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일 종족주의’를 반박하다

[서평] 호사카 유지 '신친일파'

김준모 | 기사승인 2020/05/27 [10:18]

‘반일 종족주의’를 반박하다

[서평] 호사카 유지 '신친일파'

김준모 | 입력 : 2020/05/27 [10:18]

▲ '신친일파' 표지  © 봄이아트북스

 

[씨네리와인드|김준모 기자] 2019년, 한 권의 책이 베스트셀러에 등극하며 사회적인 이슈가 되었다.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와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을 비롯한 이들이 저술한 ‘반일 종족주의’는 한국의 반일정서가 종족주의 때문이며, 이는 아무런 사실적 근거 없이 거짓말로 쌓아올린 샤머니즘적 세계관 때문이란 주장을 펼친다.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한국인은 종교적인 믿음으로 반일을 외치는 민족이란 것이다.

 

가만, 이 주장. 어디서 많이 들어보지 않았나. 한국인은 미개한 종족이고 우리가 근대화를 시켰다는 일본 우익 인사들의 주장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신친일파’의 목적은 분명하다. 새로운 친일파에 대한 경각심을 주고 ‘반일 종족주의’의 잘못된 내용을 반박하고자 한다. 다소 아이러니한 점은 우리 민족에게 노예근성이 있어 반일을 한다는 글을 쓴 이영훈 교수가 한국인인 반면 이를 반박하는 이가 일본인인 세종대교수 호사카 유지라는 점이다.

 

그들은 왜 ‘반일 종족주의’를 외쳤나

 

‘반일 종족주의’는 신조어 아닌 신조어다. 이 단어는 우리사회의 반일이 교육에 의해 이뤄진 것이며 그 교육은 거짓에서 비롯된 것이라 말한다. 한국 사회에 거짓말 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하는 이 책은 이득을 위해서라면 거짓말을 서슴지 않는 한국의 문화가 자국의 이익을 생각해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고 이에 노예근성을 지닌 국민들이 가세한다는 점이다. 노예근성은 자본주의에 기인하고, 거짓말을 하는 이들은 돈을 벌기 위해 이 노예근성을 이용한다 말한다.

 

때문에 한국인의 반일은 노예근성을 가진 종족에서 비롯되며 과거 샤머니즘부터 이어져 온 종교적인 맹신과 무조건적인 추종이 반일 감정을 이끌었다 말한다. 이 주장은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한 일본 우익 인사들과 다를 바가 없다. ‘한국인은 미개하고 멍청하기에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이와 비슷한 주장을 한 또 다른 단체가 있으니 바로 일간베스트, 일베다.

 

보수정권 당시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했는데 이 말 뜻은 대한민국이 경제적으로 어려워 살기 힘들다는 소리다. 그러면 나라를 바꿀 생각을 해야 하는 게 정상이다. 한데 일베는 ‘어차피 이 나라 민족은 희망이 없다. 한국인에게는 독재가 어울린다’며 민족성 자체를 저열하게 평했다. ‘반일 종족주의’는 우리 민족이 노예근성을 타고났으며 거짓을 진실로 우기는 부끄러운 민족이라 말한다.

 

자본주주의 노예근성을 드러낸 강제징용

 

이에 대해 호사카 유지 교수는 노예근성을 보여주는 건 오히려 강제징용이라 말한다. ‘반일 종족주의’는 강제징용에 대해 일본이 합당한 보수를 지급했으며 당시 탄광에서 일했던 조선인과 일본인에 대한 차별은 없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당시 일본인은 젊은층의 대다수가 군에 동원됐기에 노년층이 탄광을 향했고 당연히 젊은층에 속하는 조선인들이 더 극심한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더구나 일본에서 탄광 일은 아무도 하지 않으려 했기에 죄수에게 대신 일을 시키던, 죄수도 견디다 못해 폭동을 일으켰던 그런 일이다. 당시 조선인과 일본인은 임금의 비중이 달랐다. 조선인은 경비의 대부분을 자가 부담해야 했고 강제로 보험에 들어야 했다. 문제는 월급에서 이 보험의 비중이 일본인과 달리 엄청났는데, 극심한 노동과 구타를 견디지 못한 조선인 대부분이 도주하거나 사망했기 때문에 보험금 지급의 의무가 없었다.

