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의 재림을 고대하며: 2019 흥행 한국영화 결산

장가영 | 기사승인 2020/01/13 [10:00]

코미디의 재림을 고대하며: 2019 흥행 한국영화 결산

장가영 | 입력 : 2020/01/13 [10:00]

[씨네리와인드|장가영 리뷰어] 2019, 한국영화 100주년이자 1000만 영화 5편이라는 쾌거를 이룬 해다. 스크린 독과점 문제를 피할 수는 없었으나 <극한직업>, <어벤저스: 엔드게임>, <겨울왕국2>, <알라딘>, <기생충>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웃었고, <엑시트>,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도 각각 920, 800만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2019 영화계 가장 큰 이슈는 단연 봉준호 감독과 영화 <기생충>이었다. <기생충>은 황금종려상을 비롯한 수많은 국내외 영화제 상을 휩쓸었으며 한국 영화 최초로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고 아카데미 수상 또한 기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국내외 영화제를 통틀어 35관왕을 차지한 신인 김보라 감독의 <벌새>, <우리들>로 앞서 호평받은 윤가은 감독의 <우리집>, 독특한 연출 방식으로 주목받은 이옥섭 감독의 <메기> 등 독립 영화의 약진도 눈여겨 볼만했다. 더불어 여성 감독들의 눈에 띄는 성과와 <캡틴 마블>, <걸캅스>, <82년생 김지영>, <미성년> 등 여성 서사 작품들의 의미 있는 결실은 익숙한 남성 서사에서 벗어나는 데에 기여하며 영화계 새로운 흐름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과 주연 배우 송강호 © 게티이미지 코리아

 

이처럼 2019년은 기억할만한 한국 영화계의 성과, 다양한 흐름의 생성과 변화로 한국 영화 1세기를 마무리 짓고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기에 충분한 한 해였다. 앞서 돌아본 것처럼 2019년을 보내며 논의할만한 화제가 무수히 많지만, 그중에서도 한 가지를 뽑자면 코미디의 부활을 뽑고 싶다. 2019년 가장 흥행한 한국 영화 3편은 <극한직업>, <기생충>, <엑시트>로 추려진다. 그리고 이 영화들은 신선한 웃음이 그리웠던 많은 이들에게 코미디 재림의 신호탄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비교적 최근까지도 코미디는 한국 영화의 주요한 한 축을 담당하며 우리에게 익숙한 장르였다. 비록 천만 영화의 대열에 낀 영화는 <7번방의 선물> 한 편 뿐이지만, 오래도록 회자될 만한 코미디 영화가 매년 꾸준히 등장했으며 국산 코미디는 웃음을 유발하는 동시에 감동적인 코드까지 담아내어 우리 삶을 반추하게 해주는 한국 영화계의 소중한 유산이었다. 2000년대를 되짚어보면 <엽기적인 그녀>, <가문의 영광>, <귀신이 산다>, <두사부일체> 시리즈, <미녀는 괴로워>, <과속스캔들>, <헬로우 고스트> <써니>, <7번방의 선물>, <수상한 그녀> 등 굵직한 작품들이 매해 관객을 웃기고 울리며 굳건히 자리를 지켜왔다.

 

