기도 맨 끝 방에 가서 쓰고, 조그맣게 귀에 대고 다녀올게라고 말했어요. 그래서, 그래서 언제나처럼 돌아올 줄 알았어요. 무리한 부탁이란 거 잘 알아요. 하지만 그이를 잘 아는 사람이 규선 씨뿐이라고 어머님이 그러셨어요. 제발 그이를 찾아주세요. 제발 부탁드려요.

 

CCTV를 돌려본다. 알 수 없다. 왜 벤치에 앉아있는지, 왜 고양이를 구경하는지, 왜 몇 시간째 꽃을 바라보는지. 땅에서 나온 매미는 나무에 매달려 하루 종일 울음을 터뜨린다. 누구도 환영하지 않는 그 울음을 위해 오랜 시간을 땅속에서 시간을 죽인다. 차라리 매미라면. 매미처럼 울기라도 했다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울기 위해 저기 서 있다고. 서럽고 힘겨워 우는 거라고. 이유는 붙이기 나름이겠지. 태어날 때부터 약한 사람도 있으니까, 마음이란 문은 손잡이가 없으니까. 무슨 생각인 걸까. 몇 번이고 영상을 돌려봐도 알 수 없다. 창이 있으면 밖을 볼 수 있다. 같은 창을 바라보면 다른 걸 말할 수 없다. 창문을 마주보지 않는 한 안에서 밖을 바라본 두 사람은 같은 생각일 것이다. 매일 밤을 함께했던 아내도, 학창시절의 추억을 함께 썼던 친구도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저 남자가 누군지 알 수 없다. 규선은 거울 속 모습을 바라본다. 자세히 더 자세히 흰 머리카락부터 입술의 주름까지 찬찬히 살펴본다. 이 얼굴은 내가 알고 있는 얼굴인가. 아니, 그렇지 않다.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는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었다. 가장 가까운 존재를 알지 못한다. 양쪽 눈 아래 세 개의 주름이 있고 왼쪽 콧구멍이 오른쪽보다 더 크며 여드름 흉터가 왼쪽 볼에 가득하고 양쪽 귓불이 축 늘어진 얼굴이 규선이다. 그는 기억을 되짚어 본다. 진석은 어떻게 생겼나. 그는 코가 휘어졌다. 겨울이면 입술이 부르트고 여름이면 모공이 크게 확장된다. 눈썹은 짙고 며칠 손질하지 않으면 하나로 이어진다. 눈은 작고 광대는 튀어나왔으며 허리는 굽어있다. 입은 항상 웃음을 띠고 있지만 눈은 한 번도 웃은 적이 없다. 그래서 팔자주름은 짙지만 눈가에는 주름이 없다. 그 얼굴이 김진석인가. 규선은 머뭇거린다. 두 손으로 머리를 싸매던 그는 이내 주저앉는다. 기억나지 않는다. 진석의 얼굴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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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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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ed 2020.01.03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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