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트의 색을 담은 카메라는 어떻게 신화를 재구성했나

'이누가미의 결혼'을 통해 살펴본 일본 건국 신화의 재구성과 상징적 의미

김준모 | 기사승인 2020/03/13 [11:30]

컬트의 색을 담은 카메라는 어떻게 신화를 재구성했나

'이누가미의 결혼'을 통해 살펴본 일본 건국 신화의 재구성과 상징적 의미

김준모 | 입력 : 2020/03/13 [11:30]

▲ '신들의 깊은 욕망' 스틸컷  © 네이버 영화

 

[씨네리와인드|김준모 기자]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신들의 깊은 욕망>은 자연을 간직한 외딴 섬의 원시부족이 도쿄 건설회사에 의해 서서히 문명화되면서 파괴되어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작품의 제목이 ‘신들의 깊은 욕망’인 이유는 성교를 반복하는 두 주인공이 일본 건국 신화의 주인공 이자나기와 이자나미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삶이 무너지는 과정을 통해 감독은 신이 만든 아름다운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죄악에 물든 현대인들에게 과연 예수가 재림한다 하더라도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는가는 질문을 던진 루이스 브뉘엘 감독의 <비리디아나>를 떠올리게 만든다. 차이점이라면 건국 신화가 지닌 속성에 기인한다. 건국 신화는 탄생과 소멸을 담고 있다. 인류의 발전에는 이 두 가지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그래서 건국 신화에는 기존 세계관이 무너지는 소멸이 있어야 하며 다시 생명이 피어난다는 희망이 깃들어야 된다.

 

▲ '이누가미의 결혼' 포스터  © 2016 INUMUKOIRI PROJECT

 

제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인 <이누가미의 결혼>은 이런 일본의 건국 신화를 떠올리게 만든다. 무려 4시간에 달하며 온갖 장르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이 컬트 무비는 영화제가 아니면 만나보기 힘든 영화이기도 하다. 작품의 기본 플롯은 이렇다. 초등학교 교사인 아즈사는 직장에서 밀려나고, 남자 친구와 헤어지며 최악의 상황에 몰린다. 하늘에서 들려오는 ‘아모레이 섬에 가서 보물을 찾아라’라는 소리를 들은 그녀는 어릴 때부터 들었던 전쟁에 공헌을 세워 공주와 결혼한 개의 신화를 떠올리며 남방의 섬으로 향한다.

 

이 과정에서 사기꾼 혁명가, 히키코모리 가수, 추방된 왕자 등을 만나며 신화적인 모험을 경험한다. 첫 번째 파트는 인형을 통해 애니메이션으로 표현된 공주와 개의 신화이다. 전쟁에서 공을 세운 개가 공주와 결혼을 했고 그 후손들이 남방의 섬에서 살아간다는 이 신화는 사람을 홀리는 이누가미라는 개의 악령을 코믹하게 표현한다.

 

두 번째 파트인 아즈사가 섬으로 향하게 되는 과정은 코미디에 가깝다. 어설프고 멍한 구석이 있는 아즈사는 아이들에게 당하기 일쑤고 그녀를 둘러싼 최악의 상황은 우울지수를 끌어올린다. 그런 그녀가 태양의 목소리를 듣고 여행을 떠나며 세 번째 파트가 시작된다. 이 파트는 코미디와 갱스터, 감동 드라마가 어우러지며 이 괴작에서 가장 극적이고 탄탄한 드라마를 선보인다.

 

땡전 한 푼 없어 비파 가게의 고집불통 노인 아래에서 일을 하던 아즈사는 특유의 해피 바이러스로 노인의 마음을 녹이는 건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도 기쁨을 준다. 그녀는 섬을 둘러싼 음모를 막기 위해 선거에 출마하지만 섬을 독차지할 생각을 품은 이들은 아즈사와 그 주변 사람들의 목숨마저 노린다. 이 과정에서 아즈사가 이 섬에서 처음 만난 사기꾼이 후에 그녀의 남편이 된다.

 

아즈사와 그녀의 남편 아키라는 이나자미와 이나자기라 할 수 있다. 아즈사를 섬으로 이끌어 두 사람의 만남을 가져온 게 태양이라는 점에서 이 태양은 태초의 신인 태양신 아마테라스를 연상시킨다. 태양신이 등장했다면 그 다음은 달의 신이 등장할 타이밍이다. 네 번째 파트는 달의 신과 이누가미를 등장시키며 신화적인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다만 그만큼 난해하다.

 

▲ '이누가미의 결혼' 스틸컷  © 2016 INUMUKOIRI PROJECT

 

이 파트의 장르는 핑크 무비에 가깝다. 폭풍우를 만나 아키라와 헤어지게 된 아즈사는 한 섬으로 떠내려 오게 된다. 그 섬에서 아즈사는 혼자 사는 한 꽃미남을 만난다. 이 남자 소타는 이누 일족의 왕자로 약혼자를 피해 섬에 숨어 살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일족의 특성상 밤이면 늑대개로 변하는 이 남자의 본능이다. 여성이 곁에 있으니 그 본능을 참지 못하고 매일 밤 정사를 나눈다.