그런데 2014<수상한 그녀>를 마지막으로 몇 년 간 흥행 한국 영화 목록에서 코미디를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물론 <완벽한 타인>, <럭키> 등 그 사이 흥행한 코미디 작품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이례적 성공으로 기록되었다는 점에서 오히려 코미디 침체기를 반증하는 역할을 했다. 코미디 침체기의 이유는 <베테랑>의 성공과 함께 본격화된 범죄물의 성행, ‘CJ 감성이나 신파적이다같은 말이 유행을 타고 sns에서의 입소문이 영화 흥행의 주된 요인으로 작용하기 시작한 데서 찾을 수 있을 듯하다. 또한 <신과 함께>, <아가씨> 등으로 대표되는 장르영화나 <보헤미안 랩소디>, <라라랜드> 등의 음악영화가 잇달아 큰 성공을 거두며 본격적으로 ‘n유행이 번지고, 더 나아가 드라마’, ‘코미디등의 정통 장르에 비해 예술적이고 미학적인 영화를 찾는 추세가 늘었다는 점도 주요한 변화 요인이었을 것으로 전망된다. 타 장르와 자주 경계가 겹치고 가장 익숙한 장르라는 점에서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드라마와 달리, 코미디는 곁들이기수준의 장르로 수명을 다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조금씩 생겨났다. 또한 TV에서도 코미디 프로그램이 하나 둘 힘을 잃으며 코미디의 몰락에 대한 우려가 현실이 되는 듯했다. 그런데 2019년 코미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들이자 코미디 부활의 초석 역할을 해 줄 작품들이 등장했고 그 해 한국영화 중 최고의 흥행작으로 기록되는 영광을 안았다. 따라서 <극한직업>, <기생충>, <엑시트>의 성공을 단순한 흥행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이 세 영화의 흥행은 그리웠던 한국적 정서, ‘의 영화적 재림을 상징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 <극한직업> 스틸컷  © 네이버 영화



같은 코미디 장르라고 해도 <극한직업>은 정통 코미디, <기생충>은 블랙코미디, <엑시트>는 재난 코미디로 분류할 수 있다. <극한직업>은 우리가 익숙한 치킨이나 수사라는 소재, 그리고 슬랩스틱과 대사로 관객들을 웃긴다. 참신하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설 시즌에 온가족이 즐길 수 있으면서 실제로 재미있는코미디를 만들어냈다는 점에 박수를 치고 싶다. 특히 이병헌 감독 특유의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재기 발랄한 대사는 다소 뻔한 스토리나 캐릭터 구성의 빈틈을 메우며 캐릭터 간의 케미스트리와 스토리의 맛을 살리는 역할로 관객의 혼을 쏙 빼놓았다. <극한직업>에서 무엇보다 매력적이었던 점은 지나침이 없다는 것이었다. 코미디 장르 특성상 오버액션이나 개연성이 부족한 부분, 뜬금없는 슬랩스틱 등은 어느 정도 참작되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면 관객은 지쳐 나가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극한직업>은 그런 지나침 없이 코미디의 적당선을 지킨다. 일례로 이병헌 감독의 전작인 <스물>의 경우 재미있는 부분도 많았으나 성적인 묘사가 과도해 불편했다, 온 가족 영화로는 전혀 적합하지 않다라는 평이 많았다. <극한직업>은 다방면에서 중용을 지키며 누구와도 웃을 수 있고, 또 찝찝함 없이 시원하게 웃을 수 있는 영화였다. 단순히 적당한 시즌, 적당한 장르였기 때문에 <극한직업>1600만 관객을 동원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많은 운이 따랐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 <기생충> 스틸컷  © 네이버 영화

 

<기생충>은 장르를 특정하기 힘들지만 블랙코미디 요소가 영화 정체성의 많은 부분을 형성하고 있다. 네이버 영화에는 드라마 장르로 구분되어 있으나 외신의 소개나 관객들의 리뷰를 보면 블랙코미디스릴러가 결합된 장르라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실제로 <기생충>이 개봉하기 전에 <기생충>의 장르를 예측해보는 것이 하나의 재미였고, 개봉 후에도 특정 지점을 전후로 영화의 장르가 완전히 바뀐 것 같았다는 후기가 많았다. <기생충>이 영화적으로 어떻게 훌륭한지 설명하는 것은 지금 시점에서 별로 의미가 없을 것 같아 코미디 장르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해보자면, <기생충>은 장르 재발견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흔히 코미디 영화라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이미지에는 그렇게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농담, 슬랩스틱, 단편적으로는 웃음을 유발하는 데에만 주안점을 두어서 큰 의미 없는 서사, 엔딩까지. 하지만 <기생충>은 블랙코미디로 사회의 어두운 상을 정확하게 꼬집고 더 나아가 장르를 혼합시키는 데에 성공하며 장르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기생충>은 웃길 부분에서 확실히 웃기지만 <극한직업>과 달리 찜찜한 웃음을 남겨 관객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영화였다. 이는 코미디에 대한 편견을 상쇄하고 장르 혼합의 참신함을 보여주면서 여전히 코미디 장르의 요소는 갖추었다는 의의를 갖는다. , <기생충>은 그야말로 장르의 재발견을 몸소 실현한 영화다. 

