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사이버펑크 영화들이 남긴 유산

<블레이드 러너>부터 <매트릭스>까지

강정화 | 기사승인 2020/02/18 [11:50]

20세기 사이버펑크 영화들이 남긴 유산

<블레이드 러너>부터 <매트릭스>까지

강정화 | 입력 : 2020/02/18 [11:50]

[씨네리와인드|강정화 리뷰어] 사이버펑크라는 단어에 대한 정의는 사전별로 제각각이지만, 대체로 컴퓨터 기술이 고도로 발전한 디스토피아적 사회와 저항문화의 결합을 의미한다고 축약할 수 있다. 인터넷이 미처 활성화되기도 전의 시대에 기계산업과 컴퓨터산업이 고도로 발전해 있을 먼 미래를 상상하면서, 예술가들은 암울하고도 매력적인 사이버펑크 문화를 탄생시켰다. 영화와 소설에서 출발해서 음악과 패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적 산물들을 쏟아내던 사이버펑크는 현재 어디로 갔을까. 사이버펑크 장르의 대표작 <블레이드 러너><아키라>의 배경이 되었던 시대는 2019년이다. 이를 통해 미루어 봤을 때, 더이상 사이버 펑크라는 장르가 새로운 매력을 발산해내기엔 이미 너무 시간이 흘러버린 걸지도 모른다. 이번 기사에서는 20세기 말 등장했던 사이버 펑크 장르의 화려한 유산들을 되짚어보고, 이들이 21세기에 어떻게 남게 되었는지까지 얘기해보고자 한다.

 

1. 블레이드 러너 (1982, 리들리 스콧)

 

▲ 영화 '블레이드 러너'스틸컷  © (주)해리슨앤컴퍼니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는 최초의 사이버 펑크 영화로 불리는 작품으로, 필립 K.딕의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의 꿈을 꾸는가?>를 원작으로 한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장소는 매우 많은 인구가 밀집되어 살아가는 도시로써, 여러 나라의 문화가 섞여 있는 모습을 보인다. 영화 속 사람들이 쓰는 언어인 시티스피크는 스페인어와 독어, 일어가 뒤범벅된 언어이고, 네온 전광판에는 일본식 디자인의 광고들이 즐비하다. 작 중 어두운 밤하늘과 인공 불빛으로 가득한 미래 대도시의 모습은 곧 사이버펑크 장르의 이미지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리들리 스콧은 본 작을 통해 고도로 발달한 도시 문명을 바탕으로 하는 디스토피아적 세계를 시각적으로 완벽히 구현해냈다.

 

 

이 작품이 인상적인 또 한 가지 이유는, 작품이 던지는 깊이 있는 철학적 질문에 있다. 인간에 의해 인간과 유사하게 만들어진 조금은 불완전한 존재인 레플리컨트를 통해 리들리 스콧은 우리에게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무엇이 인간의 인간다움을 정의하는가? 이러한 질문이 오늘날에는 흔해빠진 질문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다만 인공지능 기술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이전인 1982년에 이러한 질문을 심도 있게 영화 속에 녹여냈다는 점은 아주 인상적이다. 후에 소개할 모든 작품이 마찬가지로 인간에 대한 근원적이고 철학적인 사유를 담게 된 것 역시, 이 작품이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리들리 스콧은 장르의 시초 격이라고 할만한 작품에서부터 깊고 짜임새 있는 세공을 통해 장르의 격을 높였다. 다시 말해 <블레이드 러너>는 시각적인 충격과 심오하고 철학적인 질문을 겸비한 SF의 새로운 장르가 탄생했음을 선언했다.

 

2. 아키라 (1991, 오토모 가츠히로)

 

