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자유는 야성을 통해서만 증명되는 것일까

모리무라 세이치 '야성의 증명'

김준모 | 기사승인 2020/04/10 [12:40]

진정한 자유는 야성을 통해서만 증명되는 것일까

모리무라 세이치 '야성의 증명'

김준모 | 입력 : 2020/04/10 [12:40]

▲ '야성의 증명' 표지  © 검은숲

 

[씨네리와인드|김준모 기자]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 이 사건들의 공통점은 자유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주인 된 권리를 찾아왔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 이후는 어땠을까. 4.19혁명으로 독재정권을 무너뜨렸지만 5.16 군사정변으로 군부에게 정권을 빼앗겼다. 5.18민주화운동과 6.10민주항쟁으로 12.12사태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정부를 무너뜨렸으나 이후 선거로 뽑힌 대통령은 전두환과 함께 12.12사태를 주도한 노태우였다.

 

‘야성의 증명’이 던지는 질문 중 하나는 이 자유주의와 관련되어 있다. 자유주의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피를 흘려야 되지만 그 결과는 너무나 쉽게 무너진다. 군부의 힘에 의해, 부유층과 언론이 결탁한 프레임에 의해,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요구를 담아내지 못하는 정권의 한계에 의해 피로 세우고 무너지고를 반복한다. 그렇다면 과연 자유주의는 그만한 의미가 있는 제도일까.

 

만약 인간의 본성이 우리 안에 가둘 필요가 있는 야성에 가깝다면 우리 밖에 풀어두는 자유주의는 어울리지 않는 옷일지 모른다. 작품의 공간이 되는 하시로 시는 경찰의 능력으로 치안을 유지할 수 없다. 이에 오바 가문은 이 도시를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고 일종의 ‘오바 왕국’을 건설한다. 당연히 오바 가문의 사주를 받는 조직원들은 왕처럼 주민들을 때리고 모욕한다. 하지만 주민들이 그들에게 대항해 자유를 외칠 수 없는 이유는 폭력 때문이다.

 

한때 오치 모기치라는 남자는 하시로 신보라는 신문사를 조직해 오바 가문의 비리를 폭로하며 주민들의 힘을 하나로 모았다. 하지만 이 저항은 오치 모기치의 석연찮은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주민들은 오바 가문의 폭력을 보았고 목숨을 건지기 위해 저항을 포기한다. 더 강한 자에게 약한 자가 굴복하는 것. 그것은 야성의 본질이자 오랜 시간 자연이 먹이사슬을 유지해 온 비결이다. 그렇다면 인간 역시 이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 굴레를 끊기 위해 등장한 보험사 직원 아지사와는 역설적인 인물이다. 그는 독재를 자행하는 오바 가문에 저항하지만 그 누구보다 강한 야성을 지니고 있다. 자위대 특수부대에서 훈련을 받은 그는 오직 생존하는 방법과 남을 죽이는 방법만 훈련받았다. 그의 존재이유는 생존과 살상 두 가지다. 그는 하시로 시에서 일어난 사고가 보험금을 타내기 위한 살인사건이라 의심하고 보험사기를 조사하면서 오바 가문과 대적하는 위치에 선다.

 

작품 속 그는 정의의 위치지만 동시에 악의 위치에도 해당된다. 형사 기타노는 산골마을 가키노기 촌 주민을 전원 몰살시킨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아지사와를 의심한다. 그는 당시 마을에서 살해당한 유일한 외지인 오치 미사코의 동생 오치 도모코와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인 소녀 나가이 요리코가 아지사와와 동행하고 있다는 점이 그가 쓴 가면이라 생각한다. 이 가면은 동물은 지니지 못한 인간의 영역인 이성과 감성이다.

 

아지사와가 어떠한 이유로 살인을 저지르고 피해자들에 대한 동정심 때문에 또는 의심을 피하기 위해 이들과 동행한다고 기타노는 생각한다. 전자는 감성이고 후자는 이성의 영역이다. 한 마디로 아지사와는 인간이 되고 싶어 하는 야생의 늑대, 양의 무리에서 살고 싶은 피를 뒤집어 쓴 존재라 기타노는 생각한다. 이런 기타노의 마음은 집착과 동질감으로 표현된다. 집착은 형사의 얼굴, 동질감은 사람의 얼굴을 지닌다.