 

늑대개를 등장시키는 달은 달의 신 쓰쿠요미를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이누가미가 ‘악령’으로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다면 반대로 인간은 긍정적인 의미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아즈사와 소타의 정사는 대립되는 두 성질이 하나로 합쳐짐을 의미한다. 이 과정이 중요한 건 다섯 번째 파트가 보여줄 전쟁과 관련되어 있다. 전쟁은 대립에서 비롯된다. 내 편이라는 선이 존재하고 상대라는 악을 물리쳐야 전쟁은 끝나게 된다.

 

전쟁이 흔히 소용돌이에 비유된다는 점, 전쟁 중에 비가 내리는 장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파트에서는 이자나미와 이자나기가 만든 세 신의 마지막인 폭풍의 신 스사노를 떠올릴 수 있다. 암흑 같은 전쟁 속에서 아키라는 아즈사를 구해내고자 한다. 이는 일본 건국 신화에서 이자나기가 이자나미를 구하기 위해 어둠의 나라인 요모쓰쿠니를 향하는 과정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여 진다.

 

▲ '이누가미의 결혼' 스틸컷  © 2016 INUMUKOIRI PROJECT

 

건국 신화의 결말은 악이 되어 썩어버린 이자나미가 이자나기를 공격하려 들고 이자나기는 거대한 바위로 요모쓰누키로 향하는 입구를 막아버리며 목숨을 부지한다. 이자나미는 날마다 천 명의 사람을 죽이겠다 말하고 이자나기는 1500명의 사람을 만들겠다 답한다. 이런 신화의 결말을 따르는 이야기의 구조를 생각했을 때 결국 아즈사의 운명은 정해져 있다. 다만 감독은 신화가 보여준 ‘균형’을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해 고민이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탄생과 죽음은 표현하기 어려운 주제다. 여기서 이 건국 신화를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 두 편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한 편은 그 유명한 90년대 최고의 애니메이션인 <에반게리온>이다. 이 작품의 극장판이자 TV판과 다른 결말을 내는 작품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은 인류의 파멸과 살아남은 두 주인공, 신지와 아스카를 통해 소멸과 생성을 말한다.

 

하반신이 절단되어 기묘한 생김새를 한 릴리스는 요모쓰누키에서 융해되어 가는 이자나미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릴리스를 되찾기 위해 우주에서 오는 적 사도는 이자나미가 이자나기를 붙잡아두기 위해 출현시키는 군대를 연상시킨다. 에반게리온 초호기의 하반신이 릴리스의 하반신을 가져다 만들었다는 점에서 에반게리온에 의한 인류의 소멸과 생성은 건국 신화를 연상시킨다.

 

여기에 마지막에 아스카가 신지의 목을 조르며 그를 죽이려 하는 모습은 이나자기를 죽이려는 이나자미의 모습이 연상된다. 두 번째 애니메이션 <흑의 계약자>는 대놓고 이자나기와 이자나미의 설정을 가져오며 역시나 생성과 소멸을 보여준다. 이 작품의 주제의식 자체가 인간과 계약자 사이의 관계, 그 공존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신화의 주제의식과 상통되는 면이 있다.

 

▲ '이누가미의 결혼' 스틸컷  © 2016 INUMUKOIRI PROJECT

 

영화에서의 균형은 아즈사의 출산에서 비롯된다. 아즈사가 낳은 아기는 반은 인간이고 반은 이누가미다. 이누가미의 피를 이어받은 아즈사가 죽고, 완전히 이누가미가 되어버린 소타가 학살을 저지른다는 점에서 이누가미의 악령은 소멸의 이자나미를 상징한다. 때문에 이누 일족의 왕자가 아즈사와 정사를 나누고 그 아이를 낳게 되는 설정은 신화의 구성을 따른다고 볼 수 있다.

 

덧붙여 신화 속 이자나미가 불을 낳다 죽은 거처럼 총과 미사일 등 불이 연상되는 전쟁터를 아즈사가 죽음을 맞이하는 장소로 설정한 점은 꽤나 흥미롭다. 아즈사의 아들인 반인반수를 아키라가 데려간다는 점과 그 장소가 파트2에서 아픔을 겪었던 섬이라는 점은 소멸의 고통 속에서도 탄생의 기쁨이란 균형이 이뤄질 것이란 희망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작품은 기괴하고도 흥미롭게 현대적인 감각으로 건국 신화를 재구성한다.

 

<이누가미의 결혼>은 일본의 건국 신화를 재구성한 그들만의 이야기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전 세계의 건국 신화에는 공통점이 있다. 탄생과 소멸, 선과 악, 빛과 어둠의 대립이다. 대홍수로 인류가 소멸했지만 방주에서 살아남은 노아에 의해 다시 생명을 싹 틔운 성경의 이야기처럼 건국 신화에는 인류의 중요한 법칙이 담겨 있다. 이런 대립과 공존의 법칙을 표현하고자 하나의 작품 안에서 파트에 따라 장르적인 구별을 명확하게 한 선택은 질감에 있어 탁월한 효과를 발휘하며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는 힘을 선사한다.

 

 

김준모 기자| rlqpsfkxm@cinerewi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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