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바다에는 어떤 사연이 담겨있나

세 영화 속 바다에서 생긴 일

곽주현 | 기사승인 2020/02/14 [11:40]

그들의 바다에는 어떤 사연이 담겨있나

세 영화 속 바다에서 생긴 일

곽주현 | 입력 : 2020/02/14 [11:40]

[씨네리와인드|곽주현 리뷰어] 사람마다 바다로 향하는 이유는 다르다. 개인마다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에 누구든 바다로 가자!’라는 말을 듣는다면 쉽게 거절하지 못할 것이다. 지쳐있든, 우울하든, 날아갈 듯이 기쁘든, 사랑하든, 행복하든. 바다는 그 모든 감정을 포용한다. 개인적으로도 나는 누군가가 산과 바다 중에 선택하라 한다면 당연히 바다를 선택하겠다. 나의 바다는 혼자일 때도 있었고, 누군가와 함께할 때도 있었는데, 이러한 바다에서의 경험은 영화의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혼자 있는 바다, 함께 하는 바다. 그들은 누구고 왜 그곳에 있었던 걸까. 바다를 배경으로 한 그들의 장면 속에서, 그들은 어떤 감정으로 왜 그곳에서 존재하는지에 대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세 영화를 통해 보려고 한다.

 

 

- 백년해로외전 / Be With Me, 2009

(감독 : 강진아 / 출연 : 이종필, 한예리)

 

첫 번째 바다 영화, 단편 <백년해로외전>이다. 이는 2013년에 <환상속의 그대>로 장편화 된 바 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마친 후 집으로 돌아가던 차경과 집에서 그를 기다리는 혁근의 전화로 영화는 시작된다. 이후 사고가 났다는 것을 알려주는 소리와 함께,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바다 장면이 나온다. ‘차경혁근은 짓궂은 장난을 치며 모래 해변에서의 시간을 보내는 듯하다. ‘혁근을 모래로 묻어버리고는 이내 줄지어 바다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향해 달려가는 차경’. 그를 잡지 못하고 소리 없는 아우성을 내지르는 혁근이 모습이 보인다. 우리는 이미 이상하게 줄지어 차례로 해변에서 바다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보고 현실이 아님을 깨달을 수 있다. 어두운 밤 집으로 향하는 차경의 자전거, 골목에 들어선 자전거 앞으로 다가오는 차의 전조등 불빛, 이후의 사고 음성과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려는 차경의 모습과 떠나는 연인을 잡을 수 없는 혁근의 모습으로 차경이 죽었음을 뜻하는 단서들이었다.

 

▲‘백년해로외전’ 스틸컷.  Ⓒ네이버 영화

 

여기서 바다는 결국 죽음이라는 상황에 놓인 죽은사람과 살아있는사람의 모습을 잘 나타내 주는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신나게 놀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급반전되어 알아버리는 바다의 진실을 알아버린 우리는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바다라는 공간은 산 사람의 것이고 해수욕장에서 즐기는 우리 또한 산 사람이니까. 그러나 차경은 차가운 물속으로 낯선 이들과 함께 들어가 버린다. 이후 차례로 나오는 죽은 차경의 삶을 회상하는 장면들과 자신 때문에 차경이 죽었다고 생각하며 죄책감에 시달리는 혁근이 어떻게 연인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극복한 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지를 다소 신선한 각도로 보여준다. 죽은 이의 회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산 사람에게는 정말 고마운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회상 속에 내가 있다면, 얼마나 내가 그의 삶 속에 들어가 있었는지를 안다면 죽은 사람이 남긴 마지막 선물 같지 않을까.

 

 

꿈의 제인 / Jane, 2017

(감독 : 조현훈 / 출연 : 이민지, 구교환, 이주영)

 

두 번째 바다 영화, <꿈의 제인>이다. 가출 청소년 소현제인을 만나게 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제인소현은 둘 다 자신의 존재를 받아줄 사람이 필요했고,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바로 정호라는 인물이었다. ‘소현제인의 팸에 들어가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며 적응해 나갔고, 꿈 속에서는 늘 정호와 연인이라는 제인과 함께 그가 인천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면서 인천의 바다를 가게 된다. 바다에서 두 사람의 대화는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과장되지 않는 모습으로 진행되지만, 그 대화의 내용은 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제인이 이 영화에서 어떤 큰 울림을 주는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끔 한다.

