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실종(6)

김준모 | 기사승인 2020/01/13 [09:20]

[단편/소설] 실종(6)

김준모 | 입력 : 2020/01/13 [09:20]

어머니...... 어머니 시끄러워요....... 어머니........

 

혜정을 처음 만난 날 그 옆에는 조그마한 아이가 한 명 있었다. 그 아이의 정체를 뱃속의 생명이라 여겼다. 혜정 옆에 꼭 달라붙은 아이는 잠시도 떨어지지 않고 옷가지를 꽉 붙들고 있었다. 한밤중이 되자 다시 위층에서 소음이 들려왔다. 쿵 쿵 쿵 쿵 일정하지 않은 그 소리에 유림은 잠에서 깼다. 그녀의 옆에는 아이가 서 있었다. 아이는 말했다. 시끄러워요....... 시끄러워요, 어머니....... 식칼로 심장을 내리찍는 그 아이의 얼굴은 기억 속 진석이었다. 진석은 유림의 비명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새빨간 피가 튄 얼굴로 시끄럽다, 시끄럽다 중얼거렸다. 아이의 환영은 사라지고 피는 멈췄다. 다시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된 유림은 가슴에 전해지는 통증에 이를 악물었다. 방황이라 치부했던 그 기억은 언제였을까. 진석은 위층소음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투덜거렸다. 유림도 인준도 신경 쓰지 마라는 말만 했다. 하루는 아침 일찍 소음이 들린다며 경비를 불렀다. 경비가 초인종을 누르는 소리에 잠이 깬 유림은 화를 냈다. 인준은 위층이 시끄럽긴 하지만 아이들 키우는 집이니 이해하자 말했다. 또 하루는 진석이 위층을 찾아갔다. 위층 남자는 자기들이 범인이 아니라 소리쳤다. 자신을 거짓말쟁이 취급하냐는 남자의 말에 진석은 점점 위축되어 갔다. 돌아온 진석을 두 사람은 혼냈다. 네 할 일을 하면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고 다그쳤다. 그리고 2년 뒤 진석은 식칼을 들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위층에는 아이들만 있었고 겁먹은 아이들은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현관문을 발로 차고 고함을 지르던 진석은 손잡이를 칼로 내리치다 오히려 팔에 상처를 입었다. 위층 남자는 흥분해 소리쳤고 인준은 미안하다 고개를 숙였다. 진석은 어린아이처럼 울며불며 말했다.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잘못한 건 저 아저씨라고. 더 오랜 시간 고통 받은 건 자기라고.

 

혜정은 오랜 시간 진통을 견뎠다. 악에 받친 듯 신음 한 번 세게 내뱉지 않았다. 옆에서 손을 잡고 있던 유림은 진석을 보았다. 그는 맞은편에 서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래, 넌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했지. 학부모 모임에 가면 여자아이들에게 친절하다고 칭찬이 자자했어. 성실하고 겸손한 널 싫어하는 선생님은 없었어. 넌 항상 사랑받고 존중받고 있다 그렇게 생각했어. 그런데 다 아니었던 거니? 난 네가 이 아이를 존중하고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했단다. 이런 착각을 한 게 처음이 아니지. 네 아버지가 산에서 다리를 다친 날 너에게 부탁했지. 함께 산에 가서 아버지를 찾자고. 컴퓨터 앞에 선 네가 한숨을 쉬며 했던 말을 기억한단다. 오늘 같이 안 좋은 날 산에 가지마라고 말했는데 왜 가서 민폐를 끼치는지. 봐 봐요. 핸드폰 또 안 가져갔잖아요. 남이 말해도 듣지를 않아, 정말 지긋지긋해. 내가 왜 찾으러 나가요. 잘못되면 뭐, 다 자업자득이지. 사랑한 게 아니었어. 넌 나도, 네 아버지도, 그리고 아내도 한 번도 사랑한 적 없었던 거야. 그래서 우릴 두고 사라질 수 있었던 거지. 넌 마음이 따뜻한 아이야. 그래서 그 따뜻함이 배신당했을 때 더 큰 분노를 품게 되는 거야. 네가 무슨 이유로 혜정이에게 화가 났는지 난 알지 못한다. 내가 미우면 내게 복수하렴. 네 아내랑 아들이 아닌 날 괴롭히렴. 네 아버지에게 그랬던 거처럼 내게 고통을 줘. 그리고 돌아와. 네가 없으면 가족은 버틸 수 없어. 그러니 제발, 제발 돌아와 주렴.

 

진석과 규선은 바퀴자국을 따라 다시 돌아간다. 두 사람은 말이 없다. 한 사람은 입에 천을 가득 물어 말을 할 수 없고 다른 한 사람은 말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자줏빛 하늘이 사라지고 안개가 모습을 드러낸다. 진석은 익숙하게 안개길 사이를 지나간다. 규선은 손가락으로 사진을 가리킨다. 그 방향은 희수를 향해있다.