 

호사카 유지 교수는 이런 일본의 행동이야 말로 자본주의에 근간을 둔 노예근성이라 말한다. 돈의 노예가 되어 사람을 쓰고 버리는 도구처럼 이용한 것이다. 호사카 유지 교수는 이런 어설픈 주장이 먹히는 이유에 대해 거짓은 진실 사이에 존재함을 말한다. 팩트를 제시하면서 교묘하게 몇 가지 사실을 바꿔 왜곡된 정보를 전달하는 게 거짓이다. 처음부터 탄광 일은 죄수가 했던 일이기에 사람이 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위안부는 ‘일본이 만든 것’이다

 

‘반일 종족주의’의 위안부 역사 왜곡은 교묘하다. 그들은 위안부의 역사가 조선시대 기생 등 매춘의 역사에서 시작되었다 말한다. 매춘 사업 종사자들이 전쟁에 동원되었으며, 이들 여성은 자발적 또는 가부장 사회에 의해 팔려갔다는 게 주장이다. 여기에 위안부는 당시 군 장병과 어울렸고 많은 돈을 모았다며 노예가 어떻게 자유롭고 돈을 모을 수 있느냐며 반박한다. 여기에 위안부라는 단어가 당시 매춘부를 지칭하는 단어로 쓰였다는 점을 지적한다.

 

사실 이 주장에 대해 호사카 유지 교수가 굳이 긴 시간을 들여 반박을 해야 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하다. 이미 위안부에 대한 자료는 널리 퍼져 있으며 ‘주전장’이라는 잘 만든 위안부 관련 다큐멘터리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반일 종족주의’가 이것저것 위안부의 강제성을 부인했으니 이에 대해 반박해줘야 하는 게 도리다. 이 책의 목적은 우리 민족을 ‘반일 종족주의’로 만든 주장을 부정하는 거니까.

 

이런 주장에 대한 부정은 국내의 위안부 할머니들의 주장뿐만 아니라 당시 일본 참전 군인들이 남긴 기록을 통해서도 말이 안 되는 주장임을 알 수 있다. 당시 일본은 법적으로 매춘 나이가 성인이 되지 않으면 불가함에도 불구하고 10대 청소년을 위안부로 끌고 왔다. 속았다고 증언하는 사람들의 수와 당시 일본 종군기자 역시 초등학교 교사가 속아서 끌려왔다는 내용의 글을 쓴 적 있다.

 

일반적인 여성들도 위안부에 동원되었다는 점에서 매춘사업이 위안부로 이어졌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또 당시 위안부 여성들은 최전방까지 배치되었다. 목숨을 위협받는 일에 돈을 번다는 이유로 자발적으로 나서는 여성이 몇이나 되겠는가. 또 위안부는 1년마다 계약을 맺었지만 강제성을 띈 계약이란 점에서 자발적이란 말은 맞지 않다. 심지어 위안부였다 결혼을 한 여성이 군의 명령으로 다시 위안부가 된 기록도 있다.

 

이런 기록에도 불구 위안부 생활이 자유로웠다는 걸 말이 맞지 않는다. 돈을 많이 벌었다는 주장 역시 당시 화폐가치가 폭락했다는 점에서 성립하지 않는다. 또 위안부 여성들에게 돈은 노예계약의 일종이었다. 가족에게 돈을 전하고 그 돈을 이유로 강제로 위안부가 될 것을 강요한 것이다. 여기에 일본군에 의해 살해당한 위안부의 이야기는 계약관계라기 보다는 강압성을 지녔다고 보는 편이 맞다.

 

위안부 문제는 UN이 주목한 문제이며 전 세계적으로 전쟁 성범죄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가 높을 때에 명확한 증거와 증인이 있는 문제다. 그동안 한국의 가부장적 사회 때문에 위안부 할머니들이 목소리를 높이지 못해 그 주장이 늦게 힘을 냈을 뿐, 시간이 지난다고 진실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또 1965년의 한일협정으로 위안부에 대해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은 개인이 지닌 청구권의 말소를 의미하는 게 아니기에 어불성설이다.

