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인티드 버드> 흑백화면에 담은 인간의 야성(野性)

[프리뷰] '페인티드 버드' / 3월 26일 개봉예정

김준모 | 기사승인 2020/03/25 [11:51]

<페인티드 버드> 흑백화면에 담은 인간의 야성(野性)

[프리뷰] '페인티드 버드' / 3월 26일 개봉예정

김준모 | 입력 : 2020/03/25 [11:51]

▲ '페인티드 버드' 포스터  © 엠엔엠인터내셔널(주)

 

[씨네리와인드|김준모 기자] 흑백화면 속 한 소년이 숲속에서 도망친다. 품에 페럿을 안은 소년은 또래 아이들의 추격을 피해 도망치던 중 끝내 붙잡힌다. 아이들은 소년을 폭행하고 페럿을 태워 죽인다. 이 장면은 소년이 처한 상황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폭력과 죽음 앞에 노출된 소년이 살아남기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두 가지다. 빨리 도망치거나 애원하면서 눈치를 보거나.

 

저지 코진스키의 원작을 바츨라프 마르호울 감독이 무려 11년에 걸쳐 제작한 이 작품은 한 소년의 일대기를 통해 인간이 지닌 폭력성, 즉 야성(野性)을 조명한다. 명확한 배경 없이 동유럽 어느 곳으로만 인식되는 장소에서 유대인 소년은 한 여성에게 맡겨진다. 여성은 소년에게 되도록 사람들 눈에 띄지 말 것을 당부한다. 어느 날 밤 여자가 죽고 집이 불타면서 소년은 혼자가 된다.

 

▲ '페인티드 버드' 스틸컷  © 엠엔엠인터내셔널(주)

 

마을로 내려온 소년을 마을 사람들은 가차 없이 구타한다. 그는 주술사 노파에 의해 그 아래로 들어가고 이후 여러 사람을 거치게 된다. 소년이 새로운 보호자를 만날 때마다 그들의 이름이 표시된다. 소년은 이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따뜻함과 위로를 얻기 보다는 다양한 종류의 잔인함과 집단광기를 경험한다. 그 대표적인 만남이 새를 기르는 남자와의 만남이다. 남자는 고이 기른 새를 하늘로 날려 보낸다.

 

그 새는 다른 새들의 공격을 받으며 처절하게 몸부림친다. 남자는 그 모습에 절망하기보다는 덤덤하게 바라보고는 집으로 들어간다. 소년은 죽어버린 새 시체를 보며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그 모습은 집단의 광기에 의해 악마라 불리며 폭력을 당하는 자신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먹고 살기 위해 남자들에게 몸을 파는 여자가 당하는 폭력은 인간이 지닌 집단광기가 얼마나 무서운지 잘 보여준다.

 

마을 청년들과 관계를 맺은 여자는 그들의 어머니와 마을 여성들에게 붙잡혀 폭행을 당하고 죽음에 이른다. 이때 여성을 구하러 돌진한 새를 기르는 남자 역시 폭행을 당하고 지켜주지 못했다는 상실감에 결국 자살을 택한다. 남자는 생명을 향한 따뜻한 마음과 사랑을 지녔지만 시대는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남자의 죽음 후 소년은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될지 알게 된다. 이를 보여주는 장면이 기차역 장면이다.

 

▲ '페인티드 버드' 스틸컷  © 엠엔엠인터내셔널(주)

 

독일 나치는 유대인을 달리는 기차에서 내리게 하고 그들을 총으로 쏜다. 근처 마을 주민들은 죽은 유대인 시체에서 장신구부터 옷까지 빠짐없이 가져간다. 그리고 그 일행 가운데 소년도 있다. 소년은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의 죽음과 사정에 동정을 표할 이유가 없다는 걸 배우게 된다. 신성한 직업을 지닌 신부가 소년을 거두지만 그가 위탁을 맡긴 남자가 몰래 폭력을 가하고 신부가 생을 마감한 점은 소년에게 평화와 사랑을 위한 신은 없다고 여기게 만든다.

 

감독은 원작에 따라 공간적 배경을 모호하게 가져온다. 북유럽의 어느 지방이란 암시만 주고 언어 역시 슬라브 계열에 속하는 언어를 섞어 만들었다. 독일과 러시아 군인만이 그들의 언어를 쓴다. 이를 통해 감독은 폭력과 혐오가 2차 대전만의 문제가 아님을 강조한다. 2차 대전 당시 유럽은 제국주의를 지향했고 수많은 식민지를 만들었다. 2차 대전 나치에 의해 희생된 이들 못지않게 아프리카와 중동, 아시아에서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나치가 패배의 역사를 뒤집어 쓴 반면 승리의 역사를 기록한 강대국들은 이런 피의 역사를 숨겼으며 분노와 혐오로 점철된 현상을 감추기에만 급급했다. 2차 대전을 소재로 한 85년 작 다큐멘터리 ‘쇼아’를 보면 여전히 유대인을 혐오하며 그들의 죽음을 옹호하는 이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혐오와 증오는 2차 대전의 종식과 함께 사라지지 않았다. 나치에 대한 반성은 계속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경각심을 부르지만 프랑스나 영국 등 제국주의를 이끌었던 유럽의 열강들은 그 어떤 책임도지지 않는 무책임한 모습을 보였다.

 

▲ '페인티드 버드' 스틸컷  © 엠엔엠인터내셔널(주)

 

아이티의 독립 후 그들을 경제적으로 옥죄어 세계적인 빈국으로 만들어 버린 프랑스나 뱅골 대기근으로 6백만이 넘는 인도인들을 굶어 죽인 처칠의 영국, 팔레스타인을 향한 이스라엘의 폭격과 코로나19로 인한 유럽인들의 동양인 혐오는 소년이 겪은 고통과 아픔이 지워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영화는 특정한 시대와 장소를 굳이 언급하지 않는다. 역사는 순간이 아닌 지속이며 영원임을 상기시킨다.

 

35mm 흑백 필름을 써서 2.35:1의 화면 비율로 촬영을 하는 시네마스코프를 통해 감정을 풍부하게 가져오며 서사를 통한 머리로의 인식이 아닌 장면을 통한 마음의 충격을 가져온다. 대사는 최소한으로 줄이되 잔혹하고 노골적인 장면을 통해 슬픔과 고통의 정서를 강화한다. 인간이 지닌 비열하고 잔인한 야성에 주목하며 피로 온몸이 칠해진 아이의 눈을 통해 하늘로 날아갈 수 없는 꿈을 잃은 새의 절망을 보여준다.

 

 

김준모 기자| rlqpsfkxm@cinerewi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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