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 다시읽기|'운수 좋은 날'에 담긴 두려움과 불안

현진건 '운수 좋은 날'

김준모 | 기사승인 2020/05/22 [23:22]

한국문학 다시읽기|'운수 좋은 날'에 담긴 두려움과 불안

현진건 '운수 좋은 날'

김준모 | 입력 : 2020/05/22 [23:22]

▲ '운수 좋은 날' 표지  © 유페이퍼

 

[씨네리와인드|김준모 기자] 많은 분들이 동의하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작가에 대해 항상 하는 생각이 있다. 작가는 시대를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시대의 지식인에게는 그 시대를 책임지고 시대의 문제를 알릴 의무가 있다. 작가에게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도구는 글이다. 현진건은 그런 사명감을 지녔던 작가가 아닌가 싶다. 그는 일제 강점기 당시 우리 민족의 피폐한 삶을 그려낸 사실주의 문학의 대표이자 현실고발 작가였다.

 

그의 작품 ‘운수 좋은 날’은 역설적이다. 운수가 더럽게 나쁜 날을 ‘좋다’고 표현했다. 돈을 많이 벌어 아내가 먹고 싶어 하는 설렁탕을 사 가지고 온 날, 하필 아내가 죽었으니 정말 최악의 날이다. 그는 혼자 남은 아들을 길러야 되는 건 물론, 병이란 놈은 약을 주면 버릇이 나빠진다며 약도 제대로 못 먹게 한 죄책감에 시달려야 한다. 하지만 어찌 생각해 보면 이 날은 ‘정말’ 운수가 좋은 날이었을지 모른다.

 

인력거꾼은 일제 강점기 당시 도시에 사는 최하층이 하는 일이었다. 일제에 의해 농촌이 황폐화되었고 일을 찾아 도시로 몰려든 이들은 별다른 기술 없이 할 수 있는 인력거꾼으로 전락했다. 김첨지 역시 지긋한 가난에 시달린다. 그는 아내를 욕하며 약을 주면 병이 버릇이 나빠진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가난 때문에 약을 사지 못하는 처지를 거칠게 표현한 것이다. 김첨지는 오늘 날로 치자면 츤데레 캐릭터다.

 

그가 정말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설렁탕을 사지도, 눈물을 흘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는 아내를 사랑하지만 그 사랑을 거친 욕설로 표현한다. 욕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첫 번째는 상대를 기분 나쁘게 만들기 위해 하는 욕, 두 번째는 어떠한 사건이나 행동에 대해 순간적인 화를 참지 못해 내뱉는 욕, 세 번째는 답답하고 답 없는 현재를 바꿀 수 없기에 분풀이로 내뱉는 욕이다.

 

김첨지의 욕은 마지막에 해당된다. 그가 내뱉는 욕은 현실을 향한 욕이다. 인력거꾼의 삶에 희망은 없다. 그저 하루하루를 버틸 뿐이다. 어쩌면 이런 김첨지의 삶은 조선 말기를 연상시킨다. 당시 조선은 세도정치와 성리학에 몰두한 나머지 시대의 변화를 눈치 채지 못했다. 결국 시름시름 앓던 조선은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다. 그때도 국민들은 나라를 욕했을 것이고 그런 욕먹을 나라일지라도 사라졌다는 사실에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김첨지 아내에게 죽음은 운명처럼 보인다. 가난에는 불행이 따라온다. 가난할수록 범죄와 죽음에 노출된다. 그 운명을 아내는 조금 더 빨리 맞이했을 뿐이다. 이런 잔혹한 현실에서 김첨지에게 ‘운수’란 돈이라도 조금 더 버는, 그래서 설렁탕 같은 고기국물로 배라도 채우는 게 한계일지 모른다. 사람마다 주어진 운수란 게 있다면 김첨지에게는 돈이라도 많이 번 날이 가장 운수가 좋은 날일지 모른다.

 

운수는 인간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정해진 천운을 의미한다. 이 천운은 태어난 순간 결정된다. 첫 번째는 나란 사람이 지닌 기질이요, 두 번째는 내가 살아가야 할 시대다. 시대가 어둡고 암울하다면 운수는 작아진다. 조그마한 일에 ‘좋은’을 붙이고 손쓸 수 없는 불행이 일상처럼 다가온다. 사는 게 힘들다는 푸념은 매 시대마다 존재한다. 이는 결국 빈곤과 연결된다. 빈곤의 두려움은 재화가 한정되고 인간의 욕망이 사라지지 않는 한 영속된다.

 

오늘날에도 이 작품의 정서가 통용되는 건 운수와 욕에 대한 공감 때문이 아닌가 싶다. 빈곤은 운수를 작게 만들며 답답한 현실에 입은 분노 없는 욕을 내뱉는다. 설렁탕이 행복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건 누구나 같은 마음일 것이다. 돈이 없어 불행을 맞이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같다. 그런 두려움과 불안이 담겨 있기에 이 작품의 ‘운수 좋은 날’이란 표현은 여전히 어둡게 다가온다.

 

▲ 작가 현진건 



김준모 기자| rlqpsfkxm@cinerewi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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