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여, 주저말고 너를 사랑해주는 사람에게로 떠나라

다르덴 형제의 <자전거 탄 소년>

유지민 | 기사입력 2019/04/24 [10:30]

그대여, 주저말고 너를 사랑해주는 사람에게로 떠나라

다르덴 형제의 <자전거 탄 소년>

유지민 | 입력 : 2019/04/24 [10:30]

 

▲ 영화 '자전거 탄 소년' 포스터     © 네이버 영화

 

한 때 <아프니까 청춘이다> 라는 책이 한국 사회를 강타한 적이 있다. 책의 주제는 ‘청춘은 아프고 괴로워하며 성장해 나간다.’ 는 무엇인가 이해하기 조금 어려운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 내용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는지 2013년의 한국은 너도 나도 ‘아픈 청춘’이 되었고, 이는 현재 87세대라 불리우는 그들의 영웅신화담을 위한 명분으로 쓰이기도 했다. 같은 맥락으로 우리 사회는 ‘성장통’ 이란 개념도 아주 쉽게 다룬다. 키가 크기 전 다리에 통증이 오는 신체 현상을 개인이 마음 속 통증을 통해 성숙해짐에 비유한 이것은 사실상 위험한 발상이다. 이는 각자가 겪은 정신적 외상을 그저 발전을 위한 도움닫기 정도로 간주하게 하여, 결국 그들 마음 속 깊이 내재하게 된 상처에 대해 별 거 아닌, 더 나아가 ‘좋은 경험’이라고 보게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따라서 필자는 사람이 상처로 성장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2013)에 나오는 마담 프루스트의 대사처럼 “나쁜 추억을 행복의 홍수 아래 가라앉게 하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누군가 당신에게 상흔을 내려고 하면 어떠한 방법을 써서라도 피해야한다. 그리고 당신을 아껴주는 사람들에게만 달려가야 한다. 그대는 쓸데없이 가슴이 아플 필요가 없다. 인간은 고통이 아닌 사랑으로 품어질 때, 진정한 성장을 이루어 내므로.

영화라는 매체는 탄생부터 현재까지 인간의 삶을 다양한 방식으로 다뤄왔다. 이 중 캐릭터들의 행위와 그로 인한 상처, 치유의 과정은 스토리텔링의 핵심으로 작용해왔다. 특히 벨기에의 형제 감독인 뤽 다르덴과 장-피에르 다르덴은 마음 속 깊이 상처를 안고사는 인물들을 다뤄왔다. 필자는 이들의 영화 중 주제의식이 가장 뚜렷하다고 느끼는 <자전거 탄 소년>(2011)을 통해 ‘아프지 않고 청춘일 수 있는 방법’을 보여주고자 한다.

▲ 영화 '자전거 탄 소년' 스틸컷     © 네이버 영화

 

영화의 주인공인 시릴은 11살 소년으로, 아빠에게 버려져 보육원에서 지낸다. 영화 초반부터 시릴이 보육원 내에서 아빠가 선물한 자전거에 집착하며 항상 타고 다니는 모습을 통해, 소년이 아빠를 무척 그리워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시릴이 자전거를 타고 아빠를 찾으러 나가면서부터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시릴이 세계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인물들과도 관계를 맺게 된다.

시릴이 처음 만나게 된 사람은 ‘사만다’라는 미용실 원장이다. 그녀는 시릴의 처지를 알고 위탁모를 자청한다. 그렇게 시릴은 사만다의 도움아래 아빠를 보러 가는데 성공한다. 그토록 입에 달고 살던 아빠란 사람, 그러나 그는 이미 부모로서의 마음을 모두 정리했는지, 시릴이 찾아오자 떨떠름하게 반응하며 책임감 없는 모습을 보인다. 그렇게 사만다와 함께 동네에 다시 돌아온 시릴은 ‘웨스’라는 새로운 친구를 만나게 된다. 외로웠던 11살 소년에게 친구라는 존재는 그의 마음을 흔드는데 충분했고, 시릴은 웨스에게 빠른 속도로 마음을 연다. 사만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시릴은 그녀에게 크게 반항하며 계속해서 웨스를 필두로 한 비행 청소년들과 함께 어울린다. 시릴은 웨스 패거리와 강도 짓을 하러 다니고, 자신의 자전거를 이용해 웨스의 악행을 대신해주기까지 한다. 그렇게 소년이 훔친 돈을 갖고 자전거로 달려간 곳은 바로 그의 아빠. 그러나 소년에게는 그 흔해 빠진 가족과 친구조차도 사치였을까, 아빠에게 문전박대를 당하는 것조차 모자라 웨스마저 시릴을 의도적으로 이용했음이 밝혀진다.

▲ 영화 '자전거 탄 소년' 스틸컷     © 네이버 영화

                                           

"너가 좋으면 됐어.”

-시릴이 웨스에게-

그렇게 의도치 않게 자신의 세계 그 자체였던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시릴.

그러나 영화는 엔딩을 통해 이 모든 시련에 대해 불신과 반감을 내비친다. 시릴은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사만다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진심으로 느끼게 되었고, 마침내 ‘자신만을 위한 사랑’이 존재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엔딩의 자전거씬이 이 모든 걸 관통하고 있다.

 

사만다의 심부름을 하던 시릴에게 과거 웨스와 어울리던 아이들이 다가와 시릴에게 돌을 던져 기절하게 만든다. 하지만 갑자기 고요 속에서 홀로 몸을 일으켜 심부름거리를 갖고 사만다를 향해 미친듯이 자전거 페달을 밟는 시릴의 모습은 아이의 한층 더 고결해진 정서를 표현하는데 충분했다. 아마 소년에게 그 시간, 가장 중요했던 것은 그녀의 심부름을 해내는 것이었다. 자신을 버린 아빠, 자신을 이용한 친구에게만 달려가는데 쓰였던 ‘소년의 자전거’는 이제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을 향해 달려갈 줄 알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시릴은 아빠와 웨스로 인한 충격과 상처를 통해서가 아닌, 사만다의 변함없는 지지라는 울타리 안에서 진정한 성장을 이뤄낸 것이다.

 

종합해보면 <자전거 탄 소년>은 시릴과 사만다의 정서적 공유를 통해서 아픔보단 사랑이, 포기보단 포용이 한 개인의 성장서사에 있어 더 큰 영향을 미침을 알려주고 있다. 다르덴 형제는 이미 예전부터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보여왔고, <자전거 탄 소년>의 시릴도 그 유형 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더욱 높이 평가되는 이유는 그들이 따뜻하고 희망적인 관점으로 상처와 치유과정을 담아내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가 할 건, 아픔을 합리화하는 세계를 뒤로하고 나만을 위해 꽃피워줄 따뜻한 정원으로 힘껏 나아가는 것 뿐이다.

 

▲ 영화 '자전거 탄 소년' 스틸컷     © 네이버 영화

“사만다, 팔을 다치게 해서 미안해요.

아줌마랑 살고 싶어요. 항상.”

 

“알았어, 뽀뽀해줘.”

-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시릴이 사만다에게 사과를 하고, 사만다가 이를 받아주는 장면.

그들의 사랑과 성장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씨네리와인드 유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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