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왜 '추한' 존재로 역사에 기록되었나

[서평] 클로딘느 사게르 '못생긴 여자의 역사'

김준모 | 기사승인 2020/03/30 [10:25]

여성은 왜 '추한' 존재로 역사에 기록되었나

[서평] 클로딘느 사게르 '못생긴 여자의 역사'

김준모 | 입력 : 2020/03/30 [10:25]

▲ '못생긴 여자의 역사' 표지  © 호밀밭 출판사


[씨네리와인드|김준모 기자] 아카데미 시상식과 베를린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시몬느 시뇨레는 “이브 몽땅(프랑스의 유명 배우이자 가수)과 나는 나이가 같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나는 늙어가는 거고 그 사람은 성숙해가는 거더라. 남자한테는 백발도 은발이라 부르고 남자의 주름은 자랑할 만한 연륜이지만 여자의 주름은 그냥 추한 거다. 늙어가는 남자에게는 근사하다고 하지만 늙어가는 여자는 그냥 쪼그랑 할머니라고 한다.”는 말을 한 적 있다.

 

약 3000년의 역사 속 여성의 삶에는 ‘추함’이 묻어 있다. 고대에는 원죄로서 여성을 추하다고 했으며 중세에는 신체를 추하다 여겼고 근대에는 추한 여성의 종류가 설정되었다. 그리고 현대에는 아름다움을 의무처럼 짊어진다. 사회학자 클로딘느 사게르는 인터넷 페미니스트가 할 법한 소리로 들리는 이 주장에 근거를 부여한다. 지난 3000년의 역사 속에서 여성을 어떻게 표현하고 여겨왔는지를 분석한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칸트 같은 철학자부터 발자크, 모파상 같은 유명한 작가까지 그들의 주장에 ‘여성혐오’가 담겨 있다는 걸 알면 다소 당황할 것이다. 누구보다 앞선 시선으로 사회의 본질을 꿰뚫어 봤던 시대의 지식인들이 여성에게는 편협한 시선을 지니고 틀에 가두려 했으니 말이다. 고대에는 여성의 존재 자체를 원죄로서의 추함으로 생각했다. 말 그대로 생물학적으로 남성과 여성을 분리해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치부한 것이다.

 

월경, 오로, 모유를 근거로 여성의 몸은 습하고 차가운 존재로 여겨졌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타고난 열이 부족하면 더 역하다’는 말로 여성의 유약함을 생리학적으로 설명했다. 남성보다 신체적으로 골격이 작은 여성은 병약하고 허약한 존재로 인식되었고 월경이나 오로는 자궁이 여성의 의지로 통제되는 않는다는 점에서 여성 존재 자체를 추하게 보았다. 힘과 아름다움, 건강과 덕이라는 가치를 지니려면 몸에 열이 많아야 되는데 그러지 못한 게 이유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에 대한 질료의 관념은 남성을 형상, 여성을 질료로 보았다. 질료는 재료이며 이것에 형상이 가해져야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물(物)이 된다. 심한 말로 하자면 남성은 형상을 지닌 존재지만 여성은 그런 형상을 만들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고대 그리스에서 여성은 아이를 낳고 유년 시절 동안 교육하는 역할에 머물렀다. 여성의 결혼 역시 남자를 꼬셔 부모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지게 하는 요망한 행위로 간주했다.

 

우리나라 조선시대의 기생들은 글을 배울 수 없는 여자들과 달리 글을 배우고 시를 쓸 수도 있었다. 이는 남성들의 유희문화에 맞춰 교육을 받은 거라 볼 수 있다. 과거 그리스에서도 여성은 아이를 낳고 돌보는 용도로 취급한 반면 자신들의 문화수준에 맞춰 유희문화를 즐길 목적으로 교육 받은 헤타이라라는 여성들이 있었다. 이처럼 남성들은 자신들의 유희를 위해 여성을 교육시켰고 그 성과를 알았지만 일반적인 여성에게는 그 기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중세의 인식 역시 고대와 다를 바가 없다. 이 시기에는 기독교의 영향으로 여성에 대한 사회적인 차별이 존재했다. 기독교에서 죄의 근원은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게 한 이브이며 이브는 아담의 늑골로 만들어졌다. 이는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이라는 인식과 태초의 죄악으로 종족번식의 의무를 짊어진 것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때문에 이 의무에 충실하지 못한 여성들은 사회적 지탄과 폭력의 대상이 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노파와 마녀다. 여성의 평균수명은 남성보다 길어서 홀로 남겨진 여성들이 증가했다. 문제는 이들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늙는 모습을 흉측하게 여겼다는 점이다. 때문에 이들은 마녀로 몰려 마녀사냥의 대상이 되었다. 흉측함 때문에 오는 혐오가 집단학살로 이어진 것이다. 당시 젊은 여성들도 그 대상이 되었으나 이들의 경우 모함 또는 기독교적인 율법을 여긴 경우에 마녀로 몰렸다.

 

반면 노파는 생김새가 흉하다는 점과 혼자 산다는 이유만으로 그 대상이 되었다. 고대와 중세가 사상 또는 종교를 이유로 여성을 추하다 규정하고 그 흉함을 논했다면 근대에는 권력 중심으로 그 논의가 지속된다. 근대에는 여성의 필요성이 인정받았는데 그 이유는 출산이다. 의학이 발달하면서 여성 몸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기존 여성들만이 알았던 의학적인 정보가 학문의 일부가 된다. 이 관심은 종족 보존의 측면에서 임신과 연결된다.

