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는 정해진 형태가 없다

<셰이프 오브 워터>가 비춘 소수자의 사랑

오정록 | 기사승인 2020/05/26 [16:30]

사랑에는 정해진 형태가 없다

<셰이프 오브 워터>가 비춘 소수자의 사랑

오정록 | 입력 : 2020/05/26 [16:30]

 

▲ '셰이프 오브 워터' 포스터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씨네리와인드|오정록 리뷰어] 
우리의 시선으로 타인의 사랑을 규정할 수 있을까. 자신도 모르게 편협한 사고로 벽을 쌓아올리고 있진 않았을까.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사랑을 다룬 영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셰이프 오브 워터’는 진실로 사랑하는 이들에게 방해요소는 없음을 보여준다영화는 소련과 미국이 대립하던 1960년대를 배경으로 삼았으며, 인종차별과 성차별이 만연했던 20세기 냉전시대가 만든 비극적인 모습을 통해 현재의 사회를 겨냥한다.

 

정부 비밀 연구기관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엘라이자는 말을 하지 못하는 언어장애인이다. 엘라이자는 정부에서 잡아온 비밀 실험체인 어인과 교감하기 시작하는데, 어인 역시 사람의 말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들은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인간은 음성언어를 통한 의사 표현이 가능하지만, 그것이 인간의 의미를 규정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리피스 감독이 보여줬듯 셔레이드를 통한 의미 표현은 음성언어보다 더 많은 감정을 전달한다. 실제로 영화의 주인공 엘라이자는 가장 많은 감정을 보여주는 등장인물이다. 그녀는 보쟁글스를 떠올리며 기쁘게 춤을 추고, 때로는 화난 표정을 지으며, 욕조에서 홀로 욕정을 표하기도 한다.

 

반면 엘라이자의 동료 젤다의 남편은 벙어리가 아님에도 말을 하지 않는다. 그는 젤다가 브루스터 소시지를 만들어줘도 고맙다거나 맛있다는 한마디 말없이 음식을 먹기만 한다. 영화는 말하지 못하는 엘라이자와 어인, 그리고 젤다와 그녀의 남편과의 관계를 대조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말할 필요 없는둘의 진실된 사랑을 부각한다.

 

셰이프 오브 워터의 등장인물들은 약자와 소수자의 모습을 대변한다. 어인은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약소 계층의 대표자이다.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한 것은 어인 뿐만이 아니다. 소련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자산이라 불리며 쇠사슬에 둘러싸인 어인의 모습은 자연스레 사람을 사람이 아닌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겼던 과거의 노예제도를 떠올리게 한다.

 

반면 군인 출신의 보안관 스트릭랜드는 1960년대 당시 주류 계층을 대표하는 인물로, 항상 지니는 소몰이 전기봉은 지배계층의 폭력과 억압을 상징한다. 그는 전기봉으로 어인을 학대하는데, 묶여서 고통에 호소하는 어인의 절규를 가장 끔찍한 소리라고 매도한다.

 

그 두 다리로 서있는 생명체가 사람처럼 보일 수 있겠지. 하지만 우리는 신의 모습을 본떠서 만들어졌어.”는 대사는 그릇된 우월주의가 그렇듯 어인과 인간과의 선을 긋는다. 연이어 흑인 여성 직원인 젤다를 보며 그래도 신의 모습이 그쪽보다는 자신에게 가까울 것이라 말함으로써 주류 계층인 자신의 위치를 수호하고 있다.

 

