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어로와 빌런, 그 동전의 양면성에 관하여

김준모 | 기사승인 2020/03/24 [12:54]

히어로와 빌런, 그 동전의 양면성에 관하여

김준모 | 입력 : 2020/03/24 [12:54]

▲ '다크 나이트' 스틸컷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 (주)해리슨앤컴퍼니

 

[씨네리와인드|김준모 기자] 4월 22일 개봉을 앞둔 코믹스 원작의 일본영화 ‘이누야시키: 히어로 VS 빌런’은 어느 날 하늘에서 추락한 미확인물체에 맞아 온몸이 기계가 되어버린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다. 회사와 가정에서 소외된 중년남 이누야시키와 고교생 히로는 동일한 능력을 손에 넣는다. 그런데 한 사람은 히어로가 되고 다른 한 사람은 빌런이 되고 만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배트맨 코믹스 원작의 영화 중 가장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다크 나이트>에서 조커는 자신과 배트맨을 동전의 양면에 비유한다. 동전의 한쪽이 앞면이라면 다른 쪽은 뒷면이다. 앞면이 없이는 뒷면이 있을 수 없고 뒷면이 없다면 앞면이란 단어는 파생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악이 없다면 세상에 선은 존재할 수 없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대립 속에서 만물은 인식되며 이 대립들이 모여 통일된 세계를 형성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 개념을 활시위에 비유했는데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겼을 때 화살은 정지해 있는 거처럼 보이는 이유는 앞으로 나가려는 힘을 활시위가 막고 있기 때문이다. 인력(引力)이 있으면 척력(斥力)이 있듯 대립하는 대상이 있어야 통일 상태를 이룰 수 있다.

 

▲ '배트맨 대 슈퍼맨' 스틸컷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삶에 있어 시작인 탄생과 끝인 죽음이 하나의 통일을 이루듯 선과 악의 대립 역시 그 자체로 하나의 통합을 이룬다. 즉, 조커가 있기에 배트맨이 존재할 수 있고 배트맨이 없다면 조커 역시 ‘악’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할 수 없다. 이런 동전의 양면성 문제는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배대슈)에서 왜 배트맨이 슈퍼맨의 존재에 두려움을 갖는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코드라 할 수 있다.

 

조드 장군과의 격렬한 전투로 메트로폴리스가 파괴되자 슈퍼맨의 능력에 대한 의문이 붙게 된다. 그의 강한 힘이 오히려 도시를 파괴할지 모르고 그 선한 마음이 악으로 물들 시에 제어할 수 없는 적이 될 것이란 물음표가 말이다. 선을 상징하는 슈퍼맨의 존재를 양면성으로 바라보면서 배트맨의 심리적인 갈등은 깊어진다. ‘다크 나이트’의 포문을 연 빌런은 조커지만 그 문을 닫는 빌런은 투페이스다.

 

투페이스는 고담시의 부패한 세력과 맞서 싸웠던 검사 하비 덴트로 그는 내면의 광기를 사건 해결이라는 긍정적인 측면으로 이끌며 정의의 편에 섰던 인물이다. 하지만 여자친구의 죽음과 배트맨에 대한 원망, 정의를 부르짖지만 행복을 찾을 수 없는 현실에 빌런으로 돌아선다. ‘영웅으로 죽거나, 오래 살아서 악당이 된 자신을 보거나’라는 그의 대사는 빌런과의 대결에서 느끼는 염증과 고통은 정의로운 마음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차다는 걸 인식하게 만든다.

 

배트맨은 선의 편에 섰으나 악이 되는 투페이스와 같은 이들을 봐왔다. 그는 조드 장군과의 전투를 통해 사람들이 두려움을 느끼게 된 슈퍼맨이 악의 편으로 돌아서지 않을까 걱정한다. 팽팽하게 당겨진 슈퍼맨의 활시위가 그 힘을 잃고 화살을 쏘진 않을지 말이다.

