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회의 어두운 뒷면, 왜 범죄자 커플에 열광하나

[리뷰] 영화 '하이웨이맨'

김준모 기자 | 기사입력 2019/04/23 [09:45]

미국 사회의 어두운 뒷면, 왜 범죄자 커플에 열광하나

[리뷰] 영화 '하이웨이맨'

김준모 기자 | 입력 : 2019/04/23 [09:45]

 

▲ '하이웨이맨' 포스터     © Casey Silver Productions



1960년대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1930년대 미국 사회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은행 강도 보니와 클라이드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젊은 청춘 남녀인 보니(페이 더너웨이)와 클라이드(워렌 비티)가 만나 연인이 되는 장면부터 두 사람이 차 안에서 다수의 경찰에게 총격을 당해 죽는 장면까지, 그들의 로맨스와 로망에 가슴이 뛰게 만드는 영화이다. 2019년,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영화 <하이웨이맨>은 그 반대편인 경찰의 편에 서서 이야기를 다룬다. 

  

1960~70년대 미국 영화계는 기존 가치관에 대한 반항, 파격을 다룬 작품들이 많이 등장했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물론 마피아의 이야기를 다룬 <대부>나 마약을 팔아 마련한 여비로 오토바이 여행을 떠나는 히피족의 이야기를 다룬 <이지 라이더>가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2019년에는 더욱 다양한 가치관들이 범람한다. 그 중에서는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상식적이지 못한 사상을 다루고, 이에 동조하는 이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 <하이웨이맨> 스틸컷.     © Casey Silver Productions



이 영화가 조명하는 보니와 클라이드는 잔혹하게 경찰을 사살하는 연쇄 살인범들이다. 이들 커플은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살인을 일삼는다. 미리암 퍼거슨 주지사는 경찰의 힘에 의존하지만 이들은 번번이 당하기 일쑤다. 이에 지금은 해체된 텍사스 레인저스를 동원하자는 의견이 등장한다. 텍사스 레인저스는 경찰과는 다른 개념의 집단이다. 인디언들의 땅을 총기로 빼앗으며 개척된 미국은 이후 범죄 문제를 총기로 해결하려 했다. 

  

텍사스 레인저스는 총기를 든 범죄자들이 출몰하던 혼돈의 시기에 이들을 처리하던 집단이다. 사회가 안정기에 접어들고 경찰이 치안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이들은 '보니와 클라이드'라는 잔악한 젊은 범죄자 커플의 등장에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된다. 텍사스 레인저스였던 프랭크 해머(케빈 코스트너)는 다른 총잡이들과 달리 부유하고 안정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프랭크는 자신에게 온 제의에 망설인다. 그는 늙었고 지금의 생활은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내면에 들끓는 열정과 본능이 그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프랭크는 보니와 클라이드를 잡기 위해 같은 텍사스 레인저스였던 동료 매니 골트(우디 해럴슨)를 찾아간다. 하지만 그가 손녀와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마음을 접는다. 매니 골트는 집 앞까지 찾아온 프랭크를 보고 반대로 그를 찾아간다. 정의감에 불타는 매니는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경찰을 잔인하게 사살하는 보니와 클라이드를 용서할 수 없고 그의 손으로 그들을 잡고자 한다. 이렇게 뭉친 왕년의 텍사스 레인저스는 젊은 두 범죄자를 잡기 위해 수사를 시작한다. 

  

<하이웨이맨>은 범죄영화가 주는 장르적인 쾌감이나 추격전에서 오는 스릴을 중점에 둔 작품이 아니다. 이 영화가 주목하는 건 현재와 과거를 통한 미국의 조명이다. 영화 속 시민들은 범죄자를 잡으려는 경찰의 노력은 보이지도 않는지 오히려 보니와 클라이드를 신격화시키며 그들에게 열광한다. 공권력에 잡히지 않고 오히려 경찰을 사살하는 두 젊은 범죄자에게 호감을 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현 미국 사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최근 미국 사회는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있어 도덕성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양새다. 심지어 범죄자의 팬을 자처하기도 한다. 머그샷(구금시 범인을 식별하기 위해 찍는 사진)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라 모델이 된 제레미 믹스가 대표적이다. 팬들은 그 사람이 과거에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그 잘못 때문에 누가 피해를 봤는지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

 

보니와 클라이드의 친구들은 물론 부모들 역시 '팔은 안으로 굽는' 모습을 보인다. 그들은 보니와 클라이드가 결국 붙잡혀 죄의 심판을 받는 게 옳은 결말이라 여기지만 두 사람을 연쇄살인범이나 악인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친구는 그들을 대단하다 말하고 그들의 아버지는 사회의 흐름 속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식으로 자식을 감싼다.

 

▲ <하이웨이맨> 스틸컷     © Casey Silver Productions



보니와 클라이드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이 현재와 맞물려 있다면 텍사스 레인저스를 바라보는 시선은 미국의 과거와 맞닿아 있다. 노년에 다다른 이들 두 사람은 젊은 시절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프랭크와 매니는 '정의'라는 이름으로 '학살'을 자행한 이들처럼 조명된다. 경찰이 이들에게 협조적이지 않은 이유는 자신들의 수사에 끼어들었다는 점도 있지만 이들이 과연 보니와 클라이드 같은 극악무도한 범죄자들과 무슨 차이가 있느냐는 의구심도 작용한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 장면 중 하나는 벤저민이 자신의 과거를 말하는 장면이다.

 

매니는 프랭크와의 재회에서 총잡이들의 말로에 대해 이야기한다. 총잡이의 최후는 둘 중 하나다. 총에 맞아 죽거나, 술에 절여 인생을 망치거나. 매니는 수많은 사람들을 정의라는 이름으로 죽여 왔고 그 심적인 고통은 술이 아니면 잊을 수 없을 만큼 끔찍했다. 이런 매니의 모습은 정의라는 이름으로 인디언을 학살한 미국의 피의 역사와 오버랩 된다. 이 지점에서 프랭크와 매니가 보니와 클라이드를 쫓는 이유는 단순한 임무가 아닌 두 사람의 가슴 아픈 과거를 조금이나마 덜어내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하이웨이맨>은 낭만과 카타르시스의 정서로 무장한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의 반대 편에 서서 그 이면에 담긴 피의 역사를 조명한다. 경찰과 범죄자의 심리전이나 범죄자를 쫓는 쾌감 대신 노년에 다다른 두 텍사스 레인저스와 범죄자를 대하는 시민과 그 주변인들의 모습을 통해 미국의 현재와 과거를 비춘다. 정의에 가려진 학살을, 개인의 감정에 가려진 옳고 그름의 문제를 담아낸 이 영화는 현재와 과거의 미국을 진중하게 엮어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씨네리와인드 김준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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