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실종(5)

김준모 | 기사승인 2020/01/10 [17:43]

[단편/소설] 실종(5)

김준모 | 입력 : 2020/01/10 [17:43]

하늘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보라색이다. 언제 해가 뜨고 지는지, 또는 졌는지 알 수 없다. 그 빛을 오롯이 품은 호수는 투명하다. 두 명의 낚시꾼은 나란히 앉아 그 풍경을 바라본다. 한 양동이에는 물고기가 가득하다. 그 반대편에 위치한 양동이는 물기 하나 없이 깨끗하다. 길게 기지개를 켠 남자는 고개를 돌리고 미소를 짓는다.

 

남자 : 낚시를 하러 온 게 아니라 풍경 보러 왔나 봐요? 미끼도 가져오지 않고 계속 호수만 보고 있네요. 머리 식히러 온 건가요?

진석 : 그쪽은요? 그 양동이 가득 물고기를 담았다가 다시 풀어주고, 잡았다가 다시 풀어주고. 낚시를 하는 이유가 뭐죠.

남자 : 물고기를 먹기 위해 낚는 게 아니니까요. 게임 안 하세요? 최종 단계까지 다 끝나고 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고 다시 시작하는 게 게임이죠. 낚시도 같아요. 잡고 풀어주고 또 잡고 풀어주고. 그 과정에서 재미와 성취감을 느끼는 겁니다. 그쪽이 낚시를 하는 거 같지 않아서 조용히 머리 식히려고 온 게 아닌가 싶어서요.

진석 : 낚시를 해보고 싶었거든요.

남자 : 그럼 미끼를 달아야 물고기를 낚죠. 혹시 안 가져오신 건가요? , 소심하신 분이네. 미끼 몇 개 빌려드릴 테니 낚아보세요. 제가 방법도 알려드릴게요. 지금 몇 시간 째 여기 앉아있는데 이러면 시간이 너무 허무하게 가요. 빨리 낚아보고 돌아가세요.

진석 : 벌써 몇 달이 지났겠군요. 그런데 빨리 낚고 싶지 않아요. 성공하면 돌아가야 되는 거잖아요. 시간이 슬픈 이유는 앞으로만 흘러간다는 점입니다. 아름다운 순간을 다시 볼 수도, 아쉬움을 이겨내려고 처음으로 돌아갈 수도 없어요. 무너진 건 무너진 대로, 다친 건 다친 대로 앞으로 나아가야 해요. 온몸에 상흔을 지니고 회복할 시간도 없이 또 다른 상처를 내야만 한다고요.

남자 : 다들 그렇게 살아가. 보아하니 어린 나이는 아닌 거 같은데 살 만큼 살아놓고 왜 그러나. 누구나 힘들고 고통스러워. 인간이니까 참고 사는 거지.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났어. 가족들이 걱정할 거야. 그러니까 그만 돌아가. 여기서는 방황하면 안 된다네. 왜 여기로 온 거야?

진석 : 어딜 가도 절 바라보니까요. 한 번은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를 애 엄마가 데려가면서 그러더라고요. 저 아저씨 또 저기 있다, 불안해 죽겠다. 어떤 날은 경비가 와서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묻기도 하고요. 바람에게 길을 묻고 싶은데 그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더군요. 제 남은 시간이 모두 사라져도 괜찮아요. 살아가는 시간이 끝나고 죽어가는 시간만 남았으니.

남자 : 여긴 죽은 사람들만 오는 곳이야. 자네 같은 사람은 오면 안 된다고. 무엇보다 미래가 있지 않나. 미래를 위해 더 살아야지. 백날 풍경이나 보고 낚시나 하면 뭐 답이 나와? 자네 인생에서 답을 찾아야지. 이건 회피 밖에 안 돼.

진석 : 그래서 온 겁니다. 미래를 보기 싫어서 경계선을 넘어왔습니다. 여기는 태양이 없잖아요. 생명이 태어나고 자랄 수 없는 곳은 이 낚시터가 유일하니까요.

남자 : 나 참, 죽고 싶어서 온 놈들은 몇 놈 지옥으로 보내준 적 있다만 자네 같은 부류는 또 처음이네. 살기도 죽기도 거부한다면 평생 여기 이러고 있을 텐가? 벌써 몇 달이 지났어. 이러다 몇 년이 되면 사랑하는 사람들은 다 떠나가 버린다고. 그때 가서 후회하고 싶나?

진석 : 잠시 시간이 필요할 뿐입니다. 조금 더 긴 시간이 제겐 필요해요.

남자 : 미안하지만 그 시간이 자네에겐 허락되지 않을 거 같네만.

 

진흙 속을 뒹굴던 개미는 바퀴자국을 찾았다. 두 발로 일어선 곤충은 부지런히 문명의 길을 따랐다. 안개가 걷히고 자줏빛 하늘이 펼쳐졌다. 사방이 바위로 둘러싸인 그곳에는 커다란 호수가 보였다. 규선은 차를 발견했다. 트렁크가 열린 차의 운전석에는 사진이 걸려 있다. 규선은 고개를 흔들며 낚시터를 향한다. 구름 한 점, 바람 하나 없는 공기가 서늘하게 느껴진다. 한 발짝 계단을 향해 내딛을 때마다 온몸이 흔들린다. 영혼이 빠져나가듯 정신이 혼미해진다. 손잡이를 잡는다. 이 문을 돌려야 다가설 수 있다. 한 번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그 얼굴을 만날 수 있다. 팔이 찢어져라 힘을 줘도 손잡이는 돌아가지 않는다. 두 손으로 잡아 밀어도, 당겨도, 흔들어도 영혼을 담은 문은 침묵을 지킨다. 굴러 떨어지듯 계단을 내려온다. 영혼을 지닌 자는 이 문을 통과할 수 없다. 그들에겐 자격이 없다. 그렇다면 영혼을 잃은 이들이 영혼을 찾도록 하면 된다. 생각을 마친 규선은 호수에 뛰어든다. 물고기 떼가 달려들어 온몸에 붙은 진흙을 먹는다. 진흙과 함께 그의 피부도 뜯겨나간다. 규선은 찾는다. 진석이 던진 낚싯대가 무엇인지 살핀다. 두 개의 바늘 중 날이 선 날카로운 걸 입에 문다. 입천장이 찢겨져 나가는 고통 속에서 규선의 몸은 수면 위로 떠오른다. 낚싯바늘은 앞니천장을 뚫고 인중으로 삐져나온다. 검고 붉게 물든 호수 안에서 그의 시선은 진석을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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