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성 상품화 사이, 이 영화가 이끌어낸 페미니즘 이슈

[프리뷰] '미스비헤이비어' / 5월 27일 개봉 예정

김준모 | 기사승인 2020/05/20 [10:22]

자유와 성 상품화 사이, 이 영화가 이끌어낸 페미니즘 이슈

[프리뷰] '미스비헤이비어' / 5월 27일 개봉 예정

김준모 | 입력 : 2020/05/20 [10:22]

▲ '미스비헤이비어' 메인 포스터  © 판씨네마(주)

 

[씨네리와인드|김준모 기자] 최근 ‘F등급 영화’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학점 F처럼 못 만든 영화를 뜻하는 말이냐고? 아니다. 감독·작가·주연이 여성이면 여성(Female) 뜻하는 F등급으로 영화를 말한다. 마케팅의 일종이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작은 아씨들’ ‘라라걸’ 등의 작품이 F등급 영화로 주목을 받았고 국내 극장가에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여기 또 다른 F등급 영화가 있다. 앞서 작품들과는 조금 다른, 정말 강해보이는 F등급 영화다.

 

‘미스비헤이비어’는 소재만 보았을 때 상당히 강해 보인다. 1970년, 미스월드에 맞서 성적 대상화 반대를 외친 여성들의 모습을 담았기 때문이다. 요즘 사회적인 화두가 페미니즘이고 이와 관련해 진영논쟁이 치열한 만큼 논란이 될 만한 영화가 아닐까 하는 불안이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좋은 베스트셀러 소설이라 듣고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가 극성 페미니스트로 몰리는 경우처럼 말이다.

 

차라리 그런 방향을 택했다면 이 영화의 오락적인 맛은 좋았을 것이다. 기득권 남성계층에게 멋지게 한 방 먹이는 통쾌함을 선사했을 테니 말이다. 영화는 그보다는 더 신중하게 1970년의 사건을 바라본다. 그 이유는 여성이 반대하는 미스월드가 다른 여성에게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진정한 자유를 외친 여성들을 이기적으로, 미스월드에 참가한 여성들을 성 상품화에 앞장선 이들로 그리지 않는다.

 

▲ '미스비헤이비어' 스틸컷  © 판씨네마(주)

 

자유를 외치는 여성들

 

작품은 미스월드 반대 시위에 참석한 여성 운동가 중 두 명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샐리는 만학을 꿈꾸며 대학을 향한 워킹맘이다. 그녀는 대학 면접에서 경력단절여성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들었을 소리를 듣게 된다. ‘공부에 전념하기 힘든 거 같은데 그냥 집에서 애나 보는 게 어떨지’ 샐리는 학계에서도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시당한다. 그녀는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사회 때문에 원하는 길을 가기 힘든 현실이 괴롭다.

 

그런 샐리가 길에서 만난 페미니스트 예술가 조에게 빠져든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두 사람에겐 공통점이 있다. 가부장적인 남성 사회에 반대하고 여성을 가정의 부속품 취급하는 현실을 바꾸고자 하는 것이다. 그들은 영국에서 열리는 미스월드 대회 안에서 시위를 진행하고자 한다. 무려 전 세계 1억 명이 지켜보는 이 대회보다 파급력이 큰 건 생각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샐리와 조는 간극을 느낀다.

 

샐리는 가정이 있고 지성인이다. 역사가를 꿈꾸는 그녀에게 얼굴이 방송을 통해 공개되는 시위는 위험하다. 반면 조는 가정이 없고 피임과 낙태의 자유를 주장하는 극진보적인 페미니스트다. 잃을 게 없는 그녀는 과감하게 시위를 전개하고자 한다. 샐리와 조는 같은 목적으로 뭉친 거처럼 보이지만 그들 사이의 계층문제는 갈등을 야기한다. 서로의 상황이 다르기에 이해하기 힘든 것이다.

 

▲ '미스비헤이비어' 스틸컷  © 판씨네마(주)

 

이는 샐리와 그녀의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어머니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샐리의 세대가 자신이 살던 때에 비해 진보된 환경에서 살고 있다 여긴다. 때문에 그녀는 여성운동에 가담하는 샐리를 이해하기 힘들다. 샐리는 여성의 신체 사이즈를 재는 건 도살장에서 소에게 하는 짓이나 다름없으며 외모를 통한 평가는 여성의 선택권을 줄인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지금 여성들은 자신이 살던 때보다 원하는 걸 누릴 수 있다 반박한다.

 

이에 샐리는 남성들이 허용한 범위에서만 누리는 자유를 원하지 않으며 아무것도 하지 않은 어머니 같은 사람이 되기 싫다며 가슴에 못이 박히는 말을 한다. 샐리와 그녀의 어머니, 조는 같은 여성이지만 서로가 지닌 생활수준과 세대차이로 인해 연대를 이루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는 여성운동에도 각자가 생각하는 시각의 차이를 보여주며 영화가 나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다.

