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사로잡은 '기생충', 어떻게 자본주의 시스템의 문제를 담아냈나

'기생충'과 '조커'에 담긴 자본주의 시스템의 문제와 빈부격차

김준모 | 기사승인 2020/01/14 [10:00]

전 세계 사로잡은 '기생충', 어떻게 자본주의 시스템의 문제를 담아냈나

'기생충'과 '조커'에 담긴 자본주의 시스템의 문제와 빈부격차

김준모 | 입력 : 2020/01/14 [10:00]

▲ '기생충' 골든글로브.  © CJ 엔터테인먼트

 

[씨네리와인드김준모 기자] 한국영화사 100년을 맞이했던 지난 해 <기생충>은 이를 기념하는 최고의 작품이었다. 한국영화사 최초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건 물론 올해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며 새로운 기록을 써 내려가고 있다. 이에 아카데미 시상식 최초 한국영화가 후보에 노미네이트 되는 건 물론 수상 역시 기대하게끔 만들고 있다.   미국 내에서의 흥행 열풍은 물론 HBO에서 드라마화가 결정되며 해가 바뀌어도 식지 않는 열풍을 과시하고 있다. 이에 <기생충>의 열풍을 두 가지 측면에서 분석해 보고자 한다. 첫 번째는 그 주제의식이다. 주제의식은 극장 문을 나서는 관객들에게 영화가 던지는 숙제며 오랜 시간 영화를 각인시키는 힘이다.   두 번째는 런닝타임 내내 관객에게 재미를 준 핵심요소인 서스펜스다. <기생충>이 높은 오락적인 만족도를 보여주며 흥행에 성공했던 이유 중 하나는 서스펜스에 있다. <마더>에서 훌륭한 서스펜스로 관객들에게 높은 스릴감을 선사했던 봉준호 감독인 만큼 영화에 담긴 오락요소인 서스펜스를 <마더>와 엮어 분석해 보고자 한다.   이번 기사에서는 <기생충>의 주제의식을 바라보고자 한다. 빈부격차와 청년실업, 빈곤의 문제는 더 이상 특정 국가들의 문제가 아닌 전 지구촌이 공동으로 직면한 과제다. 꾸준히 노동자와 빈민계층의 문제를 주목해 온 켄 로치와 다르덴 형제는 물론 전 세계 영화계를 주름잡는 할리우드 역시 이 문제에 주목하고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미국 사회는 자본주의가 지닌 맹점을 의식했다. <마진 콜>, <라스트 홈>, <빅쇼트> 등의 작품들이 이에 대해 다루면서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현상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에 다가서지 못한다. <라스트 홈>을 예로 들자면 부동산 대공황 사태를 이용해 집을 빼앗는 부동산 브로커 릭 카버는 돈을 최우선의 가치에 두는 냉철한 성격의 전형적인 악역이다.   돈을 최우선의 가치에 두는 냉철한 이들 때문에 자본주의의 맹점이 발생한다는 건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소재다. 하지만 일상에서 느끼는 문제는 이런 시각과 차이가 있다. 모든 이들이 부자와 가까이 있지 않으며 모든 부자에게서 릭 카버와 같은 서늘함과 이기심을 발견하지 않는다. 영화가 보여주는 전형적인 이미지는 선과 악의 대립이라는 고전적인 이야기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 <기생충> 스틸컷   CJ 엔터테인먼트  

 

<기생충>에서 동익과 그 가족들의 캐릭터는 자본주의 사회의 정점에 서 있는 전형적인 악역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기택 가족에게 속아 그들을 집으로 들이는 모습은 속된 말로 호구에 가깝다. 기택이 동익을 향해 참 좋은 분이라고 말하는 장면은 속아줘서 고맙다는 조롱의 의미가 담겨있는 느낌마저 준다. 하지만 이런 느낌은 지하실의 존재가 드러나면서 완전히 바뀌게 된다.   이전까지 관객들의 뇌리에 강하게 박힌 건 기택 가족이 사는 반지하였다. 오토바이 매연이 그대로 들어오고 밖에서 안을 다 볼 수 있는 집의 구조는 충격을 준다. 하지만 동익의 대저택에 지하실이 있고 그 지하실에서 몰래 숨어서 산 근세의 모습이 나타난 순간 영화는 극적인 변화를 보여준다. 동익의 등에 올라타 피를 빨아먹고 있다 생각했던 기택이 또 다른 ‘기생충’을 만나버린 것이다. 이 지점에서 관객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진정한 맹점과 마주한다. 빈민층인 기택 가족과 근세 가족은 연대를 이뤄 상류층인 동익에게 대항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들끼리 싸움을 반복한다. 아등바등 살아간다는 말이 어울리는 이 대립은 왜 빈부격차는 줄어들지 않으며 상류층의 만행에 중하류층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지 잘 보여준다. 함께 연대를 해 상류층에 맞서고 불공정한 경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야 될 때 자기들끼리 싸움을 반복한다.

