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없이 용서를 전하는 방법, '쓰리 빌보드'

영화가 용서를 표현하는 방식

김예지 | 기사입력 2019/04/11 [09:48]

눈물 없이 용서를 전하는 방법, '쓰리 빌보드'

영화가 용서를 표현하는 방식

김예지 | 입력 : 2019/04/11 [09:48]

 

▲ 쓰리 빌보드 포스터     © 20세기폭스코리아(주)



 

딸이 강간당하고 불타 죽었다. 그러나 경찰은 범인을 잡지 않았고 제대로 수사도 하지 않았다. 내가 스스로 증거를 조사해 범인을 잡을 수는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러나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내 분노는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이 분노를 누군가에게 향하게 해야 분노가 내 안에서 헤매지 않는다. 분노를 내 안에 담아둔다면 해소되지 않는 분노는 나를 갉아먹을 것이다.

 

 ‘쓰리 빌보드’는 분노와 여기에서 촉발된 폭력, 그리고 그 고리를 끊는 연대와 용서에 대해 말하고 있다. 강간과 방화살인으로 딸을 잃은 밀드레드(프란시스 맥도맨드)는 경찰을 향한 분노로 경찰서장을 비난하는 광고판 세 개를 세운다. 이 광고판 세 개가 바로 ‘쓰리 빌보드’다. 경찰 딕슨(샘 록웰)은 흑인을 혐오하는 인종차별주의자고 존경하던 서장이 사망한 후 분노를 참지 못 해 밀드레드의 광고판을 세워준 광고 회사 직원 레드 웰비(케일럽 랜드리 존스)를 무차별적으로 폭행한다. 밀드레드는 자신의 광고판이 불타자 딕슨이 불을 질렀다고 생각해서 경찰서에 불을 지른다.

 

▲ 쓰리 빌보드 스틸컷     © 20세기폭스코리아(주)



 

‘쓰리 빌보드’에서 영화의 주요 인물들은 모두 누군가에게 분노하고 있다. 그 분노는 때로 광고판으로 표출되고, 비난이나 욕설로 표출되기도 하며, 폭력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방화로 이어지기도 했다. 분노와 재앙의 연쇄고리 속에서, 인물들은 그 누구도 평온하지 못 하다. 분노와 상처, 폭력만이 남은 마을. 끝이 보이지 않는 분노들을 처음으로 끊어낸 것은 광고 회사 직원 레드다. 밀드레드가 경찰서에 지른 불로 화상을 입은 딕슨은 레드와 같은 병실에 입원하게 된다. 딕슨의 무차별적인 폭행으로 큰 부상을 입고 건물에서 떨어지기까지 한 레드는, 같은 병실에 들어온 환자가 딕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음료를 마시기 힘들어하는 그에게 빨대를 꽂은 오렌지 주스를 건넨다.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영화는 끝을 모르고 질주하던 분노를 멈추기 시작한다. 딕슨은 밀드레드를 위해 증거를 모으고, 밀드레드는 영화의 막바지에 경찰서에 불을 지른 것이 자신임을 고백한다. 그러나 딕슨은 ‘그런 뻔한 얘기를 뭐하러 하냐.’며 밀드레드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밀드레드와 딕슨 모두 자신을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던 분노를 잃었지만, 오히려 영화 마지막의 그들은 평화로워 보인다. 영화의 가장 중심에서 분노를 연료 삼아 자신을 태우던 인물들이, ‘분노’라는 불을 꺼뜨린 것이다.

 

 분노는 자신만을 갉아먹을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쉽다. 분노하기보다 용서를 해야한다고 누구나 말하지만, 막상 자신에게 그런 일이 닥친다면 용서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쓰리 빌보드’의 감독 마틴 맥도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용서를 해야하는 이유를 전하는 동시에, 자기 스스로 누군가를 용서하는 힘을 만들어내기는 어렵다고 전하고 있다. 혼자만의 힘으로 분노를 삭히고 용서를 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레드가 딕슨을 용서하고, 용서를 받은 딕슨이 다시 밀드레드를 용서한 것은 분노가 연쇄적으로 이어지듯이 용서도 연쇄적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분노는 양끝에 칼날이 달린 창과 같다. 누군가에게 겨누면 겨누는 당사자도, 그 끝이 향하고 있는 대상도 상처를 입게 된다. 분노를 품은 밀드레드와 딕슨은 스스로가 다치는 걸 알면서도 상대를 찌르기 위해 분노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레드가 시작한 용서가 그 창을 내려놓게 했다. 레드는 어떻게 딕슨을 용서할 수 있었을까? 영화는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해주지 않는다. 레드가 뛰어난 인격자일 수도 있고, 그저 순간의 충동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레드에게 용서를 받은 딕슨으로부터 용서가 시작되는 것으로 보아, 레드도 누군가에게 용서를 받은 경험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분노’와 ‘용서’가 영화의 주된 메시지이지만, 감독 마틴 맥도나는 그 메시지를 결코 직접적으로 전달하지 않는다. 주인공들이 ‘용서’라는 단어를 언급하지도 않고 ‘괜찮다.’거나, ‘나는 다 잊었다.’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사소한 행동과 몸짓, 결심 등으로 용서를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분노를 보여주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상징과 행동을 통해 분노가 일상을 갉아먹고 내면을 무너뜨리는 방식을 보여준다. 복수를 향해 달려가는 주인공 밀드레드는 오히려 갑자기 나타난 사슴을 보고 딸을 떠올리며 눈물을 보인다.

 

 용서의 가치에 대해 말하는 영화는 많다. ‘쓰리 빌보드가’가 전하는 메시지 역시 용서를 다루고 있는 영화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분노를 멈추고, 용서를 하라. 그러나 ‘쓰리 빌보드’는 메시지의 직접적인 언급 없이, 극적인 연출이나 극단적인 감정 혹은 눈물을 쏟는 장면 없이 용서로 인해 주인공들이 변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쓰리 빌보드’는 눈물을 쏟게 만드는 영화는 아니다. 그러나 영화가 끝난 후, 관객은 먹먹하고 또 뭉클해진 가슴을 안은 채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밀드레드와 딕슨을 떠올리며, 레드가 건낸 그 한 잔의 오렌지 주스를 떠올리며 분노와 용서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씨네리와인드 김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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