 

진석 : 너 혹시 양치기 소년 이야기 아냐? 어느 날 양치기 소년이 따분해서 늑대가 나타났다라고 거짓말을 했대. 그러니까 마을 사람들이 늑대를 잡으려고 달려 나온 거야. 여기에 재미를 느낀 소년이 두 번, 세 번 거짓말을 하고 마을 사람들은 그 거짓말에 속아서 화를 내. 그러다 진짜 늑대가 나타나. 양치기 소년은 마을 사람들을 부르지만 거짓말이라고 생각한 마을 사람들은 나타나지 않지. 결국 양치기 소년도 양도 모두 늑대에게 잡아먹혀. 난 말이지, 희수가 늑대라고 생각해. 그 애는 양을 차지하고 싶었어. 그래서 순진한 양치기 소년을 꼬드겼지. 양치기 소년은 마을 사람들을 실망시켰어. 거짓말을 하고 자신을 도우러 온 그들을 비웃었어. 믿고 맡겨준 모두를 괴롭혔어. 그래서 벌을 받은 거야. 늑대에게 먹혀서 그 뱃속에서 살게 된 거라고. 늑대가 죽어도 소년은 그 배에서 나올 수 없어. 양의 털에 묶여 순수함을 강요받은 악마의 재물인데 평범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겠어.

 

진석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 그는 양이다. 여리고 힘없는 양이 양치기 소년에게 조롱당했다. 그 양치기 소년 희수는 악마 같은 남자에게 구타당했다. 지켜보던 양은 그 충격으로 울타리를 탈출했다. 남겨진 마을 사람들은 그 양 한 마리를 찾고 있다.

 

진석 : 넌 날 이해하지 못할 거야. 아니, 이해해선 안 되겠지. 내가 한 가장 큰 실수 중 하나는 친구를 만들지 않은 거야. 날 이해해줄 수 있는 완벽한 사람만이 친구라고 생각했거든. 사랑은 참고 인내하는 거지만 우정은 이해하는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었지. 사회에 나가면 어른이란 존재 중 그런 사람이 날 안아줄 거라 생각했어. 하지만 그들은 더 큰 어른을 원했고 난 그 기준에 맞지 않았지. 그래서 널 계속 만났을지 몰라. 적어도 넌 내가 하는 이야기가 뭔지 이해할 수 있으니까. 공감은 못해도 지루해서 하품은 해줄 수 있으니까. 안 그래, 광식아?

 

한 번의 광명이 비친 뒤 바퀴는 아스팔트 위로 떨어진다. 진석은 엑셀을 밟는다. 꺼져 있던 내비게이션에서는 다시 불이 들어오고 오늘 날짜를 표시한다. 규선은 스마트폰을 들어 자신에게 온 문자를 보내준다. 진석의 얼굴은 붉어진다. 이를 악문 그는 더욱 세게 엑셀을 밟는다.

 

새빨간 덩어리 같았던 아기의 얼굴이 선명히 보인다. 혜정의 몸은 느리지만 회복되고 있다. 조그마한 손이 움직인다.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그 순간 하나하나가 그녀에겐 일출만큼 황홀하고 아름답다. 눈을 감기 두렵다. 어둠이 지난 뒤 모든 게 사라지면 삶이 멈춰버릴 것만 같다. 침대 위에 있던 진석이 사라졌던 그 날처럼 일상이 지워지는 미래가 공포를 유발한다. 아기의 손짓에 잠시 눈을 감았다 뜬 순간 문이 열리고 신발 소리가 들린다.

 

혜정 : , 여보.

 

지구의 자전축은 반대로 움직여 제자리를 찾았다. 일상으로의 화려한 초대장에 답이 도착했다. 혜정은 손을 내민다. 얼음처럼 굳은 남편은 아내와 아기를 내려다본다.

 

혜정 : 여보, 우리 아이에요. 당신을 오랫동안 기다렸어요. 여기, 안아 봐요.

 

진석은 아기를 안는다. 마주친 눈은 어린 시절 거울 속에 비쳤던 눈동자와 같다. 아기의 조그마한 입은 미래를 말한다. 진석은 반박한다. 너는 과거의 존재라고. 아기는 말한다. 시간은 역행하지 않는다고. 진석은 화를 낸다. 어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고. 아기는 울먹인다. 그 시간 안에 우리를 가두지 말라고. 진석은 체념한다. 이미 너무 늦었다고. 진석은 아기를 반대편 침대에 내려놓는다. 그는 혜정의 손을 잡는다. 그녀가 말을 꺼내기 전 억세게 그녀를 잡아당긴다. 밀려난 혜정은 문 밖으로 튀어나온다. 벽에 부딪쳐 주저앉은 그녀의 목을 진석은 두 손으로 잡고 조른다. 진석의 눈을 따라 혜정의 눈에서도 눈물이 흐른다. 서로가 품은 슬픔은 참지 못한 채 눈꺼풀 아래로 쏟아진다. 진석의 입은 작은 소리로 혜정의 마음을 도려낸다. 죽어, 죽으라고, 죽어. 혜정은 눈을 감는다. 간호사들이 달려오고 경호원들이 나타나며 유림이 고함을 지르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혜정은 진석의 간청을 들어줬을 것이다. 사방에서 달려든 손은 진석을 끌어낸다. 그들은 듣지 못할 것이다.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꼭 전하고 싶었던 그의 외침은 또 다시 늑대의 뱃속에서 잠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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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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