 

형사로의 기타노는 어떻게든 아지사와의 야성을 깨워야 한다. 증거가 없는 사건의 특성상 그가 살인을 저지르거나 남을 공격하는 모습을 보여야만 범행에 대한 확신은 성립할 수 있다. 그래서 기타노는 아지사와를 자극할 사건이 일어나길 바란다. 하지만 한 명의 사람으로 시 전체를 지배하고 살인과 폭력을 마다하지 않는 오바 가문이 무너지는 모습 역시 바란다. 그리고 그 역할을 해낼 수 있는 건 공권력이 아닌 아지사와의 야성이라 생각한다.

 

이 순간 기타노와 이자사와는 동일한 성질을 지니게 된다. 아지사와가 보험 사기 사건에 집착하는 거처럼 기타노는 아지사와에게 집착한다. 아지사와가 아버지의 뜻을 이어 마을의 비리를 폭로하고 싶지만 힘이 모자란 오치 도모코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그녀를 돕는 거처럼 기타노 역시 아지사와의 분노에 동질감을 느끼고 그가 오바 가문을 무너뜨리길 바란다. 그렇다면 이런 아지사와의 ‘야성’을 깨운 코드는 무엇일까.

 

이는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오치 도모코의 죽음이다. 오치 도모코는 자신을 강간 위기에서 구해준 이가 아지사와라고 확신하며 그가 자신이 지닌 힘으로 오바 가문에 적극적으로 대항하지 않는 점에 실망을 느낀다. 아지사와는 폭력이 아닌 법과 정의로 그들을 무너뜨리려고 하지만 오치 도모코의 죽음은 인간이 만든 규칙으로는 그들을 이길 수 없다는 걸 알려준다. 우리에 갇힌 짐승은 허수아비와 같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두 번째는 나가이 요리코다. 나가이 요리코는 사고 이후 예지몽을 꾸게 된다. 동시에 꿈을 통해 점점 학살사건 당시의 기억을 떠올려 간다. 아지사와에게 나가이 요리코는 딸과 같다. 어쩌면 그에게 자신이 짐승이 아닌 인간임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따뜻한 마음을 줄 수 있는 나가이 유리코와의 연대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가이 요리코가 학살사건의 범인으로 그를 지목한 순간 아지사와의 마음 속 남아있던 마지막 인간의 끈은 끊어지고 만다.

 

세 번째는 연부병이다. 연부병은 채소가 점점 물러져 썩고 흐물해지는 병이다. 점차 물러서 썩는 이 병은 식물이 걸리는 증상이다. 작품에서는 아지사와와 기타노가 이 병에 걸린다. 두 사람은 점점 인간됨을 잃어가며 야성에 눈을 뜬다. 상대를 향한 분노와 집착만이 남고 그 해소방안으로 폭력을 택한다. 그들은 인간이 만든 규칙으로는 서로의 집착을 해소시킬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야성을 택하고 그 대가로 연부병을 얻는다.

 

인간이 만든 사회란 공간 속에서 정의와 법치가 가치를 지니는 자유주의는 이뤄질 수 있는가. 어쩌면 진정한 자유란 그 우리를 탈출한 야성에서 이뤄지는 게 아닐까. 만약 야성이 진정한 자유라면 인간의 이성과 감성은 자유를 막는 신이 내린 저주인 걸까. 작품은 범죄 미스터리의 구성 안에 야성과 인간에 대한 복잡한 질문을 제시하며 책장을 덮은 후에도 사색에 잠기게 만든다.

 

모리무라 세이치의 ‘증명 3부작’은 인간에 대한 깊은 탐구를 보여준다. 그 중 ‘야성의 증명’은 자연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해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마쓰모토 세이초와 함께 일본 사회파 미스터리의 양대 산맥인 그는 추리의 과정을 인간에 두고 있다. 모든 범죄 미스터리는 인간에서 비롯되며 인간의 본질을 알아야만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추리에서 트릭보다 중요한 건 동기다. 그의 작품들은 그 미스터리를 집요하게 파고들며 인간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김준모 기자| rlqpsfkxm@cinerewi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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