 

▲ '기생충' 스틸컷.  © CJ 엔터테인먼트


그들의 대립에 동익은 관여하지 않는다. 이 점은 영화가 지닌 가장 큰 매력이라 할 수 있다. 기택과 근세의 갈등과 대결은 동익의 저택에서 일어난다. 이 저택은 사회적인 시스템이다. 시스템 안에는 선도 악도 없다. 기택과 근세는 각자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고 그 과정에서 서로에게 칼을 겨눈다. 이는 동익과 같은 상류층이 만든 시스템에 그들이 갇혀 있음을 의미한다.   <기생충>의 열풍은 현상이 아닌 그런 현상을 일어나게 만든 자본주의 사회가 지닌 시스템 그 자체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영화에 선인이 없지만 희극이 있고 악인이 없지만 비극이 있는 거처럼 사회의 시스템 역시 마찬가지다. 그저 시스템의 우위에 섰다는 이유로 악인이 되고 아래에 있다는 이유로 선인이 되지 않는다. 자본가는 가해자고 노동자는 피해자라는 공식보다 왜 이런 공식이 등장했는지에 주목해야 될 시점이라는 것이다. 현상과 시스템은 미묘한 차이처럼 보이지만 문제를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 다름을 보여준다. 한 영화를 보고 관객이 그 현상에만 집중하느냐 아니면 그 현상이 일어나게 된 원인 자체를 바라보느냐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런 <기생충>의 열풍과 엮어 생각해 볼만한 영화가 <조커>다. 이 영화의 흥행을 예상한 이들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코믹스 원작이지만 기존 코믹스 원작 영화들처럼 액션과 오락적 요소가 풍성한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 <조커> 스틸컷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그럼에도 이 작품이 많은 관객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아서 플렉이 조커가 되어가는 과정이 주는 슬픔과 우울이 우리의 삶과 너무나 닮아있기 때문이다. 정신적인 고통을 겪는 아서를 도와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가 사는 고담시는 쓰레기 때문에 도로에 쥐가 넘쳐나도 해결되지 않을 만큼 빈민의 삶에 무심하며 빈민들은 서로를 때리고 공격하며 비참한 삶을 살아간다.   아서가 받던 심리 상담이 복지축소로 없어지는 장면이나 광대 일 중 아이들에게 집단으로 얻어터진 아서를 오히려 제대로 일을 안 했다 탓하는 사장의 모습은 거대한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하며 웃음을 터뜨리는 고담시 상류층들의 모습과 대조를 이룬다. 코미디언이 되고 싶은 아서의 웃음에는 아무도 공감해주지 않지만 그들의 웃음에는 전염이 있다. 진정으로 행복해서 나오는 웃음이기 때문이다.   행복이란 감정마저 자신들만 누릴 수 있는 고담시의 시스템은 왜 아서 플렉이 악의 상징인 조커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시스템에 희망이 없어지는 순간은 그 시스템을 만들고 조정하는 이들에게서 어떠한 의지와 노력도 발견하지 못할 때다. 조커의 난해한 춤이 감정적인 격화를 이끌어낸 건 그 동작 하나하나에 담긴 슬픔에 대한 공감과 계단을 내려올 때 느껴지는 해방감에서 비롯되었다 볼 수 있다. 

 

▲ '조커' 스틸컷.  © 워너브라더스코리아(주)


 <기생충>과 <조커>가 주는 계단의 느낌을 다르다. 다만 한 가지 공통점은 두 작품의 계단 모두 시스템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기생충>의 계단은 아래로, 더 아래로 내려가면서 끝을 알 수 없는 밑바닥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마주하기 싫은 현실이다. 햇빛이 들지 않는 어둠이 있다는 걸 사람들을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위를 보면 희망을 꿈꾸지만 아래를 보면 절망이 들기 때문이다.   반면 <조커>의 계단은 희망을 꿈꾸고 위로 오르고 또 오르지만 결국 오를 수 없는 행복이란 정상을 보여준다. 계단을 오르는 아서 플렉의 굽은 등과 계단을 내려오는 조커의 가벼운 발걸음은 행복이란 부담에서 해방될 때 진정한 웃음에 다가설 수 있는 씁쓸한 현실을 보여준다. 이는 두 작품 모두 계층을 상징하는 계단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가 지닌 시스템을 비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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