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실종(3)

김준모 | 기사승인 2020/01/07 [10:00]

[단편/소설] 실종(3)

김준모 | 입력 : 2020/01/07 [10:00]

다섯 번째 막다른 길목이다. 내비게이션은 길을 찾지 못하고 검색 중이란 표시만 보인다. 시골동네는 여전하다. 차가 다닐 수 있는 길보다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길의 수가 더 많다. 목적지 없는 여행의 시작이다. 목적은 있지만 목표를 알 수 없다. 그래서 두렵다. 한 걸음 떼는 순간 그 방향은 목표가 된다. 뿌리를 잘못 내린 나무는 줄기가 뒤틀린다. 뒤틀린 줄기에서 뻗어 나온 줄기는 땅을 향한다. 그리고 잎은 땅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 놓인다. 지나가는 동물과 개구쟁이 아이 때문에 바닥에 떨어진 잎은 금세 생명력을 잃는다. 햇빛이 아닌 길을 막아선 나무는 존재 가치를 상실한다. 줄기를 잘라도 다시 올곧게 자라지 못할 것이라 여긴 이들에 의해 뿌리가 뽑힌다. 규선은 그 갈림길에 서 있다.

 

진석은 증발해버렸다. 증발이란 표현이 옳을 것이다.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거처럼. 그는 사진 찍는 걸 싫어했다. 단체로 사진을 찍을 때면 사진사 역할을 자처했다. 추억은 사진이 아닌 기억에 남는다는 그럴싸한 말로 자리를 피했다. 결혼식 날도 그랬다. 몇 번의 단체사진 촬영 후 따로 사진촬영을 가지지 않았다. 친구들과 함께 찍자는 혜정의 말도 거부했다. 초조해보였던 건 아니다. 눈물을 가득 머금은 신부와 달리 여유가 있었고 차분했다. 남 일이라도 되는 양 혜정과 유림을 응시했다. 조연을 택한 그는 자연스럽게 무대 위에서 내려온 것이다.

 

진석은 길을 걸은 적이 없다. 어딘가 찍혀 있는 발자국 위를 밟은 것이다. 아스팔트 위의 수많은 신발자국 사이에서는 그를 발견할 수 없다. 깊게 들어간 진흙길에서만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바닥에 엎드려 눈으로 높이를 가늠한다. 미세한 차이지만 움푹 들어간 자리를 확인하면 방향을 옮긴다. 손톱에는 진흙이 가득 끼고 온몸은 땀범벅이다. 검게 변한 손을 바라보며 개미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진다. 개미는 모른다. 눈앞에 언덕이 있는지 낭떠러지가 있는지 알지 못한다. 무얼 위해 걸어가는지 모른 채 그저 열심히 앞으로 나아간다. 발자국이 지워져 갈수록 돌아갈 길은 자취를 감춘다.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죽을 것이다. 허리를 들지 못하고 진흙에 몸이 파묻혀 사라지겠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거처럼 땅속으로 파고 들겠지. 태초를 만나 인사를 하고 지상의 껍질은 안녕을 고한다. 남겨진 피와 뼈는 서서히 형태를 잃어가고 영혼만이 남아 존재를 증명한다. 모른다고 답할 것이다. 규선이란 사람이 있었는지. 어디서 태어났고 어떤 성장과정을 거쳤으며 꿈이 무엇이었고 어떤 선택을 하였는지 다들 모를 것이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니까. 하루에도 수 백 가지 장면과 수 만 가지 생각을 잊어버리니까. 그러고도 여전히 살아있다는 사실에 안도를 표하니까.

 

6개월 전 진석은 직장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그 일을 찾기 전까지 14개가 넘는 직장에 다녔다.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지만 규선을 알고 있다. 길게는 일주일 짧게는 3. 진석은 직장이란 걸 다녔다. 첫 직장을 3일 만에 그만두고 규선에게 말했다. 이곳에서는 미래를 그릴 수 없다고. 일주일 다닌 직장을 그만둘 때는 다른 말을 했다. 몇 발짝 걸어갈 순 있겠지만 누구보다 빠르게 절벽에 내몰릴 거라고.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고 그만둘 때면 욕이 섞인 전화를 받곤 했다. 그때마다 그는 죄송하다는 말과 침묵으로 대신했다. 전화를 끊고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나도 이제 둥지에 앉고 싶다.

 

어렵게 찾은 둥지를 떠났다. 아니, 발로 차 떨어뜨렸다. 왜 둥지를 떠났으면서 날아가지 않은 걸까. 돈을 모은 것도, 미래를 준비한 것도, 자유를 열망한 것도 아니다. 미성숙한 어린아이처럼 자신을 갉아먹는 행동으로 남을 속이다 무책임하게 떠나버렸다. 일이 힘들었던 걸까, 가족이 무겁게 느껴졌던 걸까. 진석에게 방황은 있어도 포기는 없었다. 그가 그만둔 14개의 직장은 다 이유가 있었다. 출근 첫날부터 사무실에 여러 번 정전이 일어난 곳이 있는가 하면 회의를 이유로 수당을 주지 않는 주말근무를 시키는 곳도 있었다. 아니면 아닌 거라는 그 말에 딱히 토를 달 이유가 없었다. 잠시의 방황 후 원하는 직장을 얻었다. 급여도 복지도 미래도 그가 정한 최소한의 수준에 맞는 곳이었다. 그리고 청첩장이 왔을 때 다시 줄을 잡았다 생각했다. 기억을 서술할 수 있는데 이미지는 어디로 간 걸까. 왜 그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 걸까. 문을 연다. 카페의 조명 아래로 진석의 모습이 보인다. 그의 얼굴은 까맣게 칠해져있다. 그 앞에 앉은 규선은 스마트폰 라이터를 켠다. 남자의 얼굴은 낙서처럼 검은 색으로 가득 차 있다.