▲ 영화 '아키라'스틸컷  © (주)삼지애니메이션



사이버 펑크의 유행은 할리우드뿐만 아니라 재패니메이션에서도 이어졌다. 그중 대표주자라고 말할 수 있는 작품이 바로 <아키라>. 1982년부터 연재되었던 동명 만화의 원작자 오토모 가츠히로가 직접 각색과 감독을 맡았다. 일본 버블 경제 시대가 남긴 문화유산은 시티팝 뿐이 아니다. 사람들이 재패니메이션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 스튜디오 지브리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을 가장 먼저 떠올리지만, 재패니메이션의 전성기는 90년대 버블경제 시기이고 <아키라>는 그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아키라>의 배경은 세계 3차 대전 이후로 31년이 지난 2019년의 새롭게 지어진 네오 도쿄이다. 버블경제 시기의 막대한 자본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아키라>는 셀 애니메이션 기술을 극한까지 활용하여 네오 도쿄를 표현했다. <블레이드 러너>와 마찬가지로, <아키라> 역시 인간에 대한 철학적인 사유를 던진다. 단순히 개인과 일본이라는 국가를 넘어서, 인류의 과거, 현재, 미래에 관해 이야기하는 감독의 비전은, 기술과 자본의 도움으로 생생하게 시각적으로 표현된다. 특히 영화 후반부의 속도와 스케일은 오늘날의 어떤 영화와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다.

 

3. 공각기동대 (1995, 오시이 마모루)

 

▲ 영화 '공각기동대'스틸컷.  © (주)엔케이컨텐츠



<아키라> 이후 4, 재패니메이션에서는 다시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할 사이버펑크 걸작이 탄생한다. <공각기동대><아키라>와 마찬가지로,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만들어졌다. 영화의 배경은 2029년 홍콩으로, 세계는 네트워크에 의해 지배당하고, 사이보그 기술의 발달로 인간은 새로운 진화의 단계에 있다. 본작은 사이보그 기술의 발달이 결국 인간의 뇌와 컴퓨터가 직접 연결 가능한 단계까지 다가갈 것으로 이야기하는데, 그와 동시에 인간의 본질에 대한 무거운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이전의 두 작품이 그랬듯이, 본작 또한 철학적인 사유를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방식이 인상적인 영화이다. <공각기동대>의 독특한 설정과 무거운 주제는 이후의 할리우드 영화들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대표적으로 뤽 베송 감독의 <5원소>가 이에 해당하며, 또 다른 훌륭한 예시가 다음에 소개할 워쇼스키 자매의 <매트릭스>.

 

4. 매트릭스 (1999, 워쇼스키 자매)

 

▲ 영화 '매트릭스'스틸컷.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이전에 제시된 작품들의 세계와 스타일이 예술가 개인의 머릿속에서 새롭게 탄생한 결과물이라면, <매트릭스>는 조금 다르다. 매트릭스 속의 모든 창의력의 원천은 기저에 존재하고 있던 다양한 문화들의 레퍼런스에서 기인한다. 우선, 작품의 이야기의 뼈대는 <공각기동대>에서 왔다. 사이버 펑크의 스타일뿐만 아니라 철학, 동화, 수많은 기독교적 상징, 홍콩 무협 영화의 와이어 액션 스타일에 이르기까지, 매트릭스는 이미 세상에 존재하던 문화들을 빌려와, 재조합하여 자신만의 새로운 스타일로 만들어낸다. 영화의 전체적인 톤은 분명히 사이버 펑크임에도, 전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전혀 새로운 스타일의 영화가 된 것이다. 그 스타일이 얼마나 세련된 스타일인가에 대해서는 완전히 긍정할 수 없지만, 본작의 새로운 시도가 이후의 모든 영화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5. 21세기와 사이버펑크

 

매트릭스가 그리하였듯이, 사이버펑크의 스타일은 수많은 영화의 레퍼런스 중 하나로써 남아 있게 되었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아예 사이버 펑크의 스타일 아래 수백 개의 다양한 대중문화를 곁들여가면서 <레디 플레이어 원>이라는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2017년에 <공각기동대>는 할리우드식 리메이크작이, <블레이드 러너>는 후속작이 개봉했다. 마이클 잭슨과 카니예 웨스트는 자신들의 뮤직비디오에서 <아키라>를 레퍼런스로 활용했고, 2017년에는 의류회사 슈프림이 <아키라>와의 콜라보를 진행하기도 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소개된 영화 중 단 한 작품도 본 적 없음에도 이들의 스타일이 익숙하게 느껴진다면, 이미 사이버펑크가 우리 주변의 수많은 곳에서 끊임없이 복제되고, 재생산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 밤에는 위에 소개된 영화 중 한 편을 감상하며 환상적인 시각 체험과 깊은 철학적 사유에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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