 

▲ <엑시트> 스틸컷  © 장가영

 

장르 혼합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엑시트><기생충>은 유사하다. 관객들은 주로 쫄깃함’, ‘긴장’, 마지막 카타르시스를 위해 재난영화를 찾는데, <엑시트>는 그러한 재난영화의 특성을 착실히 수행한다. 그런데 <엑시트>의 특이한 점은 <기생충>처럼 코미디가 부분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코미디의 틀에 재난의 상황을 덧붙였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코미디의 컨벤션을 따라간다는 것은, 특히 코미디 침체기에 코미디의 컨벤션을 따라간다는 것은 많은 위험이 따르는 일이다. 또 관객들은 ‘CJ 감성’, ‘신파가 싫다고 분명하게 밝힌 바 있으며, ‘CJ 감성’, ‘신파등은 감동과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하며 국산 코미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엑시트>는 장르 혼합에 성공하고 코미디의 컨벤션을 잘 따르면서 그 마무리까지 많은 국산 코미디가 표방했던 감동이라는 목표를 수행해냈다. 가족과 희생이라는 소재를 끼고도 신파로 가지 않았으며, 어쩌면 코미디가 가장 궁극적으로 관객들에게 안겨 주어야 할 따뜻한 웃음과 감동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극한직업>과 유사하게 중용을 잘 지켜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엑시트>를 통해 우리가 오랜만에 다시 확인할 수 있었던 국산 코미디의 특별함이다. <엑시트>가 뻔하고 전혀 특별하지 않았으며 관객 수를 이해하기 힘들다고 하는 후기를 종종 봤다. 그 후기들에는 동의할 수 없음을 밝힌다. <엑시트>는 분명 국산 코미디의 소중한 유산과 새로운 가능성을 한데 모아 일구어낸 아주 특별한 영화다.

 

지금까지 2019 한 해 가장 흥행한 3편의 한국영화를 통해 코미디 장르의 가능성을 살펴봤다. 코미디가 흥하는 것은 현실이 즐겁고 행복한데 영화로도 보고 싶어서라기보다 영화로나마 즐거움을 찾고 싶어서, 마음 놓고 웃고 싶어서일 확률이 높다. 코미디 영화처럼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가 않다. 문제를 이야기하자면 끝도 없고 하루하루 곪아 들어간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현실 도피를 위해 사람들이 코미디를 다시 찾는다 해도 아무도 그들을 비난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 삶과 코미디 영화가 그리 멀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삶 속에는 분명 눈물이 날 만큼 웃긴 순간들이 있고, 눈물도 안 날 만큼 슬픈 순간들도 있다. 뿌듯하게 가슴이 따뜻해지는 순간들이 있고, 힘들고 괴로워 남을 돌아볼 수조차 없는 순간들도 있다. 우리 삶에는 모든 장르의 영화가 공존한다. 다만 편집되지 않을 뿐이다. 2020년의 우리는 이 거대하고 장르 복합적인 영화를 조금 더 즐길 수 있길, 하지만 코미디 장르의 비율이 조금 더 높아지길 바라본다. 또 새롭게 단장한 국산 코미디가 눈물이 날 만큼 웃긴 몇몇 순간들을 만들어주길 기대하며 2019년 흥행 한국영화 결산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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