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이유, 기억해야 할 의무

영화 <26년>

이다은 | 기사승인 2020/02/19 [17:40]

기억의 이유, 기억해야 할 의무

영화 <26년>

이다은 | 입력 : 2020/02/19 [17:40]

[씨네리와인드|이다은 리뷰어아주 오래된 낡은 이야기 같지만 2020년인 지금도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현대사의 한 부분이 있다. 바로, 광주 5·18 민주화 운동이다. 한국 민주주의사의 민낯이자 치부인 독재정권은 그 사실이 은폐되거나 왜곡되어 현재에도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부분의 민주화를 배경으로 한 동시대 팩션 영화는 아직도 끊임없이 논의되고 재생산되는 현재 진행형의 기억 투쟁을 다룬다. 앞서 언급했듯 식민지 시대를 거치고 독재 권력이 집권하면서 한국 현대사의 연구와 비판은 위축되었다. 정확한 연구와 사료가 없는 현대사는 기억으로 남아 고정되거나 규정되지 못했다. 특히, 5 공화국과 민주항쟁은 정확한 사료가 없는 우리의 역사 중 하나이다. 언론, 출판이 모두 제한되던 그때는 사람들의 기억과 외신 기자들이 어렵게 확보한 몇 개의 필름뿐이다.

 

기억은 희미해지고 왜곡된다. 동시대 팩션 영화는 오늘날 고정되지 못한 역사를 끊임없이 공론화하고 논란의 중심으로 다시 세운다. 영화는 스크린을 통해 현대사에서 청산하지 못한 부분을 관객에게 민낯 그대로 보여준다. 스크린이 곧 심판대가 되어 관객들 앞에 그때를 세운다. 관객은 현재의 시선에서 당시를 심판하고 극장 밖에서 이를 공론화시킨다. 이것이 동시대 팩션 영화가 가진 영향력이자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원하는 효과이다. 영화에게 힘이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영화에 나온 역사적 사실은 대부분 이슈화된다. 영화는 관객에게 공론화를 요구하고 관객은 그 요구를 수용한다. 이렇게 재생산된 기억과 역사는 다시 심판받고 비판받는다.

 

▲ 영화 <26년> 메인 포스터  © 이다은

 

동시대 팩션 영화에는 행복하고 즐거웠던 그때 그 시절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현대사는 언제나 위기상황이었다. 유신독재 정권과 군부독재 정권, 민주화까지 오랜 시간 동안 억압되어왔고 국가는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탄압하며 국민을 상대로 일종의 범법 행위를 자행해왔다. 이후에도 잃어버린 26년을 국가는 배상하지 않았고 제대로 된 진상 규명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왔고 트라우마로 남게 되었다.

 

오늘 다룰 영화 <26>은 동명의 웹툰 ‘26을 원작으로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정확하게 하면 영화의 주인공들은 피해 세대의 2세이다. 영화 속에서 국가로 인해 얻은 트라우마는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잊히지도 퇴색되지도 않는다. 점점 더 짙어지고 더 큰 상처로 남는다. 국가가 남긴 트라우마가 대물림 되는 양상을 띤다. 눈앞에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국가에 대한 원망을 가지지만 국가권력에 부딪쳐 얻은 트라우마인 만큼 직접적으로 표출하지 못한다. 영화 속 인물들이 국가에 갖는 분노는 자연스러운 것이며 실상이라 할 수 있다. 아무리 법으로 처벌을 했고 사회적 질타를 받는다고 해도 가해자들의 진정한 사과가 있을 때까지 남겨진 사람들의 상처는 아물지 않을 것이다.

 

영화는 국가에 의해 가족을 잃은 혹은 국가의 명령에 어쩔 수 없이 시민군과 적이 되어야 했던 계엄군까지 국가에 의한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그 사람의 암살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줄거리로 이루어져 있다. 이 영화가 특별한 점은 국가로부터 피해를 받은 사람들에 당시 시민들을 향해 총을 겨누었던 계엄군이 포함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들도 자신의 의지가 아닌 국가의 명령에 의해 트라우마를 갖게 된 피해자로 규정된다. 이전까지의 영화들은 계엄군을 국가와 같은 가해자로 동일시하거나 그들에 관해 관심을 갖지 않았다. 피해자의 경계 밖에 있던 사람들을 경계 안으로 규정했다.

 

 

▲ '26년' 스틸컷.  © 청어람



그 사람에게 복수를 하는 피해자들의 직업군은 다양하다. 조폭, 경찰, 사격 선수, 기업가까지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이 모였다. 주변에 누구든 민주화 운동의 피해자일 수 있다는 걸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관객들은 그들을 보며 내가 그 시절에 태어났다면 당장의 먼 이야기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느낀다. 나 역시 그랬고, 어쩌면 내 주변 사람들이 민주화 운동 당시 국가로부터 피해를 입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픔과 분노 중에 어떠한 감정이 더 오래도록 남을까. 아마 슬픔이 아닐까 싶다. 슬픔이라는 감정이 고조되었을 때 분노가 되고 분노가 되면 사라진다. 하지만 기억 상실증에 걸리지 않는 이상 그 슬픈 기억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여전히 아픔을 안고 갈 것이고 고스란히 남을 것이다.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영화 <26> 말고도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하지 않은 기억을 담은 영화가 있다. 바로 <아이 캔 스피크>이다. 영화에 대해 어떠한 정보도 없이 봤을 때 그저 영어 공부하는 할머니의 성장 일기 정도로 생각했을 것이다. 영화 말미에 갔을 때 우리는 알 수 있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일본군 위안부피해자라는 것을 말이다.

 

영화 <26> 은 피해자들이 통해 일종의 복수를 실현하고,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지만, 스크린으로 구현해냄으로써 잊어서는 안 되는 우리의 역사를 관객에게 각인시켰다. 일각에서는 이 영화가 100% 허구가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인물들의 서사를 위한 수단으로써 이용된 것이지 주 내용인 그 사람을 암살하는 이야기가 실화를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그러나 영화를 끝까지 보면 지독하고 잔인하게도 현실만을 보여준다. 암살 작전을 실행에 옮기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는 결말을 암시적으로 보여주며 영화는 끝이 난다.

 

만약 행복한 결말이었다면 스크린에서의 복수를 이룬 것이겠지만 여전히 그 사람은 지금도 살아있고 잘 살고 있다. 현실과 허구의 이질성에서 오는 박탈감은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영화 <26>은 동시대 팩션 영화이다. 대부분의 동시대 팩션 영화는 결말에서 현실로 돌아온다. 영화는 피해자들이 실패하는 모습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는 않지만, 관객에게 탄식을 안겨준다. 앞서 말했듯 동시대 팩션 영화는 대부분 현실적이다. 현실에서 과거가 청산되지 않았다면 스크린에서도 해결되지 않고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이러한 부분이 관객을 자극하여 극장 밖에서의 공론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극장 밖에서의 공론화는 매번 발생한다. 영화 ‘26’, ‘택시운전사’, ‘1987’등이 개봉했을 때도 사람들의 사회적 질타는 계속해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변화하는 것은 없었다. 여전히 가해자는 죄책감과 책임감을 가지지 않고 잘 살아가고 있으며 피해자들은 사과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영화가 무슨 힘을 가지고 있느냐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그러나 멈추었을 때 잊는다. 잊는다는 것은 잃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가해자가 원하는 것이며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단발성을 띄는 공론화라고 해도 우리가 기억한다면 분명히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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