그러나 영화는 그의 허상을 끌어내린다. 폭력과 권위를 내세우던 스트릭랜드는 자신보다 더 큰 권력인 호이트 장군 앞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존재이다. 또한 어인을 괴롭히다 물려 손가락이 절단된 그는 손가락 봉합수술을 통해 자신의 결함을 감추고자 하는데, 자신이 무시해왔던 소수자인 장애인이 되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불완전한 손가락을 감추며 지내온 그의 손가락은 결국 검게 썩어들어간다. 스트릭랜드의 인지 부조화는 영화 속에서 더욱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청소부인 엘라이자와 젤다를 오줌닦개·똥닦개라 부르지만, 그것은 자신이 오줌 줄기 하나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녹색을 싫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정작 새롭게 구매한 캐딜락과 자신이 읽고 있는 책의 표지는 녹색으로 칠해져 있다. 영화는 이렇게 한마디의 설명 없이 그가 타인들을 깔보며 느끼는 우월감이 헛된 것임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엘라이자의 이웃이자 친구인 화가 자일스는 가족 없이 홀로 지내는 동성애자이다. 파이 가게 남성 주인에게 다가가기 위해 맛없는 파이를 계속 사러 가는 그는 사회문제를 외면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자일스는 영화 초반 TV에서 흑인들이 시위하는 모습을 조명할 때, 그는 이런 광경을 보고 싶지 않다며 채널을 돌린다. 또한, 엘라이자가 어인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도 그는 별다른 감흥 없이 그녀의 말을 시큰둥하게 듣는다. 이런 그가 사람으로 인식하지도 않는 어인의 권리를 위해 어인을 연구기관에서 탈출시키자는 엘라이자의 요청을 들어줄 리 없었다. 그에게는 자신의 사회생활을 위해 그림을 그려 회사에 제출해야 했고, 파이 가게 주인의 마음을 사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TV 채널을 돌린다고 해서 현실에 존재하던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고, 외면했던 문제는 결국 자신에게 돌아온다. 자일스는 해고된 회사에 복귀하기 위해 엄마, 아빠, 자식들로 이루어진 4인 가족이 빨간색 파이를 먹는 그림을 그린다. 하지만 회사는 파이의 색깔을 녹색으로 바꾸길 원하고 그림 속 인물들이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며 거절당하는데, 동성애자로 홀로 살아오며 맛없는 파이를 먹어온 그는 그림 속 인물들의 행복을 그려낼 수 없었다. 파이의 색이 무엇이든 간에 회사가 원하는 사회를 담아낼 수 없는 그는 사회에서 외면당하고 만다. 이후 파이 가게의 주인이 자신에게 관심을 보인다고 생각한 자일스는 파이 가게로 향해 자신의 마음을 전하지만, 돌아온 것은 단순한 거절을 넘어서 혐오에 가까운 반응이었다. 흑인 인권문제를 외면했던 그는 결국 가족레스토랑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파이 가게 주인에게 흑인 커플과 함께 출입을 거절당한다. 문제를 외면해오다 사회에서 외면당하고야 만 그는 결국 자신의 친구인 엘라이자에게 돌아와 어인을 탈출시키는 계획에 동참한다.

 

영화는 소수자의 이야기뿐 아니라 냉전시대 국가주의의 한계를 비판하기도 한다. 연구기관의 과학자 로버트 호프스태들러 박사는 사실 미국의 연구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소련에서 보낸 스파이이다. 엘라이자와 어인이 진심으로 소통하고 교감할 수 있다는 것을 본 그는 어인을 하나의 지성인으로 인정하고, 어인을 해부하려는 의견에 반대한다. 하지만 어인을 인간이 아닌 과학발전의 수단으로 본 미국은 그의 의견을 묵살하고, 조국인 소련 역시 어인의 권리가 아닌 단지 미국이 소련을 추월하게 두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어인을 사살할 것을 명한다. 국가의 소속원이기 이전에 한 명의 사람으로서 인권을 지키고자 하는 그의 의견은 두 강대국의 대결 속에 처참하게 무시당한다.

 

동화가 상상력이 가득한 이야기로 아이들의 사고력을 키워주듯, 셰이프 오브 워터는 어른들의 사고를 깨워주는 한편의 판타지 성인동화이다. 다르게 태어난 것을 틀린 것으로 만들었던 사회가 남긴 이데올로기는 21세기인 지금에도 여전히 잔재해있다. 물을 둥근 머그컵에 담으면 타원의 모습을 띄지만 우유갑에 담으면 직육면체가 되고 얼리면 얼음이, 증발하면 수증기가 된다. 우리가 물의 형태를 규정할 수 없듯, 사랑의 형태 역시 규정할 수 없고 규정할 필요도 없다. 사랑이 담기지 않는 용기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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