 

즉 근대에는 여성을 종족 보존을 위한 중요한 존재로 간주했으나 그것을 의무로 보았고 이에 속하지 않는 여성들에게 이전 세대가 그러했듯 ‘추하다’라는 낙인을 찍었다. 이 낙인은 크게 세 개로 나눠져 기존 질서에 편입되지 못한 여성에게 찍힌다. 첫 번째는 노처녀다. 노처녀는 가정을 이루지 못했다는 사실만으로 추하다는 낙인이 찍혔고 그 대상은 외모와 몸이 되었다. 결함이 있기에 남성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는 게 이유다.

 

자연스럽게 비혼주의나 동성애는 허용되지 않았다. 아이를 낳지 않고 가정을 꾸리지 못하는 여자는 쓸모없는 존재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두 번째 파란 스타킹은 지식인 여성 계층을 의미한다. 당시 지식은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졌으나 교육을 받은 여성들은 자신들만의 학회를 꾸리고 여성의 권리를 주장했다. 이들은 기존의 편견을 깨부수고 자유분방한 사고를 주장했기에 파란 스타킹을 실수로 신고 온 이를 학회에 들였으나 이는 남성들에 의해 조롱의 대상으로 비춰진다.

 

그들은 이 파란 스타킹이라 불리는 지식인 여성 계층을 그리거나 묘사할 때 주름진 노파나 비대한 몸을 지닌 여성으로 표현했다. 이 저급한 표현은 이들이 외적으로 추한 존재이기에 기존 질서를 벗어난 행동을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당시 미의 기준은 깡마르거나 비대한 몸이 아닌 적당하게 날씬하면서 여성성을 상징하는 가슴이 처지지 않게 볼륨감 있는 걸 선호했다. 때문에 깡마르거나 비대한 몸의 여성은 추함의 상징이었다.

 

세 번째 반란녀는 오늘 날의 여성참정권과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만들어낸 여성운동가들을 말한다.  이들에 대한 사회적 비판 역시 파란 스타킹을 조롱하는 방식과 같았다. 이들은 프랑스 혁명에 참여한 여성들의 모습을 비대하게 그리며 ‘이런 못생긴 여성들이 앞서 있으면 혁명의 이미지가 훼손된다’는 식으로 폄하했다. 근대는 현모양처라 일컬어지는 가정에 충실하고 순종적인 여성을 원했고 이 범주에서 벗어나면 추함을 논했다.

 

그렇다면 현대는 어떤가. 현대의 여성들은 참정권을 쟁취했고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획득했다. 사회적인 차별과 폭력에 연대해 싸울 수 있고 부당한 대우에 법적으로 대항할 수 있다. 이런 자유를 얻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추함은 사회적인 시선이 아닌 자신의 나태함이 되어버렸다. 여성에겐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의무도 남성보다 아래로 인식하는 사회적 시선도 없다. 그런데 사회는 여전히 아름다운 여성을 원한다.

 

앞서 시몬느 시뇨레의 말을 생각해 보자. 매스컴이 다루는 여성의 모습은 마르고 예뻐야 하며 주름 없는 피부를 유지해야 된다. 남성의 주름은 근사한 훈장이 되지만 여성의 주름은 추함이 되어버린다. 드라마 속에서 여전히 아름다운 미모를 유지하는 여성들은 젊은 남성과 로맨스를 하고 부유층의 역할을 맡지만 반대의 여성들은 중산 혹은 하류층의 아이 엄마 역할로 그 역할의 폭이 국한된다.

 

이는 문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노년의 남성이 느끼는 성적 욕망을 표현한 작품은 예술이 되지만 여성으로 대상이 바뀐다면 논란이 된다. 실제 노년 여성이 젊은 남성을 만나 성적 오르가즘 느끼는 내용을 다룬 작품은 사회적인 논란이 된 바 있다. 사회적인 시선은 암묵적으로 존재하지만 여성은 자유와 해방을 얻었다 여겨지기에 아름다움은 그들의 몫이 된다. 아름다워지지 못하면 도태되고 자기관리를 하지 못한 추녀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외적인 문제는 내적인 문제도 결정짓는다. 추한 사람은 자기관리가 부족한 사람이며 때문에 성실하지 못하다 여겨진다. 또 추한 사람은 그 열등감과 시기심이 심할 것이란 편견에도 시달린다. 동화 속 마녀나 악녀는 모두 추한 외모를 지니고 있고 공주는 아름답다는 점은 여성의 외모와 정신을 동일시 보는 편견이 암묵적으로 교육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때문에 사회는 여전히 관습이 만든 역할을 이행하지 않거나(결혼과 출산) 자기관리를 못하는 여성들은 ‘추녀’로 낙인찍는다.

 

‘못생긴 여자의 역사’는 지난 3000년의 역사 속 여성이 어떻게 추한 존재로 인식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수많은 철학자와 문학가들의 말과 작품, 사회적인 현상 속에서 여성에게 가해진 편견과 폭력 그리고 억압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페미니즘이 사회적인 열풍이 되고 과거 여성의 역사 속에서 현대의 여성들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만큼 핵심적인 화두를 던진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김준모 기자| rlqpsfkxm@cinerewi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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