 

규선 : 장난치지 말고 얼굴을 보여줘.

진석 : 그게 왜 필요한 거지?

규선 : 왜 필요하다니? 널 찾아야 되잖아. 얼굴을 모르면 어떻게 찾을 수 있겠어.

진석 : 사진이 있잖아. ? 사진을 보고 못 찾겠어? 당연히 그러겠지. 그건 모습이 아니니까. 렌즈란 녀석이 남긴 잔상을 보고 사람을 찾는 건 힘든 일이야. 세상에 왜 실종된 사람들이 많은 줄 알아? 기억이 아닌 사진에 의존해서 찾으려 하니까 그런 거야. 부모도 자식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세상인데 남이 찾아주길 기대하는 건 사치지.

규선 : 내 기억 속에 네 얼굴이 남아있지 않아. 그래서 그래.

진석 : 얼굴을 보여주면? 기억할 수 있을까? 한 가지만 물어볼게. 왜 나를 찾으려는 거지? 내가 없어져도 너에게 큰 문제가 되진 않잖아. 우정 같은 알량한 소리 말고 확실한 이유를 말해줬으면 하는데.

규선 : 맞아, 이유야. 이유를 알고 싶어. 대체 왜 사라졌는지 그 이유가 너무 궁금해서 그래. 조만간 아이 아빠가 될 거잖아. 그런데 부인 혼자 남겨두고 낚시라니. 이게 말이 되는 행동이라 생각해? 힘들고 방황하고 싶으면 잠시면 되잖아. 벌써 한 달이야. 이러는 이유가 뭐야?

진석 : 이유라는 호기심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 크게 납득되진 않는 걸. 넌 다 기억하고 있어. 다만 납득하지 못할 뿐이지. 넌 항상 그랬어. 네 상식과 경험이 벗어나는 결과가 나오면 부정하고 거짓으로 치부했어. 네가 원하는 답이 나와야만 고개를 끄덕이고 아니면 회피했지.

규선 : 그게 지금 이 일과 무슨 상관이야? 당장 나타나기나 해!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어린애 같지 않아? 회피하는 건 너잖아. 일은 하기 싫고 애가 태어난다니까 부담되어서 도망친 거 누가 모를 줄 알아? 요상한 술법이나 부려서 남들 당황시키고. 이제 그만 나와. 불쌍한 네 마누라 좀 챙기라고!

진석 : 맞아, 난 무책임해. 그러니 도망쳤겠지. 혹시 기억하나 모르겠네. 내가 3일 만에 그만둔 직장 말이야. 거기 대표가 면접 때 그러더라. 열심히 살아왔냐고. 그랬다고 답하니 자기가 보기에는 아니래. 자기는 이력서랑 자기소개서를 보면 그 사람의 삶을 알 수 있대. 혼신의 힘을 다한 적 있냐고 묻는 거야. 있다고 하니 없대. 그래, 혼신을 다하면 사람이 죽겠지. 영혼과 정신을 끌어다 쓰는 건데 육체가 버티겠어. 그 회사에 가니까 다 그런 애들이더라고. 왜 대표가 말한 열심히 안 산 사람. 근로계약서 쓴 사람 하나 없고, 200도 안 되는 돈에 야근에 시간 외 근무에 다 시키고, 분식집에서 8천 원짜리 메뉴 시키는 걸 하루의 행복으로 여기고. , 정전은 플러스고 말이야. 그걸 하루 겪다 보니 그 대표라는 사람이 무서워 보이더라고. 이 사람은 형벌을 내리고 있는 거다. 열심히 살지 않은 이들에게 벌을 주는 거다. 가장 무서운 벌은 미래를 빼앗는 거다. 그래서 도망쳤어. 지옥 불구덩이로 들어가기 싫어서.

규선 : 그럼 네 마누라랑 뱃속 아기가 지옥 불구덩이라는 거야? 그건 다 네가 원한 거잖아.

진석 : 누가! 누가 원했다는 거야! 네가 왜 내 얼굴을 볼 수 없는지 알아? 넌 날 모르거든. 내가 이야기할 때 제대로 들은 적이나 있니? 없겠지, 당연히. 얼굴도 안 보고 고개는 푹 숙이고 하품이나 쩍쩍 내뱉었으니까. 아니면 설명해 봐! 내가 기쁠 때 어떤 표정을 하지? 슬플 땐 어떤 얼굴이고. 화내는 모습을 본 적이 있나? 당연히 없겠지. 네 감정을 망치는 대화 따윈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넌 길을 잃을 거야. 아무도 발견할 수 없는 곳에 혼자 남겨지겠지. 영혼이 빠져나갈 즈음 알게 될 거야. 나도 네 곁에도 아무도 없다는 걸.

 

규선은 달려든다. 진석의 목덜미를 붙잡고 손에 쥔 냅킨으로 얼굴을 문지른다. 진석의 모습은 점점 더 까매진다. 문지르고 문지를수록 사방은 어둠으로 칠해진다. 사라진다. 빛은 모습을 잃어간다. 점점 더 어둠에,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춰간다. 규선의 손이 닿는 곳마다 색은 사라지고 공허만이 남는다. 얼굴을 파묻는다. 어둠 속에는 어둠뿐이다. 더 이상 나아갈 힘이 없다. 뒤를 돌아봤을 때 익숙한 풍경은 남아있지 않다. 새로운 침묵만이 공기를 감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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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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