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한 초인종 소리

들리지 않는 소시민의 삶과 마주하다, '언노운 걸'

이은서 | 기사승인 2020/07/01 [17:44]

분명한 초인종 소리

들리지 않는 소시민의 삶과 마주하다, '언노운 걸'

이은서 | 입력 : 2020/07/01 [17:44]

 

▲  '언노운 걸' 스틸컷 ©오드

 

[씨네리와인드|이은서 리뷰어] 다르덴 형제의 영화는 언제나 그렇듯 잔잔하면서 일상의 소리에 귀 기울인다. 현상학적으로는 유럽 사회의 문제들을 짚어내기도 하지만, 영화 내에서 효과음이나 테마음악을 깔지 않고 사실 그대로를 담아낸다. 그런 다르덴 형제의 음향 소신 때문일까. 화면이 밝아졌지만, 제니는 청진기에 귀 기울이고 있고 관객은 제니의 숨소리 환자의 숨소리만을 듣는다. 영업이 종료되고 인턴과 대화를 나누던 차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듣는다.

 

제니와 인턴 줄리앙은 분명히 그 소리를 들었다. 들렸고, 들을 수밖에 없는 감각과 정적이 있었다. 그러나 소리를 외면하는 많은 이유가 있듯 제니는 진료가 끝났다는 이유로 문을 열어 확인하는 수고를 보이지 않는다. 한밤중에 병원의 문을 두드린 소녀가 변사체로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죄책감이 깃든 아델 에넬의 표정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소녀의 부고에 책임감을 느끼는 제니는, 비단 의사라는 직업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보편의 인간이라면 느낄 수 있을 양심문제에 한 걸음 내디뎠다는 데에 방점을 두어야 한다.

 

 ▲ '언노운 걸' 스틸컷 ©오드

 

소녀의 변사체와 범인을 쫓는 추리물이 아니라는 점은 자명하다. ‘문 두드리는 소리’, ‘고함’, ‘발작과 몸의 움직임’, ‘떨리는 숨소리처럼 고요한 일상에 오롯이 집중하게 만든다. 이때 고요함은 침묵함으로써 유지되는 것인가 혹은 외면함으로써 유보되는 것인가. 필자의 견해는 후자다. 언제나 소수자는 가장 큰 소리를 내며 도움을 요청하나 다수에게는 소음일 뿐이다. 다르덴 형제가 재현한 그 소리는 의료복지의 사각지대에 선 사람들, 불법 체류자와 이민자, 성착취 피해자, 가정 폭력 피해자의 것이다. 겹겹이 포개어둔 유럽의 사회문제를 마주할 때 비로소 다르덴 형제의 장르를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다.

 

▲ '언노운 걸' 스틸컷 ©오드

 

불퉁한 제니(아델 에넬 분)의 표정, 사건 추적을 탐탁잖게 여기는 주변의 시선에도 적당히 물러서는 모습을 보인다. 그것은 공포심이 아니라 의구심이지 않았을까. 소녀의 죽음에 자신과 달리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의식에 주저하고, 사건에 감춰진 사회문제들이 속속이 밝혀질 때마다 제니의 무력감이 전이되는 듯하다.

 

제니가 묘지를 계약하는 장면이 오래 남는다. 임시매장된 소녀에게 꽃을 한아름 안고 간다. 묘지 관계자가 계약은 몇 년 할 것인지 묻자 10년이라 답한다. 10년 동안 기억될 제니의 책임감을 엿보고 싶다면소수자 문제에 대한 기민한 감각들과 마주하고자 한다면관람을 망설이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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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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