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찾아 떠나는 여행일까 '여행자'

노상원 | 기사승인 2020/06/18 [13:19]

무엇을 찾아 떠나는 여행일까 '여행자'

노상원 | 입력 : 2020/06/18 [13:19]

[씨네리와인드|노상원 리뷰어] 이 영화는 서울에서 태어나 9살에 프랑스로 입양된 한국계 여성 감독의 어린시절이 반영된 자전적인 영화로, 1975년 가을(또는 초겨울) 무렵의 고아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70년대, 가을, 고아원이라는 키워드 들으면 예측이 가능 하듯이, 이 작품은 저 딴에는 바삐 돌아가던 사회가 외면해버린 아이들에 대해 말하는 영화다.

 

함께 여행을 떠나자는 아빠의 약속을 굳게 믿고 진희(김새론 역)가 새 옷과 새 신을 신은 채 아빠를 따라 도착한 곳은 고아원이었다. 수녀분들에게 아이들을 소개 받는 사이 아빠는 말도 없이 혼자 떠나버리고, 그 날로부터 진희는 영문도 모른 채 고아원에 덩그러니 남아 아빠를 기다린다. 고아원에는 진희보다 나이가 많은 언니도, 적은 동생도 있다. 새로 들어오는 아이도 있고, 양부모에게 선택되어 고아원을 떠나는 아이도 있다. 진희는 차츰 차츰 고아원이라는 작은 세계의 규칙을 알아가며 기다림에 적응해간다. 아빠의 약속만을 가슴에 간직한 채 진희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긴 여행을 버텨내는 과정이 영화 ‘여행자(2009)’의 줄거리다.

 

등져 누운 아빠의 숨소리, 진흙탕에 빠진 구두, 덤불 아래 흙을 손으로 짚는 감촉, 아이들의 노랫소리 등 감독의 실제 경험(이었을 법한 것)들이 감각적인 차원에서 굉장히 잘 전달되며, 때에 따라서 작품은 진희의 시점 쇼트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텅 빈 고아원 앞마당을 바라보는 남겨진 아이의 쓸쓸함을 간접 체험하게 만든다.

 

아이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얼마나 세상을 앓아내는지가 감각적, 체험적으로 생생하게 묘사됨으로써 관객은 당시 한국사회가 외면한 것들의 풍경을 소외된 자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고아원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어린 아이들 외에도 고아원에 관계된 다양한 사람들-그 곳에 아주 오래 있었던 큰 언니, 식모 아주머니 등-의 저마다의 심상과 이야기도 비중 있게 그려진다. 소외된 사람들에 대해 말하는 영화인 만큼, 이 영화는 영화 자체가 소외 시키는 인물이 없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관객(자전적 영화라는 측면에서 감독)과 진희를 마주보게 만든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진희의 얼굴을 보고 나면 관객은 어떤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우리가 마주 보는 것은 한 아이의 얼굴만이 아니라, 70년대의 그림자에 가려져 소외된 것들 전체이고, 그때의 그 그림자는 지금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이며, 얼마 전까지도 우리나라는 고아 수출국 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제목처럼,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국에는 여행을 떠난 아이들이 아주 많다.

 

▲ '여행자' 스틸컷  © 영화사 진진

 

이 영화에서 아주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는 김새론의 얼굴은, 매일 자신을 데려가줄 누군가를 기다리며 하루하루 나이 먹기를 두려워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그 자체로 대변한다. 아이들은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섣부른 희망은 더 큰 상처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이미 체화 한 것처럼 보이지만, 누군가에게 사랑받고자 하는 간절함만큼은 영원하다.

 

'당신은 모르실거야' 라는 당시의 대중가요가 극 중 두 번  나오는데, 하염없이 아빠를 기다리는 아이의 입에서 '당신은 모르실거야~얼마나 사랑하는지~ 세월이 흘러 가면은 그때서 뉘우칠 거야..' 하는 70년대 사랑노래가 나오는 순간의 아이러니하면서도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느낌이 있다. 무척 가슴 아픈 영화다.

 

 

보도자료 및 제보cinerewind@cinerewind.com

씨네리와인드 객원취재부 기자단 3기
  • 도배방지 이미지

여행자 관련기사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