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러운 막대기가 요리하는 영화 ‘키친’(キッチン(1989))

재팬 파운데이션 무비 페스티벌 상영작

김재령 | 기사승인 2019/04/09 [10:14]

사랑스러운 막대기가 요리하는 영화 ‘키친’(キッチン(1989))

재팬 파운데이션 무비 페스티벌 상영작

김재령 | 입력 : 2019/04/09 [10:14]

 

▲ 재팬 파운데이션 무비 페스티벌 키친 무대인사     ©김재령 개인 촬영

 

 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와 한국영상자료원에서 공동으로 주최한 '제7회 재팬 파운데이션 무비 페스티벌'이 3월 22일부터 3월 31일까지 진행되었다. 특히 올해 주목을 받은 섹션은 '요시모토 바나나 원작 영화 특집'이다. 영화 '키친'의 상영에 앞서서는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가 무대 인사를 통해 한국 관객들과 만남을 가졌다.

 

 영화 '키친'은 모리타 요시미츠 감독의 영화로 요시모토 바나나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작가의 첫 데뷔작을 원작으로 해서 만들어진 영화인만큼 작가 본인에게도 감회가 남다른 듯했다. 작가는 영화의 주인공인 미카게 역할을 맡은 카와하라 아야코와의 첫 만남을 회상했다.

 

 "마치 막대기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카와하라 아야코는 모델 출신으로서 176cm의 장신이다. 외적으로 봤을 때도 키가 크고 늘씬한 몸매를 지닌 그녀가 걸어 다니는 막대기로 보였지만, 젊은 신인 배우였던 그녀의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워서 더더욱 힘없는 하나의 막대기 같았다고 이유를 덧붙였다.

 

 "하지만 미카게는 갓 가족을 잃은 사람이잖아요. 그런 사람은 행동이 부자연스러운 게 더 자연스럽죠."

 

 작가가 웃으면서 말했던 '부자연스럽다'라는 말 속에 담긴 진짜 뜻이 무엇인지는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깨달았다.

 

연기는 아쉬웠지만 여우주연상을 주고 싶은 주인공, 미카게

 

▲ 영화 '키친' 포스터     © 다음 영화

 

 주인공 미카게는 유일한 가족이었던 할머니를 잃고 혼자가 된다. 그런 그녀에게 할머니의 단골 꽃가게에서 일하던 유이치는 미카게에게 같이 살자고 제안한다. 미카게와 유이치, 유이치의 엄마, 이렇게 세 사람의 동거 생활이 시작한다.

 

 작가가 말했던 '부자연스럽다'의 말의 숨겨진 주어는 '연기'였다. 실제로 인터넷에서 영화 평을 검색해 봐도 주인공의 연기가 어색하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주인공의 대사 톤도 시선 처리도 어딘가 어색하다.

 

 그러나 미카게의 웃음만은 자연스럽다. 미카게는 영화 시종일관 웃고 있다. 할머니를 잃은 슬픔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유이치의 엄마가 트렌스젠더라는 사실을 알아도 놀란 기색 하나 없이 웃음으로 반가움을 표한다. 웃음도 전염되는 걸까. 카와하라 아야코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미간이 찌푸려지기는커녕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단순히 그녀의 웃음이 귀여워서 웃는 건 아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무심코 폭소가 터진 적도 있었으니까. 유이치의 애인은 둘의 사이를 의심하면서 미카게가 일하는 요리 학원에 찾아와 무례하게 군다. 미카게는 사귀지도 않는 남녀가 동거하는 게 세상 사람들 눈에는 이상하게 보일지 몰라도, 자신은 자신만의 기준으로 살 거라는 의사를 밝힌다.

 

 "이만 가줄래요? 안 그러면 부엌에서 식칼을 가져와서 당신을 찌를 거 같으니까."

 

 해맑게 웃으면서 살벌한 대사를 날리는 미카게. 관객들이 이 장면에서 웃음을 터뜨린 이유는 단순히 평소 미카게의 모습으로부터 상상할 수 없는 의외성 때문만은 아니다.

 

  이 장면이 진정으로 내포하는 바는 미카게가 자신의 의지가 확고한 입체적인 캐릭터라는 거다. 잘 알지도 못하는 남자의 동거 제안을 아무런 의심 없이 순순히 받아들이고, 언제나 헤실헤실 웃기만 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그녀를 수동적인 여성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미카게의 실없는 웃음은 아픔을 잊고 지금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그녀가 주체적으로 선택한 수단이다. 미카게의 웃음에 숨겨져 있던 그녀의 강인함을 발견하고 나서야 관객들은 그녀에게 진정으로 사랑에 빠질 수 있었다.

 

밥심으로 사는 건 누구나 똑같으니까, 생명의 공간 '키친'

 

▲ 키친’(キッチン(1989))     ©kowa international co. ltd

 

 인간은 누구나 살려면 밥을 먹어야 한다. 밥을 만드는 공간인 키친은 가족의 생명을 유지시켜주고 삶을 공유하는 공간이다.

 

 유이치의 집에는 고급 식기가 많이 진열되어 있다. 유이치 모자는 요리를 즐겨하지는 않지만 디자인이 예쁜 식기를 수집하는 것이 취미다. 음식은 없고 음식을 담는 식기로만 채워진 키친, 이는 유이치 모자의 삶의 공허함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요리 연구가 지망생인 미카게는 유이치의 집에 들어오자마자 따뜻한 죽을 만들어서 대접한다. 유이치의 엄마가 고맙다고 말하자 미카게는 말한다.

 

 "그러면 다음에는 에리코 씨(유이치의 엄마)가 요리를 만들어주세요."

 

 서로의 요리를 공유하는 것을 시작으로 미카게는 이들에게 가족으로서 인정받게 된다.

  유이치는 어린 시절 친모와 강아지를 잃은 상처가 있다. 유이치의 엄마는 아들이 미카게를 집에 들인 이유가 어릴 때 기르던 강아지와 생김새가 닮아서 그런 거 아니겠냐고 우스갯소리로 말한다.

 

 미카게 역시 가족을 잃은 슬픔을 지닌 인물이다. 미카게의 전 남자친구를 비롯한 주변 인물들은 미카게의 아픔에 형식적인 위로만을 건넨다. 그러나 미카게와 같은 상처를 지닌 유이치는 지금 미카게에게 필요한 건 따뜻한 가족이라는 걸 알고는 그녀에게 새로운 가정을 만들어준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유이치와 미카게가 냉장고에 물병을 넣는 걸로 마무리된다. 이들은 물병을 밤에 목이 말랐을 때 곧바로 마실 수 있는 생명수라고 칭한다. 이별의 상처를 극복한 둘은 새로운 생명을 얻은 거다.

 

 이 영화는 이별을 소재로 다룬 다른 작품들처럼 남겨진 이들의 눈물이라든가 이별을 극복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명대사가 나오지는 않는다. 미카게의 웃음과 가족의 소소한 일상만이 있을 뿐이다.

 

 무대 인사에서 요시모토 바나나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이별의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에너지를 받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당신도 생명수 한 병을 마신 것처럼 밝은 에너지가 몸에 깃들 거다.

 

[씨네리와인드 김재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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