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영화에게는 '사소한 시도', 관객에게는 '위대한 변화'

진화하는 디즈니의 서사

김예지 | 기사입력 2019/04/15 [11:00]

디즈니 영화에게는 '사소한 시도', 관객에게는 '위대한 변화'

진화하는 디즈니의 서사

김예지 | 입력 : 2019/04/15 [11:00]

 ‘디즈니 영화’하면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는 무엇일까? 지금의 20대~30대는 아마도 대부분 2D 시절의 신데렐라, 백설공주, 잠자는 숲속의 공주, 인어공주 등을 떠올릴 것이다. 그때의 디즈니는 주로 안데르센의 동화나 서양의 전래 동화를 모티브로 영화를 만들었었다. 이 영화들의 특징은 여자 주인공을 중심으로 영화가 전개되지만, 또한 그 여자 주인공인 영화에서 가장 수동적인 인물이라는 점이다.

 

 지금까지 디즈니의 공주들은 대부분 누군가가 자신을 구하러 와주기를 기다리는 이미지였다. 신데렐라의 신데렐라, 백설공주의 백설공주, 잠자는 숲속의 공주의 오로라, 미녀와 야수의 벨 모두 왕자로 인해 인생이 변화하거나 혹은 저주를 풀고 구원을 받는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이야기의 결말은 어김없이 ‘결혼’이다. 행복한 결말의 맺은 이야기의 최종 엔딩은 언제나 공주와 왕자의 결혼식이었으며, 마치 결혼을 통해서 영원한 행복을 얻고 앞으로는 고난이 없을 것처럼 묘사되었다. 물론 인기가 있었던 인어공주나 신데렐라의 경우 후속편이 나오기도 했지만 사람들의 뇌리에 강하게 각인된 것은 동화 원작을 충실히 재현한 1편이다. 뮬란에서는 이례적으로 아버지 대신 군대에 가며 지혜와 강인함으로 결국 나라를 구하는 ‘여성 영웅’이 묘사되기도 했으나, 그것은 뮬란에만 국한된 이야기였다. 이후 디즈니의 서사 대부분은 여전히 수동적이고 왕자에 의해 구원받는 여성의 일생을 그렸다.

 

 

▲ 신데렐라 스틸컷     © Walt Disney Productions

 

 

 러브라인이나 결혼 자체는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모든 해피엔딩이 일관되게 ‘결혼’만을 묘사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다. 매체에서 많은 영향을 받는 아이들은, 디즈니 영화를 접하며 결혼만 하면 모든 고난이 끝나는 것처럼,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생각하게 되기 쉽다. 또한 수동적이지만 왕자로 인해 삶이 변화하고 위기를 벗어나는 공주를 보면서 자신 역시 누군가 나타나서 삶을 바꿔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수동적인 여성상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다. 수동적인 여성’만’이 디즈니 영화의 전부이기에 문제인 것이다. 여성은 적극적일 수도 있고, 수동적일 수도 있다. 소극적일 수도 있고, 적극적일 수도 있으며, 누군가 자신의 삶을 바꿔줄 수도 있지만, 스스로 삶을 개척해 나갈 수도 있다.

 

 

▲ 라푼젤 스틸컷     © Walt Disney Productions



 시대가 변함에 따라 매체가 묘사하는 여성상도 변화했고, 이런 변화의 바람은 디즈니에도 불어왔다. 공주와 개구리(2009)를 마지막으로 3D 애니메이션만을 제작하기로 하면서 디즈니 서사에 본격적인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라푼젤(2010)에서는 탑에 갇혀있고 머리가 긴 여자주인공이라는 설정을 기본적으로 동화와 동일하지만, 영화의 주인공 라푼젤은 이전의 공주들과 달리 적극적인 인물이다. 기존의 디즈니 서사를 따라갔다면, 아마 탑에 갇혀있던 라푼젤이 남자주인공인 유진에 의해 탑을 탈출하게 되면서 영화가 엔딩을 맞았을 것이다. 그러나 ‘라푼젤’에서는 오히려 라푼젤이 탑을 나가면서부터 본격적인 영화의 줄거리가 시작된다. 라푼젤은 호기심이 가득하고, 적극적으로 맞서고 행동하며, 자신의 삶과 주변 인물들에 대해 스스로 고민한다.

