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실종(2)

김준모 | 기사승인 2020/01/06 [10:00]

[단편/소설] 실종(2)

김준모 | 입력 : 2020/01/06 [10:00]

유림이 도착한 건 오후 3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따라오겠다는 남편 인준을 만류하고 택시를 탔다. 인준은 지팡이에 의지해 떨리는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왔다. 택시를 바라보는 남편의 모습에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2층을 얻은 건 내려다 보이는 꽃밭이 예쁘다는 유림의 말 때문이었다. 1층으로 하겠다는 그녀의 말에도 인준은 계속 고집을 부렸다. 그는 다리가 멀쩡하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하루 1시간 씩 계단으로 내려가 공터를 걸었다. 새해 첫날 예배 때 인준이 적은 소원 편지를 보고 유림은 울음을 터뜨렸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아내랑 오래오래 살기그 짧은 한 줄이 간절하게 다가왔다.

 

거짓이길 바랐다. 아들의 실종보다 남편을 두고 가야된다는 점이 싫었다. 인준의 상태는 더 악화되었고 장기간 앉아있는 건 무리다. 진석이 돌아올 거라 생각했다. 꽉 막힌 머리를 식히기 위해 잠시 아무도 없는 섬으로 떠난 것이라 그리 여겼다. 긴 밤이 지나고 해가 뜨길 바랐다. 그 지평선 위로 진석의 그림자가 나타나길 바랐다. 언제나처럼 대수롭지 않게 잠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라 그리 말하길 원했다. 3일이 지나고 혜정의 연락을 받고서야 알게 되었다. 진석이 사라졌다. 영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순간들이 가득했다. 방문을 열 때마다 진석은 깨어있었다. 책을 읽거나 소설을 쓰거나 공부를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이어폰을 끼고 침대에 누워 음악을 듣거나. 흘러가는 시간을 내버려두지 않았다. 몸에 거대한 구멍이 뚫린 듯 시간은 하염없이 그곳을 빠져나간다.

 

넌 누구니

내 아들의 모습을 한 넌 누구야

제발 내 아들을 돌려줘 부탁이야

이제 그 애는 한 아이의 아빠가 돼

그러니 또 다른 자신을 볼 수 있게 제발 돌려줘

 

초인종을 누르고 몇 분이 지났다. 혜정은 만삭의 배로 현관까지 나왔다. 어머니가 직장 문제로 돌아가면서 이 24평 남짓한 공간을 채우는 건 그녀의 숨소리뿐이다. 유림은 집에서 싸 온 반찬을 냉장고에 넣는다. 무얼 먹을 기분이 아니겠지. 혜정의 눈은 퉁퉁 부어있다. 손도 발도 모두. 양쪽 눈 아래로 눈물길이 나 있다. 말라버린 거처럼 그 길은 움푹 들어갔다. 유림은 그 앞에 앉아 찬찬히 모습을 바라본다. 위로의 말이 나오지 않는다. 이건 슬픔인걸까. 차라리 다른 여자라도 만났다면, 그 여자와 떠났다면 형식적인 대화가 오갔을 것이다. 그런데 왜 진석은 그런 것일까.

 

혜정 : 어머님 저 배고파요. 밥 주세요. 저 밥 먹어야 해요. 많이 먹어야 그 사람 찾죠. 그이는 낚시 갔잖아요. 돌아오면 웃고 있을 텐데 제가 기운 빠지게 있으면 안 되는 거잖아요.

유림 : 그래, 밥 먹자. 뭐라도 먹어야 힘을 내지.

 

부엌으로 향하는 걸음을 보며 혜정은 계속 중얼거린다. 아무도 듣지 못할 외딴 숲 나무구멍에 대고 이야기하듯 아주 작은 목소리로.

 

혜정 : 내가 뭘 잘못했나. 잘못 했으니까 떠났겠지. 귀찮게 했잖아. 일 갔다가 힘든 사람한테 빨래며 청소며 설거지며 다 시켰잖아. 그래서 직장도 그만 둔 거겠지? 둘 다 해낼 자신이 없었던 거야. 고양이나 꽃 보면서 마음에 위안을 얻었겠지. 화장도 안 하고 살이나 찐 마누라보다 그게 좋았겠지. 그러다 질린 거야. 이 집이 싫어진 거라고. 주말 아침마다 들리는 청소기 소리, 애들 떠드는 소리, 뛰는 소리, 다 짜증났겠지. 내가 멍청했던 거야. 내가 이기적인 거라고. 임신한 게 벼슬마냥 시켜대고 받아주지도 않았으니 싫었겠지. 내가 잘못한 거야. 내가 잘못했어. 내가.

 

소리에 유림은 뒤를 돌아본다. 주먹으로 자신의 머리를 때리는 혜정에게 달려든다. 자학을 반복하려는 그녀를 힘으로 누른다. 힘을 주던 혜정은 이내 포기한 듯 팔을 내려놓는다.

