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그리고 ‘1987’

김예지 | 기사입력 2019/04/25 [18:52]

2017년 그리고 ‘1987’

김예지 | 입력 : 2019/04/25 [18:52]

 

▲ 1987 포스터     © 우정필름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2017년 3월 10일 대한민국 제 18대 대통령인 박근혜가 탄핵됐다. 어떠한 물리적인 폭력이나 유혈 사태 없이, 오로지 ‘촛불시위’라는 평화적인 방법만으로 이뤄낸 성과였다. 광장에 한 번이라도 나왔던 모든 시민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전세계가 시민들의 비폭력 시위만으로 대통령 탄핵을 이루어낸 대한민국에 주목했다. 독재와 폭력, 그리고 유혈사태와 국가의 폭력을 비롯한 무고한 시민들의 죽음이 쌓아올린 긴 민주주의의 역사가 피워낸 꽃이었다. 한국에 민주주의가 꽃피기를 희망하는 것은 쓰레기통에 장미꽃이 피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는 로이터 통신 기자의 말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영화 ‘1987’은 이 찬란한 순간이 있었던 2017년의 연말에 개봉한 영화다. 박종철과 이한열의 죽음이 있었던 1987년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의 한가운데를 관통하고 있다. 독재가 국민을 억압하고, 국가의 폭력에 맞서 자유를 찾기 위해 싸우던 대한민국의 근현대사 시대는 이미 한국 영화계에서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특히나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루는 영화들이 많았다. 화려한 휴가를 시작으로 웹툰을 원작으로 한 26년, 택시운전사까지. 그 당시의 광주로 돌아간 영화도 있었고,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광주 민주화 운동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보여주는 영화도 있었다. 영화의 소재로 만들어지는 것 자체가 의의가 있었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독재 시절을 다루는 많은 영화들 중에서도 수작을 골라낼 수 있는 시대가 왔다.

 

 ‘1987’은 박종철의 죽음을 시작으로, 고문치사 사건을 단순 사망으로 처리하려던 정부의 음모가 드러나면서 민주화 열망이 폭발하던 시대 1987년을 다룬 영화다. 개봉을 하기 전부터 김윤석, 하정우, 이희준, 김태리, 유해진 등 화려한 출연진들로 주목을 받았던 1987은 특별출연진 역시 화려했다. 박종철 역할을 맡았던 여진구부터, 영화 개봉 직전까지 철저하게 비밀로 숨겼던 이한열 역의 강동원까지. 과연 누가 이 영화의 원톱 주인공인가가 관객들의 큰 궁금증 중 하나였다.

 

 그러나 막상 개봉한 ‘1987’은 관객의 예상과 전혀 다른 전략을 취했다. 명백하게 돋보이는 한 명, 혹은 두 명의 주인공을 내세우지 않은 것이다. 모든 인물들이 영화에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이고, 자기만의 서사를 지니고 있지만 그 누구도 명확하게 주인공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포스터에 내세운 인물들 중 가장 큰 분량을 차지하는 김윤석과 김태리 역시 주인공이라고 할 수는 없다. ‘1987’은 사람이 아니라 시대를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 1987 스틸컷     © 우정필름

 

 

 어떠한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삼고 있는 영화들은 대부분 그 안으로 들어가 한 사람의 생애와 행동, 그리고 발언에 주목한다. 역사적으로 이미 유명한 인물이든, 혹은 그 안에서 평범한 개인으로 살아가는 가상의 개인을 설정하든 한 사람의 행적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화려한 휴가’에서는 김상경과 이준기, 26년에서는 진구를 비롯한 네 명의 주인공들, 택시 운전사에서는 송강호. 그러나 1987은 한 개인의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조명하지도, 역사 속을 걸어가는 한 사람의 절절한 감정과 서사를 부각시키지도 않는다. 어찌보면 상업 영화로서는 위험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시대와 사건을 보여주기보다, 이 사건 속에 있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편이 관객에게 공감을 유도하고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쉽기 때문이다. 개발도상국의 후원 광고 역시 이런 효과를 노리고 빈곤 수치나 질병의 위험성을 강조하기 보다, 당장 내일의 끼니를 걱정해야하는 질병에 걸린 한 아이를 광고 모델로 내세운다.

 

 그러나 ‘1987’은 그런 개인의 서사를 잠시 접어둔다. 순간순간 배어나오는 조우진의 슬픔이나 김태리의 설렘과 충격 이후의 슬픔, 그리고 광장에 나가기까지의 벅참을 보여주지만 영화를 전체적으로 살펴볼 때는 시대와 사건을 그려내는 것에 충실하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버스에 올라간 김태리와 시위에 합류한 회사원들, 그리고 광장 가득히 모여 함께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는 시민들. 그 위로 마침내 떠오르는 영화의 제목 1987까지.

 

 1987년을 다양한 인물들과 함께 지나온 관객은 마침내 그 장면에서 벅찬 감동을 느끼게 된다. 정면으로 마주본 시대, 그리고 그 때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이야기, 어느 한 사람의 힘으로 어느 한 사람의 고백이나 내부고발로 완성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양심이 모여 밝혀낸 진실, 그리고 거기에 화답하듯 광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까지. 가슴 가득히 차오르는 벅차오름은 2016년 겨울부터 2017년 3월까지 광화문 광장에서 느꼈던 열망과 같은 감정일 것이다.

 

 그리고 영화 속 김태리에게서, 유해진에게서, 광장을 메운 시민들에게서 우리를 본다. 우리의 촛불이 무엇 위에 세워졌는지 마주보게 된다. 박종철과 이한열,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 피, 굴하지 않는 투쟁이 만들어낸 길을 따라오다 보면 그 끝에 2017년의 촛불이 있다. 역사는 반복되고 폭력과 부패는 다른 형태로 끊임없이 되살아난다. 시민들의 투쟁도 반복된다. 그러나 절망할 필요가 없는 이유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이라도 나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누구도 희생되지 않았다. 유혈사태도 없었다. 1987년보다 2017년이 나아졌듯이, 미래의 촛불은 더 나아져있을 것이라고 영화는 말하고 있다.

 

[씨네리와인드 김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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