 

▲ '미스비헤이비어' 스틸컷  © 판씨네마(주)

 

미스월드를 꿈꾸는 여성들

 

이런 현명한 판단은 미스월드를 꿈꾸는 여성들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미스월드는 그녀들에게 기회다. 과거 논란이 되었던 ‘프로듀스 101’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을 예로 들자면 그 과정과 방식이 올바르지 않다는 걸 알지만 참가하는 연습생들은 스타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위해 출연한다. 남들에게는 비판과 비난의 대상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꿈을 이룰 순간이 될 수 있다.

 

특히 역사상 최초의 미스 그레나다인 제니퍼에게는 이 순간이 더 간절하다. 방송인이 꿈인 그녀는 미스월드를 차지해 아이들에게 꿈을 주고 싶다. 미의 기준은 새하얀 피부에 금발머리다. 그녀는 검은 머리에 구릿빛 피부를 지닌 흑인이다. 흑인도 미를 인정받을 수 있는 순간을 그녀는 맞이하고 싶다. 제니퍼 뿐만 아니라 미스월드에 모인 각국의 여성들은 모두 같은 생각이다. 이 대회를 통해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소망에 가까워지길 원한다.

 

▲ '미스비헤이비어' 스틸컷  © 판씨네마(주)

 

공부나 운동, 컴퓨터에 재능이 타고나는 사람처럼 그녀들이 타고난 재능은 미모다. 예술이 아름다운 미의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노력하는 거처럼 사람은 미를 사랑하고 숭배한다. 때문에 그녀들은 성 상품화라는 말 자체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하지만 제니퍼와 샐리의 만남을 통해 제니퍼가 한 가지는 동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성의 선택권 문제다. 제니퍼에게 미모는 자신을 알릴 수 있는 유일한 무기다.

 

그녀에게는 남성처럼 많은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여성이 미모로만 평가를 받는다면 선택권이 줄어들지 않을 까요’라는 샐리의 말에 동의한다. 여성을 편협한 시각에 가두면 남성이 허용하는 최소한의 자유 안에서만 가치를 인정받는다. 때문에 이 작품이 보여주는 미스월드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다소 섬뜩함을 준다.

 

▲ '미스비헤이비어' 스틸컷  © 판씨네마(주)

 

미스월드를 만드는 사람들

 

작품은 도입부에서 심사위원들이 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은 여성의 신체사이즈에 대한 기준을 말하고 어떤 여성이 아름다운지 그 미의 기준에 대해 설명한다. 이 모습은 대회에 참가하는 여성들이 심사위원의 기준과 성향에 따라 가치를 평가받음을 보여준다. 실상 ‘미’라는 건 객관적인 평가기준이 없다. 대중이 공통으로 느끼는 아름다움은 있지만 그걸 등급으로 판단하고 나누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미스월드는 실상 심사위원에 의해 만들어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은 여성의 외모나 지성, 아우라가 아닌 정치나 사회의 논법에 따라 우승자를 정한다. 70년대는 기성세대의 문화에 대해 반대를 외치는 목소리가 커지던 시대다. 이에 따라 미스월드 역시 기존의 미의 기준과는 다른 움직임을 보인다. 하얀 피부에 금발이라는 전형적인 기준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것이다.

 

▲ '미스비헤이비어' 스틸컷  © 판씨네마(주)

 

예술은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연출이나 연기도 작품에서 보인 모습에 따라 평가가 이뤄진다. 한데 미스월드는 그 사람 자체를 평가하는 대회다. 스포츠처럼 정해진 규칙이나 기록 없이 객관적인 평가를 말이다. 하지만 미스월드를 성 상품화로 규정하고 폐지를 주장한다면 객관적인 평가에 집중하는 모든 문제 역시 비슷한 딜레마에 직면한다. 여기에는 아이돌, 치어리더, 모델 같은 누군가에게는 꿈인 직종도 포함된다.

 

때문에 ‘미스비헤이비어’는 자유를 외치는 여성들, 미스월드를 꿈꾸는 여성들, 미스월드를 만드는 사람들의 시선을 모두 담아내며 폭넓은 담론의 장을 만든다. 비록 이 과정에서 응집력이 떨어지고 오락성을 줄 수 있는 요소가 배제되며 아쉬움을 남기지만 뻔할 것이라 여겼던 페미니즘 영화가 아닌 하나의 논쟁거리를 다양한 시선에서 바라보며 건전한 페미니즘 이슈를 이끌어낸다.

 

 

김준모 기자| rlqpsfkxm@cinerewi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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