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의 자살, 잊힐 수 없는 과거를 끄집어내다

[서평] 추리소설 '아무도 문밖에서 기다리지 않았다'

김준모 | 기사승인 2020/03/26 [18:02]

한 남자의 자살, 잊힐 수 없는 과거를 끄집어내다

[서평] 추리소설 '아무도 문밖에서 기다리지 않았다'

김준모 | 입력 : 2020/03/26 [18:02]

▲ '아무도 문밖에서 기다리지 않았다' 표지  © 나무옆의자

 

[씨네리와인드|김준모 기자] 기형도 시인의 시 ‘엄마 걱정’은 어린 시절 혼자 집에 남아 엄마를 기다렸던 소년의 불안과 공포가 성인이 된 지금도 남아있는 그 감정을 표현한 작품이다. 이 시는 유년시절 느꼈던 감정은 성인이 되어서도 지워지지 않음을, 그 불안과 공포는 여전히 마음속에 남아있음을 보여준다. ‘아무도 문밖에서 기다리지 않았다’는 이런 기형도 시의 감정을 ‘사라져 가는 것들’ 속에 담아낸다.

 

서점에서 일하는 리디아는 어느 날 외딴 서가 사이에서 동료 조이의 시체를 발견한다. 목을 맨 조이의 호주머니에는 놀랍게도 그녀의 어린 시절 사진이 있다. 잊고 싶었던 과거와 마주하게 된 리디아는 조이가 남긴 유품을 받기 위해 그가 살던 아파트를 향한다. 그곳에서 그녀는 책 꾸러미를 발견하는데 책에는 특정 페이지에 구멍이 뚫려 있고 다른 라벨이 붙어 있다. 리디아는 라벨의 주인인 책의 페이지를 구멍 뚫린 페이지와 겹쳐 바라보며 조이가 남긴 메시지를 읽는다.

 

그 메시지를 통해 리디아는 과거와 마주하고 조이의 자살 소식이 실린 기사 사진에 찍힌 리디아의 모습을 본 과거의 인물들은 다시 그녀를 찾아온다. 리디아에게 잊고 싶은 기억은 ‘망치남 사건’이다. 절친한 친구 캐롤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던 그녀는 갑자기 집에 들어온 괴한에 의해 캐롤 가족이 모두 살해당하는 현장을 목격한다. 이때 리디아는 싱크대 아래에 몸을 숨겨 살아남지만 책상에 부딪쳐 생긴 피가 부엌 바닥에 남았다는 점에서 당시 형사였던 모버그는 의문을 표한다.

 

조이의 죽음으로 마을을 떠났던 리디아의 정체가 다시 수면 위에 올라오면서 이 끔찍한 기억과 연관된 이들이 다시 그녀의 삶에 개입한다. 캐롤을 만나기 전 가장 절친한 친구였던 라지, 그 사건을 여전히 잊지 못하는 형사 모버그, 마을을 떠난 뒤 조용했던 사서가 교도관이 되면서 이상하게 변해버린 아버지 등 그녀가 기억 속에 묻고 싶었던 인물들이 다시 그 곁으로 찾아온다.

 

작품은 죽음과 고독의 분위기를 통해 일상 속에서 미스터리와 긴장감을 유발해낸다. 캐롤이 일하는 브라이트아이디어 서점은 대도시 개발지구에 위치해 있다. 끊임없이 옛것이 무너지고 새로운 것이 세워지는 곳에 말이다. 책은 옛것에 해당된다. 서점에는 수많은 책개구리들이 있지만 그들은 나이가 들거나 갈 곳이 없는 이들이다. 젊은이들은 더 이상 소설을 찾지 않는다.

 

모버그와 조이의 아버지 역시 인생의 전성기를 지나 낙화하는 중이다. 모버그는 경찰을 은퇴하고 산에서 유유자적 생활하며 아버지 스티븐은 교도소에 기부를 명목으로 버려지는 책들을 집에 쌓아둔다. 소년원 출신의 조이가 자살을 택한 점과 그가 책에 남긴 암호로 자신의 우울하고 어두운 마음을 드러낸다는 점은 이 미스터리에 호기심으로 발을 들이댔던 리디아가 점점 공포에 빠지는 몰입을 보여준다.

 

‘아무도 문밖에서 기다리지 않았다’는 사라져가는 것들 사이에서 아픈 기억을 차마 떨쳐버리지 못하는 리디아의 모습처럼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들의 우울한 블루를 보여준다. 조이의 자살은 그 감정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만들었을 뿐 인물들이 겪고 있는 어둠은 처음부터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책을 소재로 미스터리의 격조를 높이면서 인물의 과거가 지닌 공포에 점점 빠져들게 만드는 일상 심리 스릴러의 구성이 인상적이다.

 

 

김준모 기자| rlqpsfkxm@cinerewi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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