 

바다로 간 두 사람은 간격을 두고 걷는다. 앞장 서서 걷는 제인은 봉지에 쓰레기를 담는다. 그러고는 가출한 아이들을 왜 일도 안 시키고 데리고 사는지를 묻는 소현의 질문에 제인은 나무 막대를 들고 젖은 모래 위에 선을 긋는다. 사람들은 불행을 가지고 태어나서 일직선의 인생을 사는데, 그 가운데 드문드문 행복이 있을까 말까 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그은 선 위에 모래를 뿌린다.

 

개같이 불행한 인생 혼자 살아 뭐하니. 내가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지. 아무튼, 그래서 다 같이 사는 거야.”

 

▲‘꿈의 제인’ 스틸컷.  Ⓒ네이버 영화

 

모래사장에 널브러진 쓰레기를 주워 담고, 주운 사람이 임자라며 팔고 있는 비치볼을 가지고 달아나는 모습은 제인이 가출한 아이들을 특별한 이유 없이 데려다 함께 사는 모습과 겹쳐 보인다. 누구나 불행한 인생이고 어쩌면 남들보다 좀 더 불행한 사람들끼리 모여 가끔 있을 행복을 함께 즐기자는 그의 인생관은 결국 지독하게 외로운 삶에 놓인 '소현'이 얼마나 그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가와 연결된다.

 

 

판소리 복서 / My punch-drunk boxer, 2019

(감독 : 정혁기 / 출연 : 엄태구, 이혜리, 김희원)

 

▲‘판소리 복서’ 스틸컷.  Ⓒ네이버 영화

 

나의 마지막 바다 영화, <판소리 복서>이다. 이 영화는 위 두 영화보다 바다를 배경으로 하는 장면이 훨씬 많이 나온다. 심지어 바다에서 시작해 바다로 끝나는 영화이다. 첫 장면에서는 이 영화의 제목에 맞게 주인공 병구가 판소리 장단에 맞춰 판소리 복싱을 한다. 해가 걸쳐있는 어둑한 하늘과 그를 비추고 있는 넓은 바다 앞에서, 바닷물 위에 정신없이 스텝을 밟으며 주먹을 날리는 병구의 모습은 판소리 복서라는 제목이 주는 의문을 한 번에 풀어준다. 장구 장단에 복싱? 평범하지 않은 소재에 대한 호기심으로 영화를 접한 관객들은 영화를 다 본 후 짠한 감동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영화는 복싱, 필름 사진, 재개발, 유기견, 치매 같은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주인공인 병구또한 과거에는 이름 좀 날리던 복싱 선수로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지만, 현재 펀치 드렁크라는 병에 걸려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존재를 잃어버리는 일은 오히려 그것을 되찾으려 하도록 작용했고, 불행한 상황에 놓여있음에도 불구하고 복싱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다.

 

처음에는 죽어가는 복싱이 그저 시대가 변화하기 때문이라고 여긴 박관장, 어수룩한 병구의 열정을 알아보고 그가 다시 판소리 장단에 몸을 맡길 수 있도록 도와준 민지병구를 믿고 일으켜주기까지의 과정은 그 어느 휴먼 성장 드라마보다 울림 있는 감동을 준다. 다시 훈련에 들어간 병구는 바다에서 달리기도 하고, 주먹을 날리고, 유기견 포먼을 산책시키기도 한다. 영화를 보다 보면 <판소리 복서>에서 바다가 나오는 장면은 과거에 최고의 판소리 복서를 꿈꿨던 시절의 모습과 다시 빛나던 시절로 돌아가려고 하는 모습, 그리고 다시 꿈을 이루고 모두가 행복한 결말을 맞는 모습을 담아낸다. 영화의 중요한 서사가 바다를 배경으로 한 장면에 모두 담긴 것이다.

 

바다가 담긴 장면들의 영화들을 보고 나면 지금 당장 바다로 향하고 싶어 진다. 사람들은 바다에 가면 꼭 영화에 한 장면 속에 내가 있다고 한 번쯤은 생각하지 않는가. 우리는 여러 가지 일들과 그에 따르는 감정들을 조절하면서 꽤나 머리 아프고 복잡한 삶을 살고 있다. 그만큼 그 복잡한 것들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나는 바다라고 생각한다. 다가올 휴가에는 조용한 바다가 있는 곳에서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을 느껴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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