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원피스를 입은 소녀', 나는 그런 적이 없어

윤형철 감독 - <하얀 원피스를 입은 소녀>

유수미 | 기사승인 2020/02/06 [17:45]

'하얀 원피스를 입은 소녀', 나는 그런 적이 없어

윤형철 감독 - <하얀 원피스를 입은 소녀>

유수미 | 입력 : 2020/02/06 [17:45]

 

▲ <하얀 원피스를 입은 소녀> 스틸컷  © 유수미

 

[씨네리와인드유수미 리뷰어] 거짓말.” 첫 장면, 소녀가 내뱉은 대사이다. 롱샷으로 찍힌 소녀의 모습은 외로워보였고, 세상을 등지고 선 그녀의 뒷모습은 어쩐지 슬퍼보였다. 바다 너머에 있는 하늘을 바라보며 소녀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치는 듯 했다. “나는 그런 적이 없어.” 마치 쏴아아아울리는 파도소리는 마음속으로 울고 있는 소녀의 모습을 대변해 준 것만 같다.

 

하얀 원피스를 입은 소녀가 그랬어요.” 학생들은 사건이 터지기만 시작하면 너도나도 거짓말로 하얀 원피스를 입은 소녀가 그랬다고 둘러댄다. 그렇게 모인 거짓말들은 서서히 진실로 굳혀지기 시작하고 선생님들은 조금의 의심도 없이 그 말을 바로 믿어버린다. 이렇듯 진실이 거짓이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어버리는 아이러니와 한 사람을 희생양으로 몰아버리는 마녀사냥. 이는 마치 현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문제점들을 표현한 것만 같다. 소녀는 학생들의 입방아에 여러 번 오르내리지만 사실 그 누구도 소녀를 본적도, 만난 적도 없다. ‘오직 이야기를 들었을 뿐.’

 

이러한 가운데 주인공 민수 앞에 갑작스레 여자아이 한명이 나타난다. 바로 하얀 원피스를 입은 소녀.’ 그 후, 민수는 자신의 눈에만 보이게 된 소녀와 함께 둘만의 비밀스러운 추억들을 쌓아나간다. 장난을 치고,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러던 어느날, 소녀는 민수에게 간절한 눈빛으로 이야기 한다. “내가 안 그랬다고 말해줘.”

 

▲ <하얀 원피스를 입은 소녀> 스틸컷  © 유수미

 

과연 내 말을 믿어 줄까?’ ‘혹시 나도 잘못되면...민수는 막상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때, 민수의 숨소리, 한숨 소리의 사운드가 마음속 깊이 울려 퍼졌다. 어찌해야할 바 모르겠는 그 마음이 가슴속으로 와 닿았다. 민수와 소녀의 대사가 끊긴 후, 조용히 흐르는 룸톤의 사운드는 답답함과 더불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룸톤은 침묵적으로 흐르지만 오히려 그 침묵이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라고 외치는 소리 없는 아우성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사각 사각.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하얀 원피스를 입은 소녀에 대한 이야기들을 종이위에 적는 아이들. 볼펜소리는 소녀의 마음을 찢는 칼날처럼 느껴졌고, 그 소리는 더욱 커져 소녀의 귀를 잠식한다. 펜을 휘갈기는 소리, 책상과의 마찰로 점점 커지는 소리 등은 소녀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게 그녀의 입을 막아버린다. 볼펜소리는 마치 소녀가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짓누르는 무섭고 폭력적인 고함 같다.

 

▲ <하얀 원피스를 입은 소녀> 스틸컷  © 유수미

 

소문이 정말 무섭구나.” 라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신체적으로, 또 직접적으로 폭력을 가하지 않지만 언어폭력 또한 그것 못지않게 사람에게 큰 피해를 입히는 듯 보였다. 이런 말이 있다. 신체적으로 폭력을 당한 것 보다 마음의 상처가 더 오래간다는 말. 어렸을 적, 손등에 개에게 당해 생긴 흉터보다 쟤 우리 반에 왜와? 진짜 보기 싫어.” 라는 한 사람의 말이 더 아프고 또렷이 기억나는 것처럼.

 

쪽지사건 이후, 민수는 너 개가 그러는 거 봤어?” 라며 아이들에게 화를 내지만 아무도 민수에게 동조하지 않는다. “내가 뭐 어쨌다고.” 라는 무심한 반응을 보이는 아이들. 가해를 하는 사람은 자신이 가해를 했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지만 피해자 입장에선 아이들의 모든 말들이 피해로 다가올 것이다. 이 점에서, 가해자의 시각이 아니라 피해자의 시각으로 그 상황을 다시 돌이켜 보는 것은 어떨까. 가해의 유행에 동조할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상처에 공감을 해나가며 말이다.

 

소녀가 사라지고 난 뒤, 민수는 홀로 집에 가고 홀로 밥을 먹는 등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첫 만남의 장소에서 하얀 원피스를 입은 소녀가 다시 나타난다. 소녀는 우리 바다 갔을 때 나도 소원 빌었어.” 라고 이야기 한 뒤, 민수의 귀에 무언가를 속삭이고 유유히 떠난다. ‘과연 소녀는 민수에게 어떤 이야기를 했을까?’ 민수와 함께 지내면서 해맑게 웃었던, 또 민수에게 기대었던 순수한 그녀의 모습들을 떠올리며 대사 한 문장이 머릿속에 스쳤다.

 

너는 내가 아니라는 거 알아줬잖아. 너랑 계속 즐겁게 지내고 싶다고 빌었어.”

 

▲ <하얀 원피스를 입은 소녀> © 그림: 유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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