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주년 디럭스 에디션으로 돌아온 그래픽 노블의 명작

[서평] 그래픽 노블, '브이 포 벤데타'

김준모 | 기사승인 2020/06/01 [11:16]

30주년 디럭스 에디션으로 돌아온 그래픽 노블의 명작

[서평] 그래픽 노블, '브이 포 벤데타'

김준모 | 입력 : 2020/06/01 [11:16]

▲ '브이 포 벤데타' 표지  © 시공사

 

[씨네리와인드|김준모 기자] ‘배트맨’ ‘왓치맨’ ‘젠틀맨 리그’ ‘프롬 헬’ 등 만화가 앨런 무이의 작품세계는 흥미를 자극하는 스토리텔링으로 여전히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의 작품들이 할리우드에서 다수 영화화 되었다는 점은 극이 지닌 완성도는 물론 비주얼적인 측면에서 눈을 사로잡는 매력을 보여준다. 2005년 영화화 된 ‘브이 포 벤데타’ 역시 마찬가지다. 시대를 앞서갔다는 평가를 받는 이 작품은 무려 1988년 처음 연재되었다.

 

2018년 미국에서 출간된 탄생 30주년 기념 디럭스 에디션은 2년의 세월이 지난 후에 국내 독자들과 만나게 됐다. 2009년 국내에 소개됐던 기존 도서의 번역을 다듬었고 앨런 무어와 데이비드 로이드가 쓴 서문이 추가됐다. 무엇보다 ‘브이 포 벤데타’를 잊지 못하는 매니아들에게 작품의 세계를 더 깊게 파고들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을 선사한다.

 

▲ '브이 포 벤데타' 본문  © 시공사

 

뉴스를 꺼버리지 않은 이들을 위해

 

앨런 무이와 함께 ‘브이 포 벤데타’를 협업한 데이비드 로이드는 ‘뉴스를 꺼버리지 않은 이들을 위해’ 이 작품을 바친다고 서문에서 밝힌다. 앨런 무이는 작품을 쓸 당시 영국의 미래를 그나마 가장 현실적으로 예측한 작품을 만든 이는 자신과 데이비드 로이드라고 말한다. 80년대 당시, 대체 영국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기에 ‘브이 포 벤데타’는 97~98년 사이 미래의 영국을 그려낸 걸까.

 

70년대 접어들면서 영국사회는 경제위기에 직면한다. ‘영국병’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만큼 말이다. 당시 영국은 케인즈주의에 입각한 큰 정부 형태였고 복잡한 정부규제와 무거운 세금으로 기업의 활동은 위축된 반면, 노동자에 대한 복지에는 신경을 썼다. 때문에 일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으면서, 세금은 많이 내고 일자리는 없는 영국병이 탄생한 것이다. 영국에는 새로운 인물이 필요했고 그 인물이 ‘철의 여인’이라 불리는 마거릿 대처였다.

 

영국 총리가 된 대처는 “대안은 없다”는 말로 영국을 바꿔 놨다. 신자유주의 노선을 타며 법인세를 줄이고 각종 규제를 철폐했다. 민영화를 확대하고 노조의 세력을 약화시키며 노동 유연성을 늘린 대처의 정책은 영국을 오늘날의 금융 강국으로 만드는데 이바지했다. 하지만 대처 정권 후반기로 갈수록 그 부작용이 드러났다. 서민들의 삶이 너무 팍팍해진 것이다. 실업률과 무주택자 비율은 증가했으며 집권 말기에는 경제지표가 일제히 하락세를 기록했다.

 

작품은 당시 대처 정권의 분위기를 파시즘과 연결시킨다. 대처 총리 당시의 대처리즘은 국민을 강하게 통제했다. 당시 아일랜드에는 두 가지 법이 존재하며, 그중 하나가 비밀리에 아일랜드를 감시하고 탄압한 대처의 법이라는 게 이를 증명한다. 하지만 먹고 살기 힘든 팍팍한 삶속에서도 대처 총리가 총선 3연패를 기록할 수 있었던 건 ‘적어도 빵은 먹고 살게 해준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빵과 함께 장미를 주장하는 낭만

 

파시즘의 두려운 점은 집단에 의해 개인이 통제받는다는 것이다. ‘브이 포 벤데타’의 세계관은 조지 오웰의 ‘1984’를 보는 듯하다. 정부는 눈, 코, 귀라 불리는 기관을 통해 국민을 통제한다. 눈은 사방에 깔린 CCTV고, 코는 냄새를 맞는 정보 분석 기관이며, 귀는 도청기관이다. 여기에 ‘손’이라는 기관의 경찰들이 반정부 체제를 조장하거나 반역을 일삼는 이들을 처단한다. 하지만 이런 감시가 심한 국가체제에서 반정부 체제를 조장하긴 힘든 일이다.

 

때문에 손은 국가기관의 수족이자 어둠의 세계에서 범죄를 주도한다.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소녀 에비는 처음 몸을 파는 날 비밀경찰에 붙잡히고 죽을 위기에 처한다. 이때 나타난 브이(V)는 경찰을 죽이고 에비를 구한다. 브이는 기존 히어로물의 히어로들과 다른 면모를 보인다. 그는 모든 예술이 금지된 시대에 남은 유일한 로맨티시스트이자 철학자다. 그는 인간이 아닌 ‘구원자’와 같은 모습을 보인다.