 

▲ '이누야시키' 스틸컷  © 와이드 릴리즈(주)

 

여기서 다시 ‘이누야시키: 히어로 VS 빌런’의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이 작품에서 히어로와 빌런의 탄생은 빌런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애니메이션 ‘메가마인드’를 연상시킨다. 빌런 메가마인드와 그의 라이벌인 슈퍼히어로 메트로맨은 어린 시절 본인들이 살던 행성의 멸망과 함께 지구에 왔다. 인간과 같은 외모에 잘생긴 메트로맨은 학창시절부터 인기가 좋았던 반면 이질감이 느껴지는 메가마인드는 매번 소외받고 무시당했다.

 

관심을 끌기 위해 악행을 반복하던 메가마인드는 그때마다 메트로맨의 제지를 받았고 한 명은 히어로, 다른 한 명은 빌런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누야시키와 히로의 삶은 이 애니메이션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누야시키는 메트로맨처럼 능력 있고 잘 나가는 삶을 살아오지 않았지만 인간에 대한 따뜻한 마음과 믿음을 지니고 살아왔다. 그는 기계인간이 된 이후 그 능력을 사람을 구하는 일에 사용하면서 살아있음을 느낀다.

 

이누야시키가 사람을 구하며 자신이 기계가 아닌 인간임을 느낀다면 히로는 반대로 죽이는 데에서 그 의미를 찾는다. 히로의 삶은 이누야시키와 달리 불신과 불행의 연속이었다. 부모의 이혼과 절친한 친구 안도의 왕따, 어머니의 시한부 인생은 출구 없는 터널과 같았다. 그래서 히로는 타인을 이해하지 못한다. 타인 역시 자신의 고통을 들여다보고 동정을 표하지 않기 때문이다.

 

▲ '메가마인드' 스틸컷  © CJ 엔터테인먼트

 

그가 ‘내가 모르는 타인이 죽는 건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한 이유도 이에 근거한다. 그래서 히로는 자신의 상대인 히어로가 중년의 병약한 외모를 지닌 이누야시키라는 점에 분노한다. 자신처럼 세상에 대한 불만과 고통으로 가득 차 있어야 될 존재가 선을 말하며 대척점에 선 그 사실이 슬픈 것이다. 히로의 열등감은 이누야시키를 자신보다 열등한 존재로 인식하며 그가 히어로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다.

 

하지만 히로가 악을 자처한 순간 누군가는 히어로가 되어야만 했다. 그것이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하는 대립이며 무한한 대립 속에서 통합 상태를 이루는 로고스(Logos)의 법칙이다. 그는 대립과 통일의 두 개념을 하나의 체계로 만들어 이해했다. 대립이 없으면 현상은 성립되지 않는다. 악만 있는 세상에 선은 존재하지 않으니 선이란 개념자체는 성립될 수 없으며 따라서 보편성을 지닌 악이란 현상은 인식되지 않는다.

 

조커가 배트맨의 존재 이유는 자신에게서 찾은 것도 이에 있다. 고담시의 히어로 배트맨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빌런이 필요하다. 자신이 없으면 배트맨은 존재할 수 없다. 배트맨에게는 그림자 같은 존재가 조커이며 조커의 소멸은 그림자가 사라지는, 즉, 배트맨이란 존재가 망각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세상에 히어로가 있다는 말은 역설적으로 빌런이 존재한다는 가정일 테니 말이다.

 

이런 논의로 비춰볼 때 세상의 정의와 평화는 결국 악과 어둠이 있어야 성립되는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헤라클레이토스는 로고스를 통해 만물을 이야기하면서 만물이 변화함을 강조했다. 대립은 사람들로 하여금 더 좋은 방향과 선택을 이끌 수 있는 선택지를 제시한다. 한 마디로 삶에 있어 무엇이 더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들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변화를 촉구한다.

 

선과 악의 대립은 좁게는 개인의 올바른 변화를 이끌어내고 넓게는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변화시킨다. 선이 악이 될 수 있다면 반대로 악이 선이 될 수도 있다. 끊임없는 악의 패배는 더 좋은 변화를 이끌어 내며 화합과 소통의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악이 동전의 양면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라면 계속 지게 만들어야 한다. 이런 악의 패배가 히어로물이 지니는 매력이자 쾌감이라 할 수 있다.

 

 

김준모 기자| rlqpsfkxm@cinerewi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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