 

 

▲ 겨울왕국 스틸컷     © 소니픽쳐스 릴리징 월트디즈니 스튜디오스 코리아(주)

 

 

 애니메이션 영화로서는 이례적인 성적을 기록한 겨울왕국(2014) 역시 변화된 면모를 모여준다. 한스와 크리스토퍼라는 남자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비중을 보았을 때 주인공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주인공들을 보조하고 도와주는 조연에 가깝다. 영화의 중심 사건을 끌어가고 문제를 해결하는 키워드가 되는 인물들은 ‘안나’와 ‘엘사’ 두 자매다. 자매의 이야기와 갈등을 중심으로 스토리가 진행된다. 엘사는 자신의 고민을 벗어던지고 자유를 찾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안나는 그런 언니를 다시 데려오기 위해 모험을 떠난다. 전형적인 여자주인공 한 명, 남자주인공 한 명의 구조에서 탈피한 것이다. 남녀간의 사랑과 권선징악을 강조하던 맥락에서 벗어나 이번에는 ‘자매애’를 강조하고 있다. 가족간의 사랑과 유대는 디즈니가 항상 추구하던 가치였지만 그 가족간의 사랑은 주로 부모와 자식 사이를 통해 비춰졌다. 그러나 ‘겨울왕국’을 통해서는 자매애를 전면에 내세우고 남자 인물들은 주변으로 배치했다. 안나를 도와주는 크리스토퍼가 나오고, 악의를 품고있던 한스의 정체가 반전의 장치로 이용되지만 영화의 주요한 서사라고는 할 수 없다.

 

 

▲ 모아나 스틸컷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이후 후속작으로 나온 ‘모아나(2017)’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의 초중반부까지 남자주인공인 마우이는 등장하지 않고 모아나의 서사 위주로 영화를 끌고 나간다. 바다를 꿈꾸며 동경하던 주인공은 결국 부족과 섬을 구하기 위해, 그리고 스스로의 꿈을 위해 바다로 나간다. 고난을 겪고 마우이를 만나서도 물러서지 않고 자신과 동행할 것을 요청한다. 지금까지 디즈니에서 여자주인공의 ‘꿈’이 중요하지 않았던 것과는 사뭇 다른 행보다. 모아나는 자신의 꿈을 찾아 나아가고, 그 과정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돌아가려던 모아나 앞에 나타난 것 역시 마우이가 아니라 할머니의 영혼이었다. 가오리를 타고 나타난 할머니의 영혼은 모아나에게 꺾이지 말라며 용기를 북돋아준다. 결국 모아나는 모험을 무사히 완수하고 섬으로 돌아간다. 마우이와는 굳건한 우정으로 연결된 채 말이다. 여자주인공과 남자주인공이 등장하지만 러브라인으로 이어지거나 결혼을 하지 않는다.

 

 전세계 많은 사람들의 꿈과 희망이었던 추억인 동시에, 여전히 많은 아이들의 꿈과 희망인 디즈니. 영화 산업이 발전하고 시장이 더욱 넓어지면서, 디즈니라는 거대한 회사가 이제는 단지 서구권 아이들 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의 아이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 디즈니가 다양한 여성상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것, 전형적인 구원받는 공주, 신데렐라식 서사에서 탈피해 적극적인 모습을 묘사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상당히 긍정적인 일이다. 어쩌면 인물이나 서사의 변화가 디즈니 영화에게는 사소한 시도일 뿐일 수도 있다. 그러나 디즈니 영화를 지켜보는 전세계의 관객에게, 이는 위대한 변화이다.

 

[씨네리와인드 김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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