 

작품이 그려낸 미래의 영국인 레이 브래드베리의 ‘화씨 451’과 같은 디스토피아다. 여기서는 책과 영화, 음악 등 모든 예술은 허용되지 않으며 정부의 선전용 라디오와 TV방송만이 전파를 탄다. 방송은 국민을 세뇌시키며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잃게 만든다. 국민이 정부에 대항하지 못하는 건 그나마 지금의 정부 때문에 밥이라도 먹고 살 수 있는 국가의 형태가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가상의 영국은 2차 대전 후 핵전쟁으로 인해 산업시설이 망가졌고 식량문제를 겪음을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 대다수는 폭도로 변해버렸고, 오직 생존만이 삶의 목적이 되어버렸다. 이에 그때까지 살아남은 대기업과 일부 파시스트들이 협력해 국가를 안정화시킨다. 안정에 필요한 건 시선을 돌리는 것이다. 모두에게 빵을 지급하는 게 아닌 소수자를 때려잡으며 너희는 선택받았다는 안도를 준다.

 

흑인, 동성애자, 장애인 같은 소수자들은 국가권력에 의해 제거 당한다. 살아남은 이들은 오직 빵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살아간다. 브이는 이들에게 말한다. 빵과 함께 주어져야 하는 건 장미라고. 그는 낭만과 사상 그리고 자유를 잃어버린 영국을 바꾸고자 한다. 그는 그저 이름뿐인 정의의 여신상에게 이별을 고하며 말한다. 새 연인인 아나키가 생겼다고. 그는 아나키스트를 자처한다.

 

▲ '브이 포 벤데타' 본문  © 시공사

 

현학적인 대사와 철학을 품은 영웅, 브이(V)의 매력

 

브이(V)는 어두운 DC코믹스의 매력을 보여준다. 마치 ‘배트맨’의 고담시처럼 암울한 가상의 영국을 배경으로 정부를 전복시키고자 한다. 그에게는 커다란 계획이 있고 이를 실현시킬 힘이 있다. 그는 갑자기 능력이 생기거나 눈앞에 지닌 위기를 막는데 혼신을 다하는 코믹스의 히어로들과 다른 모습을 보인다. 그는 실행자이자 계획자이다. 능력과 머리를 동시에 겸비하며 철학적으로 깊이가 있다.

 

때문에 예술작품에서 가져온 그의 대사는 하나하나가 현학적이며 이해하기 어렵다. 다만 이 대사를 통해 브이가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으며, 그가 과거 실험의 대상이 되었다 탈출한 후 어떤 생각으로 미래를 그려왔는지 알 수 있다. 이런 브이의 모습은 폭력의 시대, 낭만을 꿈꾸는 로맨티시스트의 면모를 과시한다. 가면에 가려진 얼굴과 에비에게 보이는 애정, 마치 신처럼 구원과 죽음을 반복하는 모습은 인간이 아닌 신의 영역에 가깝다.

 

보통의 히어로물이 한 개인인 히어로가 끊임없는 고민과 상호작용으로 성장하는 반면, 브이는 모든 미래의 상황을 만들어둔 뒤 때에 맞춰 실행한다. 그는 이 도시를 해방시키는 건 물론 에비로 하여금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할 계획도 마련한다. 무엇보다 신의 영역에 도달했지만 한 명의 인간이기에, 자신은 특별해질 수 없다는 그의 의식이 드러난 결말은 낭만적인 영웅의 진면목을 선보인다.

 

스페셜 커버부터 탄생 비화까지.. 30주년 디럭스 에디션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 열광한 이들에게 이 원작은 더 큰 감명을 줄 것이다. 영화에서는 다 담아낼 수 없었던 사상과 철학이 담겨 있으며, 브이의 진정한 매력을 맛볼 수 있다. 왜 영화의 배경이 97~8년 영국이 되어야 했는지, 당시 전문가들이 예측한 영국의 미래가 어땠는지, 이를 통해 우리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을 선사한다. 여기에 30주년 디럭스 에디션만이 지닌 특별한 선물이 준비되어 있다.

 

앞서 소개한 서문은 앨런 무이와 데이비드 로이드가 당시 어떤 생각을 지녔고, 왜 이런 상상력을 펼쳤는지 알 수 있다. 여기에 무어가 쓴 ‘브이: 그려진 미소의 이면’은 작품 탄생의 비화를 다루며 호기심을 자극한다. 두 만화가는 여태까지 독자들과의 만남에서 ‘작품의 영감을 어디에서 얻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답한 적이 없다고 한다. 시크하게 질문을 넘겼던 그들은 이번 기회를 통해 그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여기에 로이드가 해설한 스케치북 섹션은 어떤 과정을 거쳐 ‘브이 포 벤데타’가 탄생했는지 보여준다. 만화가의 고민이라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연재 당시 선보인 표지와 작화 역시 매력 포인트이며 초판 1쇄에 한정해 선보이는 실크 코팅과 UV가공이 들어간 스페셜 커버는 소장 욕구를 자극한다.

 

 

김준모 기자| rlqpsfkxm@cinerewi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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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모
씨네리와인드 기획취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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