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가 주는 울림, '캡틴 마블'

더 좋은 여성 히어로 무비를 위해

김예지 | 기사입력 2019/04/10 [09:58]

최초가 주는 울림, '캡틴 마블'

더 좋은 여성 히어로 무비를 위해

김예지 | 입력 : 2019/04/10 [09:58]

 

▲ 캡틴 마블 포스터     © 마블 스튜디오



 

지난 3월 6일 개봉한 ‘캡틴 마블’이 560만이라는 관객수를 기록하면서 흥행을 이어나가고 있다. 마블 최초의 여성 히어로 솔로 무비라는 점에서 ‘캡틴 마블’은 개봉 전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 ‘블랙 위도우’라는 어벤져스 유일의 여성 멤버가 마블 영화에서 결코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마블 여성 히어로의 솔로 무비는 ‘캡틴 마블’이 최초이다. 물론 관심만큼이나 논란도 많았다. 일부 팬들의 기대와 달랐던 슈트 디자인, 브리 라슨이라는 여배우와 만화 속 캡틴 마블의 싱크로율과 같은 문제는 ‘캡틴 마블’의 흥행 여부에 대한 걱정을 증폭시켰다.

 

 그러나 뚜껑이 열린 ‘캡틴 마블’은 개봉 전의 우려들이 무색해지게 560만이라는 흥행 성적을 기록중이다. 최근 개봉한 마블의 솔로 히어로 무비인 베놈(2018), 블랙팬서(2018) 보다도 높은 수치다.  물론 이 흥행이 오로지 ‘캡틴 마블’이라는 영화 자체의 힘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한국에서 큰 팬층을 보유하고 있는 마블이라는 영화 브랜드,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 쿠키 영상에서 등장한 캡틴 마블의 로고와 이로 인해 증폭되었던 캐릭터에 대한 궁금증, 곧 개봉을 앞두고 있는 어벤져스 시리즈의 마지막 편 ‘어벤져스 : 엔드게임’ 까지. 다양한 요소들이 ‘캡틴 마블’의 흥행을 뒷받침했다. 작품의 완성도 측면에서도 기존의 마블과 다르게 특이한 요소가 존재하거나, 깊이 있는 메시지가 존재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캡틴 마블’은 마블 영화, 더 나아가 히어로 무비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바로 ‘여성 히어로’의 솔로 무비이기 때문이다. ‘아이언맨 1’을 필두로 히어로 영화의 대표 영화사가 된 마블은 이제 단순히 하나의 영화사가 아니라, 전세계 영화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치는 회사다. 마블의 새로운 시리즈, 새로운 히어로는 늘 주목을 받고 어벤져스 시리즈는 전세계적인 관심사가 되었다. 그러나 여태까지 마블 영화의 주인공은 늘 ‘백인 남성’이었다. ‘백인 남성’ 이 아닌 유색인종이나 여성 캐릭터는 늘 보조적인 역할에 그쳤다. 주인공과 대등한 관계에서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악역 역시 늘 백인 남성의 몫이었다.

 

 이런 마블의 ‘백인 남성’ 주인공 공식에 최초로 균열을 낸 것이 ‘블랙 팬서’다. 시빌 워에서 처음 등장한 흑인 히어로는, 시빌 워 개봉 2년 후 단독 솔로 무비로 전세계에 개봉했다. ‘블랙팬서’는 주인공이 ‘흑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개봉 전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 그만큼 ‘백인 남성’이 아닌 다른 사람을 마블 영화의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주인공 뿐 아니라 빌런, 여주인공과 조연들까지 모두 흑인으로 설정하고, 서구가 아닌 아프리카 문명에서 모티브를 따온 ‘와칸다’의 세계관은 그 설정만으로 파격적이었다. 마블 역시 영화를 홍보할 때 ‘마블 최초의 흑인 히어로’라는 타이틀을 전략적으로 강조했다. 여전히 백인 중심인 미국 사회와 영화 산업 시장에서, 마블이라는 대형 영화사의 흑인 히어로 무비는 그 자체가 가치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영화의 개별적인 완성도와는 별개로, 이후로 더 많은 흑인 히어로 무비가 나올 수 있는 발판이 되었기 때문이다.

 

▲ <블랙 팬서> 스틸컷     © 마블 스튜디오



 

 ‘캡틴 마블’ 역시 마찬가지다. 흑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마블이 이번에는 여성을 들고 나왔다. 영화 자체의 완성도와 별개로 우리가 ‘캡틴 마블’을 응원해야 하는 이유는 여성이 주인공이기 때문이다.주인공 혹은 주인공과 대등하게 경합하던 역할이 아닌 그저 주변에 머무르던 여성이 영화의 중심으로 나온 것은 매우 이례적이고 놀라운 일이다. ‘캡틴 마블’을 시작으로 마블에서는 더 많은 여성 주연 영화가 나올 것이다. 영화 자체의 완성도는 사람에 따라 의견이 갈릴 수 있지만 ‘여성 히어로’를 내세운 영화 자체가 가치 있다는 것은 틀림 없다.

 

 좋은 여성 히어로 무비는 어떤 영화일까?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어야 할까? 여성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할까? 우리는 아직 답을 모른다. 이유는 단 하나, 그 답을 구할 정도로 많은 여성 히어로 무비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답을 알기 위해서는, 더 좋은 여성 히어로 무비가 나오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수많은 여성 히어로 무비가 나와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그 안에서 더 좋은 영화, 더 나쁜 영화를 골라낼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더 발전하는 여성 히어로 무비가 나올 수 있다.

 

 때로 어떤 영화는 완성도와 상관 없이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어떤 소재, 어떤 인물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럴 수가 있다. 그 이후로 나올 수많은 동일 소재 영화들의 시작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마블에서는 아시안 남성 히어로 무비, 흑인 여성 히어로 무비, 아시안 여성 히어로 무비도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블랙 팬서'와 마찬가지로, '캡틴 마블'은 존재 그 자체로 앞으로 더 많은 소수자 주인공 영화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누군가 물꼬를 터주지 않으면, 물은 터져나올 수 없다. 소수자를 다루는 영화는 그래서 그 존재 자체로 가치 있는 것이다. 절대적인 숫자가 확보되지 않으면 비판도 발전도 이루어지기 어렵다. 앞으로 마블에서 더 많은 여성 히어로 무비가 나온다면, 그때는 ‘캡틴 마블’에 관해 많은 비판들이 나올 수 있다. 완성도가 떨어질 수도 있고, 메시지가 부족할 수도 있다. 여성 인물들을 다루는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의견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더 많고 다양한 여성 히어로 무비의 개봉이 선행되어야만 한다. 이것만으로도 지금 우리가 ‘캡틴 마블’이라는 영화 자체에 대해 응원을 보낼 이유는 충분하다.

 

[씨네리와인드 김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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