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이 형제, 그들이 표현하는 퍼핏 애니메이션의 세계 |21th JEONJU IFF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악어의 거리' '해부실의 남과 여' / 연출 퀘이 형제

김준모 | 기사승인 2020/06/02 [13:02]

퀘이 형제, 그들이 표현하는 퍼핏 애니메이션의 세계 |21th JEONJU IFF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악어의 거리' '해부실의 남과 여' / 연출 퀘이 형제

김준모 | 입력 : 2020/06/02 [13:02]

▲ 'Phantom Museums–The Short Films of the Quay Brothers'의 퀘이 형제 

 

[씨네리와인드|김준모 기자] 현대미술에 대해 지니는 편견 중 하나가 어렵다는 점이다. 단순해 보이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기이하게 표현된 현대미술은 그 해석에 있어 복잡하고 까다로울 것만 같다. 하지만 작품의 해석이 더 힘들었던 시기는 오히려 중세와 근대의 미술이다. 영화 ‘고흐, 영원의 문에서’를 보면 고흐의 미술은 인정받지 못한다. 당시 주류 미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틀에 박히고 어려웠던 건 현대가 아닌 과거다.

 

현대미술은 해석에 있어 자유롭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등장은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렸고 다양성을 가져왔다. 이해하기 힘들고 복잡해 보이지만 그 속에서 자신만의 감상과 해석을 찾는 게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예술이다. 만약 실험 영화를 보기 힘들다면 이런 생각을 지니면 된다. 실험 영화는 ‘무엇을 들려줄 것인가’가 아닌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를 우선으로 한다. 메시지보다는 그 표현법에 중점을 둔 것이다.

 

실험 영화는 클리셰에서 자유롭다. 상업영화가 메시지와 익숙한 감정을 중점에 두기에 필수적으로 클리셰를 따르는 반면, 실험 영화는 표현을 통한 낯선 느낌과 색다른 감정을 주고자해 같은 주제라도 다른 표현을 선보인다.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꾸준히 소개되어 온 퀘이 형제의 작품 세계는 음산하고도 기괴하다. 체코의 영화감독 얀 슈반크마예르의 영향을 받은 그들은 이번 영화제의 포스터에 작품 ‘악어의 거리’의 스틸컷이 선정되었을 만큼 잊히지 않는 이미지를 선보인다.

 

▲ '악어의 거리' 스틸컷  ©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는 프로그램으로 ‘퀘이 형제: 퍼핏 애니메이션의 거장’을 준비한 건 물론 전시회 ‘퀘이 형제: 도미토리움으로의 초대’를 통해 그들의 예술세계를 알리고자 한다. 얀 슈반크마예르, 루이스 브뉘엘 등을 통해 초현실주의와 독일 표현주의, 동유럽 문학에 영향을 받은 그들의 예술세계는 이해보다 감상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그들이 만든 퍼핏과 다양한 물건들, 작업에 영감을 주거나 시나리오를 대신하기도 하는 음악은 마치 꿈을 꾸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들의 첫 작품이자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악어의 거리’는 폴란드의 작가 브루노 슐츠의 단편을 원작으로 한다. 브루노 슐츠가 ‘폴란드의 카프카’라고 불린다는 점에서 이 원작 역시 이해하기 쉬운 작품이 아님을 인지하게 만든다. 박물관 큐레이터가 오래된 상자 안으로 침을 떨어뜨리자 상자 속에 잠들어 있던 인형이 깨어난다. 큐레이터가 가위로 인형의 실을 자르면서 자유를 획득한 인형은 지하 세계로 들어간다.

 

이때 큐레이터는 사람이고 인형은 남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인형이 향한 지하 세계에는 아기 인형의 모습을 한 이들이 있다. 똑같은 생김새를 한 그들은 인형의 모습을 바꾼다. 머리를 자르고 심장을 꺼낸다. 그리고 인형은 다른 아기 인형들과 같은 모습으로 바뀐다. 이는 다양성이 사라진 현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큐레이터가 이 영상을 상영한다는 점에서 앵무새와 같은 매스컴을 향한 비판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내용이나 주제의식보다 더 눈길을 끄는 건 표현이다. 인형극이 지닌 한계는 절단과 결합을 통해 충격적인 영상을 선보이며, 지하 세계가 지닌 어둡고 음습한 기운은 음침한 분위기를 형상화한다. 상업적인 퍼핏 애니메이션이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기발한 상황설정을 통해 즐거움을 준다면, 이 작품은 뇌와 눈이 없는 아기의 얼굴을 한 인형들이 자신과 같은 모습의 인형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충격과 생소함을 선사한다.

 

▲ '해부실의 남과 여' 스틸컷  ©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퀘이 형제의 상상력은 사물을 다르게 보는 시점에서 비롯된다. ‘인간’을 생각할 때 남자나 여자, 어떠한 배우나 주변 인물의 얼굴을 떠올리는 게 일반적인 반면 퀘이 형제는 어떤 물건을 조합해서 특정한 이미지를 지닌 인간을 생각해 낸다. ‘악어의 거리’가 인형을 내세운 퍼핏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에서 서사의 전개가 이해할 수 있게 전개되는 반면 ‘해부실의 남과 여’는 제목이 말하는 ‘남과 여’조차 알아보기 힘들만큼 표현에 있어 혁신적이다.

 

작품은 선을 통해 캐릭터를 표현한다. 그 대상이 사람이란 건 알지만 성별을 구분할 수 있을 만큼 명확하지 않다. 해부를 소재로 했다지만 그 표현이 해부인지 의문이 들게 만든다. 로코코 화가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회화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이 작품은 제목을 통해 어떤 느낌을 유도했는지 대략적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작품의 공간은 다소 답답하다. 비슷한 장면을 연달아 보여주며 흔들리는 화면을 통해 어딘가 갇혀있단 느낌을 준다.

 

그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행위는 해부다. 그 해부가 인간을 향한다는 점에서 시스템의 통제 안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드러낼 수밖에 없는 인간의 무력함을 조명한다. 이 무력함을 선을 통해 표현했단 점은 다소 독특하다. 선은 수직과 수평을 이룬다. 수평은 같은 운명(해부)에 처한 남녀, 수직은 해부실 박사와 해부를 앞둔 남녀의 관계를 보여주는 듯하다. 이 작품 역시 기괴한 표현과 음산한 분위기로 몰입을 선사한다.

 

퀘이 형제의 영화는 이미지를 통해 강한 인상을 준다. 그들의 실험은 기존 표현에서 탈피해 새로운 형태를 만드는데 집중한다. 표현 하나하나에 담긴 뜻을 해석하기 보다는 이들의 표현이 주고자 하는 인상과 감정에 집중한다면 더 깊은 몰입을 느낄 것이다. 시각과 함께 집중해야 하는 건 청각이다. 음악에서 많은 영감을 받는 퀘이 형제인 만큼 음악을 통해 분위기와 흐름에 더욱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한다. 

 

 

김준모 기자| rlqpsfkxm@cinerewi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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