 

최근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상임대표의 위안부 사유화 문제로 정치권이 시끄럽다. 개인적으로 이 문제에서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이 기억에 남는다. ‘한국과 일본의 젊은 학생들이 함께 역사를 공부해야 한다’는 주장은 위안부 문제를 과거로 두지 말고 미래로 바라봐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는 호사카 유지 교수가 왜 ‘신친일파’를 경계해야 하는지에 대한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왜 ‘신친일파’를 경계해야 하는가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는 미래다. 우리는 항상 내일을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러기에 미래를 그린다. 이전까지 우리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과와 배상만을 생각했을 뿐 이용수 할머니처럼 일본의 젊은층과 함께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까지 미치지 못했다. 이는 친일파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이제 친일파는 없고, 일본이 다시는 우리를 침략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반일 종족주의’ 같은 책이 다시 나온다면 우리 내부가 흔들린다.

 

우리가 흔들리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지식의 부족이다. 호사카 유지 교수는 방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반일 종족주의’의 잘못된 정보를 하나하나 수정한다. 그는 이 책으로 끝나지 않고 다음 책도 준비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보면서 3번째 파트인 ‘독도’ 부분에서 이 부족함을 느낄 수 있었다. 독도는 우리 영토임에도 불구 일본에 의해 분쟁지역이 될 위기가 존재하는 섬이다.

 

독도가 이렇게 된 데에는 무지함에 있다. 독립 후 미군은 영토 문제로 한국에 지역에 대해 물어봤는데, 이때 공무원 중 하나가 독도에 대해 잘못 설명하면서 이런 사태까지 오고야 말았다.(다만 이 책에서도 그 공무원이 누구인지, 왜 그렇게 설명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기에 ‘그랬다고 한다’ 정도의 설명에 머무른다) 우리는 독도에 대해 배우지만 그 역사를 자세하게 배우지 않는다.

 

혹 일본 학생이 우리 학생보다 독도에 대해 많은 지식을 알고 있다면 미래에 독도 문제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지식의 부족은 상대의 말에 현혹되며 진실에 교묘하게 섞은 거짓에 넘어갈 수 있게 만드니 말이다. 두 번째는 진영논리다. 다양성의 시대가 지닌 단점 중 하나는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을 수 있는 세상이 도래했단 점이다. 자신과 같은 뜻을 지닌 이들이 많을수록 양쪽을 바라보는 시선은 사라진다.

 

‘내 편만 맞다’는 논리는 그 어떤 진실도 보이지 않게 만든다. 진실의 중요한 점은 그 자체가 아니라 상대를 이해시키는 것이다. 상대가 이해하지 못하는 진실은 비록 참이라 할지라도 거짓이 된다. 때문에 우리는 우리만 진실을 알고자 노력하는 게 아닌 일본 학생과 함께 진실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일본의 혐한 역시 이런 무지와 진영논리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이 우리에게 오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1993년, 일본의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한 관방장관 고노 요헤이의 ‘고노 담화’ 이후 일본 자민당은 38년 만에 여당에서 야당이 되고 만다. 자민당의 혐한은 권력을 잡기 위한 진영논리며, 정치에 무관심한 일본 국민들의 지지를 받기 위한 전략이다. 우리나라의 뉴라이트 역시 진보정권 하에서 등장했으며 이들의 주장은 극우층의 지지를 받았다. 진실은 하나지만 이를 해석하는 입은 여러 개다. 때문에 정확한 진실을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호사카 유지 교수는 이전부터 신친일파에 대해 경고했다. 세계적인 경제대국 일본의 자본이 국내에도 깊숙이 침투해 있으며 일본 극우의 주장을 대변하는 이들이 등장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신친일파의 주장이 얼마나 일본 극우와 유사하고 그들보다 더 일본의 편에 서서 입장을 대변하는지 보여준다. 작년 최고의 논쟁이었던 작품을 반박하는 책이자 올해 최고의 논쟁을 이끌어낼 작품이 아닌가 싶다. 

 

 

김준모 기자| rlqpsfkxm@cinerewi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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