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들의 무관심, 우리는 왜 냉정해지기를 강요받는가

[서평] '무관심의 시대'

김준모 | 기사승인 2020/02/04 [10:30]

현대인들의 무관심, 우리는 왜 냉정해지기를 강요받는가

[서평] '무관심의 시대'

김준모 | 입력 : 2020/02/04 [10:30]

▲ 책 '무관심의 시대' 표지.  © 나무생각

 

[씨네리와인드|김준모 기자] 인문학의 출발점은 질문에서 시작된다.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에 따라 그 사회적 현상을 인문학적으로 풀어내는 방향성이 잡힌다. 알렉산더 버트야니의 <무관심의 시대>가 던지는 질문은 요즘 서점에서 베스트셀러를 차지하는 에세이 작품들과는 다르다. 그 점이 먼저 호기심을 자극한다.

 

현재 유행하는 에세이 작품들의 특징은 '개인의 행복'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남들에게 조금은 무관심하고 이기적으로 살아도 괜찮다는, 한 마디로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자신을 위해 살아가라 말한다. 이에 대해 알렉산더 버트야니는 이렇게 말한다. 무관심하고 이기적인 시대에 '더 무관심하고 이기적으로 살아도 괜찮아'라고 말하는 에세이가 특별한 가치를 지니기 힘들다고 말이다.

 

실존주의 치료의 하나인 의미치료의 창시자 빅터 프랭클 재단의 이사이자 의미치료 전문가인 그는 현대사회가 지닌 방향성에 의문을 던진다. 소확행을 말하고 신경 끄기의 기술을 배우는 시대의 이들에게 과연 진정으로 행복하냐고. 진정 행복하다면 왜 상대적 박탈감을 겪고 인간소외 현상에 시달리며 증오와 혐오로 가득한 인터넷 문화가 형성되느냐고 질문을 던진다.

 

그는 현대를 무관심의 시대라 정의하며 이기적인 삶의 태도가 위기를 가져왔다 말한다. 그 원인은 존재적 위기에 있다. 존재적 위기에 대한 설명은 2차 세계대전과 현대의 젊은 층의 비교를 통해 쉽게 설명할 수 있다. 2차 대전 당시 빅터 프랭클이 청년들을 상담한 내용을 보면 그들은 전쟁으로 인한 무기력증에 시달렸다. 1차 대전과 2차 대전을 겪으며 소멸을 경험했고 자신들이 무엇을 해낸다 하더라도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소멸될 것이라는 마음을 지녔다.

 

이는 그 어떤 시대보다 부유하고 안전한 현대에도 마찬가지다. 현대인들에게는 희망이 없다. 극심한 빈부격차와 계급 사다리는 희망을 걷어차 버렸다. 그러다 보니 세상과의 소통을 포기하고 내가 세상에 바라는 게 없듯이 세상도 나에게 바라는 게 없다고 생각한다. 이 과정에서 실존의 가치를 잃어버린 인간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해야 되는지 알지 못한다. 한 마디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란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

 

이는 책임회피로 이어진다. 자신의 실패나 좌절에 남 탓을 하기 바쁘며 책임질 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런 성향은 맹목적인 추종주의와 전체주의를 따르게 만든다. 집단에 껴서 목소리를 내면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면서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이라 여기게 만든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살아가는 이런 삶의 모습은 꿈과 희망을 잃어버리고 자기 자신에게도 무관심해 버린 진정한 '무관심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보여준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의미치료에 기반을 둔 자유와 희망을 말한다. 의미치료는 실존적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와 욕구를 다룸으로써 무의미, 무목적, 공허함 등 실존적 공허에 시달리는 이들에 대한 치료법을 제시한다. 이 치료는 윌리엄 글라서의 현실치료와 비슷하다. 심리학의 아버지 프로이트가 우울이나 불안 등 심리의 원인을 밝히는데 주력했다면 현대의 심리학은 이 우울과 불안을 어떻게 행복으로 바꾸는지에 주력한다.

 

작품에서 이야기하듯 현실의 벽이 높고 힘들다 하더라도 심리치료사가 현실을 바꿔줄 수 없는 노릇이다. 결국 중요한 건 개인 내면의 변화다. 이 변화는 희망과 자유에서 비롯된다. 개인에게 더 많은 자유가 있음을 알려주고 그 안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게 이끌어내야만 행복을 성취할 수 있다. 희망의 시작은 세상과의 연결에 있다. 무관심의 시작은 세상과의 단절에서 비롯된다.

 

내가 세상이 필요하지 않듯 세상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마음이 단절을 가져온다. 문제는 다수의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면 세상은 돌아가지 않는다. 온정과 도움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이를 다수가 무시한다면 그 개개인은 소외와 고독, 어려움을 겪게 된다. 세상이 나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마음을 가져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고 세상과 함께할 수 있다는 희망을 지니게 된다.

 

작품은 그 시작을 자유와의 만남에서 본다. 미래를 그리고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할 때에 희망을 그릴 수 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두 가지 사례를 드는데 그 중 하나는 30년대 대공황 당시 빅터 프랑클의 상담 내용이다. 그는 당시 절망에 빠진 실업자들에게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조언했다. 이 상담은 그들의 현실을 바꿀 수는 없었지만 정신적인 위안을 줄 수 있었다.

 

자원봉사나 영어공부를 하면서 그들은 정신적으로 세상이 나를 필요로 한다는 생각을 지니게 되었고 정신적인 공허함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두 번째는 젊은 심리학자이자 보육원 원장의 이야기로 그가 어떻게 보육원 원장이 되고 남을 돕는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어린 시절 학대를 당했던 그는 어쩌면 같은 경험을 지닌 다른 이들처럼 학대의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을 돕겠다는 희망을 지니고 세상과 만난 순간 과거의 아픔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런 선택은 자유와도 연관되어 있다. 시간은 유한하기에 자유는 제한적이다. 즉 평생을 과거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며 치유되길 기다릴 수 없다.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적극적으로 사용해 세상에 나아가고 희망을 그려야 한다.

 

개인의 행복과 자유를 중시하는 시대에 연대와 의존을 말하는 이 작품의 시선은 의아하게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무관심의 시대에 진정 행복하냐는 질문에 '그렇다'라 답할 수 없는 현대인들에게 이 책이 던지는 화두는 의미심장하다. 행복은 내 안이 아닌 세상에 있고 현실을 바꿀 수 없다면 정신이라도 해방과 따스함을 경험하라는 메시지는 가슴 한 구석을 어루만져주는 치료의 힘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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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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