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호러는 어쩌다 몰락하게 되었나

김준모 | 기사승인 2020/05/12 [14:39]

J호러는 어쩌다 몰락하게 되었나

김준모 | 입력 : 2020/05/12 [14:39]

▲ 전 세계를 J호러 열풍으로 이끌었던 '링'의 명장면  © 네이버영화 제공

 

[씨네리와인드|김준모 기자] 1998년 ‘링’이 등장한 후 J호러는 전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게 된다. 나카다 히데오, 구로사와 기요시, 미이케 다카시 등 공포 장르에 특화된 감독들은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까지 J호러의 명성을 이어가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J호러의 명성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제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당시 ‘링’ 20주년을 기념해 나카다 히데오 감독이 만든 ‘사다코’는 이를 입증한다.

 

‘링’에서 공포의 주체가 되었던 비디오 속 귀신 사다코가 다시 돌아온 건 물론 원작의 감독인 나카다 히데오가 메가폰을 쥐었다. 그럼에도 화제를 끌지 못했고 개봉 역시 미지수다. 이런 의문은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J호러 공포는 더 이상 관객들을 공포에 몰아넣지 못한다. 클래식한 J호러의 공식을 선보인 ‘헌티드 파크’가 전혀 매력을 보여주지 못한 것만 봐도 말이다. 그렇다면 전 세계가 한때 J호러에 열광했던 이유는 무엇이고 왜 그 열풍이 시든 걸까.

 

과거에 뜨거웠지만 지금은 식어버린 공포의 소재 중 하나는 심령사진이다. 사진 속 귀신의 존재는 공포의 대상이었고 이것이 합성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란이 한창이었다. J호러는 이런 심령사진의 재연에 중점을 둔다. 괴담이 등장하고 금기가 나온다. 그 금기를 어기는 순간 저주가 시작된다. 이런 공식은 괴담을 무시하는, 심령사진을 합성이라 치부하고 무시하는 이들에게 귀신이 등장하면서 공포심을 심어준다.

 

▲ J호러 열풍을 이끌었던 나카다 히데오 감독  © CH엔터테인먼트

 

그 대표적인 작품이 ‘링’이다. ‘링’은 비디오를 보면 죽는다는 괴담과 그 죽음으로 향하는 저주에서 시작된다. 그 저주가 끝났다 여겼을 때 비디오가 틀어진 TV 속에서 귀신 사다코가 튀어나오는 장면은 혁명에 가까웠다. 심령사진 속 귀신이 실제 눈앞에 나타나는 거처럼 디지털 시대에 영상을 통해 화면 안에 존재라 여겼던 귀신을 현실로 불러온 것이다. 누구나 무서운 이야기를 듣거나 공포영화를 보면 밤에 잠을 이루기 힘들다.

 

그 이야기 속 귀신이 이야기나 영화를 매개로 저주가 되어 자신에게 나타날지 모른다는 공포심을 지니기 때문이다. ‘링’은 그 공포심을 극대화시키며 J호러의 전성기를 열었다. 이 열풍은 ‘링’과 ‘검은 물 밑에서’가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된 건 물론 나카다 히데오가 ‘링2’의 할리우드판 감독을 맡으며 절정에 올랐다. 그 추락은 유튜브를 비롯한 매체의 다양성과 기술의 발전에 의한 심령사진의 실종에서 찾을 수 있다.

 

한때 우후죽순 등장했던 심령사진은 기술의 발전으로 그 합성 여부를 가늠할 수 있게 되자 실종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사람들은 심령사진에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되었고 J호러식 귀신의 등장에 흥미를 잃었다. 이는 다양한 매체의 등장에서도 비롯된다. 국내에 다시 공포영화 열풍을 가져왔던 ‘곤지암’이 지금은 폐건물이 된 곤지암 정신병원 탐방을 개인방송으로 보여주는 거처럼 다양한 흉가나 폐가 체험을 다룬 개인방송은 심령사진의 재연이라는 J호러의 공포를 다소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피로 범벅된 미국식 공포인 슬래셔와 좀비 호러에 관객들이 익숙해졌다는 점 역시 이유 중 하나다. 지나친 피칠갑으로 매니아틱한 장르로 손 꼽혔던 슬래셔와 좀비 호러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대세 장르로 떠올랐다. 국산 좀비물인 영화 ‘부산행’과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었다는 점에서 좀비 호러는 대중적인 장르로 입지를 굳혔다. 이들에게 J호러의 귀신과 저주는 아이들 장난처럼 느껴진다.