 

유림 : 뱃속에 아기도 생각해야지! 네가 이러면 어쩌니? 진석이는 돌아올 거야. 그러니까 그때 다 물어보렴. 널 탓할 필요 없어. 네가 뭘 잘못했니? 그 정도도 못해주면, 그 정도도 견디지 못하면 그 애가 아버지 자격이 없는 거야.

혜정 : 못 듣잖아요! 대체 왜 그랬는지 모르는데 제가 어떻게 해요? 저도 궁금해요. 뭘 잘못했기에 그런 건지 알고 싶다고요. 어머님, 말해주세요. 제가 뭘 잘못한 거죠? 저 뭐라고 안 그럴게요. 어머님이 무슨 이야기를 해도 듣기만 할게요. 그러니까 말해주세요. 제가 뭘 잘못했기에 이렇게 떠나버린 거냐고요!

 

유림은 혜정을 껴안았다. 꺽꺽 소리를 내며 눈물 한 방울 흐르지 않는 그 얼굴을 모노드라마라도 되는 양 바라봤다. 그녀가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곤 밥을 차려주는 것, 헛구역질을 내뱉으며 꾸역꾸역 식사를 하는 모습을 바라봐 주는 것, 몸을 주물러 주는 것, 잠자리를 깔아주는 것, 침대 위에서 아래를 바라보며 손을 잡아주는 게 전부다.

 

혜정 : 어머님, 그이는 돌아오겠죠?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꼭 돌아오겠죠? 영원히 사라지진 않겠죠?

유림 : 무조건 돌아올 게다. 잠깐 방황한 적은 있어도 길은 잃은 적은 없는 애다. 두려워서 도망친 거니 다시 용기를 얻으면 초인종을 누를 거다.

혜정 : 뭐가 두려워서 말도 없이 도망친 거죠?

유림 : 어깨에 짊어지기도 전에 으레 겁먹고 도망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막상 짊어지면 아무렇지도 않은 걸, 그걸 몰라갖고.

 

오래 전 도망치고 싶었던 건 유림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불러오는 배는 풍선 같았다. 자그마한 바늘이 닿으면 터져버려 그 안의 공기내음만이 남을 것이라 생각했다. 점점 무거워지는 몸을 지상은 견디지 못하고 공중으로 올려 보낼 것이라. 하늘은 다가오는 두 개의 생명을 허락하지 않고 떨어뜨릴 것이라. 아이는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사라지고 길고 긴 창자가 그 자리를 채우다 못해 기어 나와 자신의 목을 조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럴 때면 인준은 손을 잡아줬다. 일이 끝나면 곧장 집으로 달려왔고 밤새 온몸을 주물러주었다. 출산을 앞두고 휴가를 썼다. 진석이 태어난 그날 인준은 옆에 있었다. 인준은 입버릇처럼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기 위해 노력하라 말했다. 진석은 건성이나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부담스럽게 느껴지진 않았을 것이다. 겁이 많긴 해도 이겨낼 수 있는 강인함이 있는 아이니까. 유림은 그렇게 알고 있으니까. 잠시 멀리 나간 걸까. 문밖에 바람이 불지 않으니 숲속까지 들어간 걸까. 혹 그 안에서 길을 잃어버린 건 아닐까. 어른의 키보다 높은 나무에 둘러싸여 울고 있진 않을까. 불현 듯 기억 중 하나가 노크한다. 아니, 아닐 거야. 그녀는 커튼을 친다. 그럴 리가 없어. 인터폰을 망치로 부순다. 오래 전 일이잖아. 노크 소리를 피해 침대 안으로 들어간다. 귀를 막고 소리를 지른다. 끝난 일이야. 목소리가 부정한다. 끝나긴 뭐가 끝나!

 

침대 위가 흥건하다. 등에 손을 넣으니 식은땀이 느껴진다. 쾅쾅거리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목소리가 크게 울린다. 위층에서 아이들을 혼내고 있다는 걸 소리만으로 알 수 있다. 시계는 새벽 1시 반에 멈춰있다. 점점 커지는 소리를 피해 현관 밖으로 걸음을 옮긴다. 차가운 공기 사이에 새하얀 빛이 머문다. 놀이터의 불빛은 찬란하다 못해 눈이 부실 지경이다. 그 아래에 진석이 서 있다. 유림은 다가선다. 새에 놀란 허수아비가 도망치지 않게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그네에 앉은 진석 앞에 아이가 있다. 모래를 손으로 파는 그 아이는 진석이다. 진석은 진석을 바라본다. 깡마른 허수아비는 곡식을 찾지 못하는 새를 애처롭게 응시한다. 유림의 손이 그의 어깨에 닿으려는 찰나 목소리가 들린다.

 

진석아, 밥 먹자.

 

어른과 아이는 답한다.

 

, 엄마.

 

두 사람은 노을처럼 서서히 짙어져 가다 사라진다. 짧은 순간이지만 유림은 보았다. 녹색광선처럼 행복을 머금은 진석의 미소를.

 

유림 : 아들, 빨리 돌아와. 돌아오면 엄마가 맛있는 거 해줄게. 그러니까 어서 돌아와, 내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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