 

▲ 휴대전화 공포를 선보였던 '착신아리'  ©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컨저링’ 시리즈를 비롯한 오컬트 열풍도 J호러의 입지를 좁게 만든 요인이다. 오컬트는 저주와 귀신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J호러와 유사성을 보이지만 그 표현에 있어서는 한층 다양하다. J호러가 ‘금기->저주->귀신의 등장’ 이라는 클래식한 공식에 의존한다면 오컬트는 구마 과정에 중점을 두긴 하지만 그 안에서 다양한 변주를 가져온다. 무엇보다 J호러에 비해 귀신의 존재를 더 무섭게 설정한다는 점이 포인트다.

 

클래식한 공식 또한 더 이상 흥미를 자극하지 못한다. J호러의 마지막 히트작이라 할 수 있는 ‘착신아리’의 경우 휴대전화를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신선한 공포를 자아냈다. 소재에 있어 한 발짝 빨랐다는 점이 유효했고 자신의 번호로 온 메시지의 날짜에 죽음을 맞이한다는 설정은 ‘링’ 이후 디지털 테크놀로지 시대에 맞춘 표현을 보여줬다. 금기와 저주를 시대에 맞춘 덕분에 귀신의 표현이 약하더라도 공포를 자아내는 원동력을 지닐 수 있었다.

 

‘사다코’와 ‘헌티드 파크’는 개인방송과 스마트폰을 활용하지만 금기와 저주를 시대에 맞추는 ‘착신아리’의 미덕을 선보이지 못한다. ‘사다코’의 저주는 20년 전보다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고 ‘헌티드 파크’는 놀이공원에서 어린아이들을 놀라게 하는 까꿍 놀이를 하는 기분이다. 귀신 캐릭터 역시 ‘주온’의 토시오를 끝으로 깊은 인상을 주지 못한다. 사다코나 토시오, 화장실 귀신 하나코 같은 특징으로 뇌리에 박히는 캐릭터를 더 이상 구현해내지 못한다.

 

▲ 아쉬움만 남았던 클래식한 J호러 '헌티드 파크'   ©(주)삼백상회

 

이런 J호러의 몰락은 일본 내 공포영화 거장들의 몰락과도 연관된다. ‘링’ ‘검은 물 밑에서’ ‘여우령’ 등 J호러를 이끌었던 나카다 히데오는 ‘링2’로 할리우드 진출 이후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영화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각각 ‘여우령’과 ‘링’의 후속에 가까운 ‘극장령’과 ‘사다코’를 선보였지만 아류에도 머물지 못할 완성도를 선보였다.

 

‘큐어’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은 구로사와 기요시는 대중성을 갖추지 못했고 ‘오디션’과 ‘착신아리’의 미이케 다카시는 매니아틱한 감독으로 자리 잡았다. 뉴스와 유튜브가 더 재미있어 막을 내리게 된 KBS의 ‘개그 콘서트’처럼 슬래셔와 좀비 호러, 유튜브의 호러 콘텐츠에 밀린 J호러는 더 이상 전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J호러가 다시 살아날 방법이 있을까. 그 답은 코드에 있을 것이다. ‘링’이 비디오를, ‘착신아리’가 휴대전화를 코드로 택하며 대중적인 공포를 부추긴 거처럼 누구나 마음에 품을 만할 공포를 자극하는 힘이 필요하다. ‘하나코’가 어린아이가 혼자 화장실에 가는 걸 두려워하는 마음을 노린 거처럼, ‘주온’이 새로 이사 온 집에서 느낄 수 있는 섬뜩함을 담아낸 거처럼 대중적인 공포 코드를 잡아내는 능력이 중요하다.

 

한때 국내에서도 공포영화 열풍이 분 적이 있다. ‘여고괴담’ 시리즈와 ‘가위’ ‘폰’ ‘알 포인트’ 등의 영화가 흥행했고 안병기 감독이 그 대표주자로 떠올랐다. 하지만 귀신과 저주에 중점을 둔 국내 공포영화는 J호러처럼 그 열풍이 점점 시들어져 갔다. ‘곤지암’이 여름 특수를 잃어버린 공포영화 시장에서 흥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개인방송을 통한 공포 장소 체험이라는 대중들이 공포를 느낄 만한 코드를 활용했기 때문이다.

 

그 완성도와는 별개로 이 코드는 흥미를 자극했고 입소문에 성공했다. 귀신에 바탕을 둔 J호러가 더 이상 공포를 자아내기 힘들다고 보긴 힘들다. 여전히 ‘링’이나 ‘착신아리’ 같이 잘 만든 작품들은 새로운 관객에게도 공포를 유발한다. 공포는 색다름이나 캐릭터에서 유발되지 않는다. 사소한 거라도 내가 무서워하는 걸 남들도 무서워한다. 인간 내면에 내재된 공포를 자극할 수 있을 때 J호러는 다시 한번 전 세계적인 열풍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김준모 기자| rlqpsfkxm@cinerewi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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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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