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영화 속 여성 상흔의 한계

이은서 | 기사승인 2020/07/22 [09:10]

전쟁 영화 속 여성 상흔의 한계

이은서 | 입력 : 2020/07/22 [09:10]

  © 수입 (주)T&L 엔터테인먼트 배급 (주)팝엔터테인먼트

 

[씨네리와인드|이은서 리뷰어] <빈폴>은 칸 영화제에서 두 번의 수상의 영예를 얻었던 사실만큼이나 관람할 이유는 충분하리라. 칸타메르 발레고프 감독은 포스터의 카피가 주지하다시피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노벨상 수상작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전쟁과 여성, 발언권을 전선으로 넘겨야만 했던 이들의 삶을 상상해볼 차례다. 전 세계적으로 공통되었던 전쟁 서사 문법에서 벗어났다는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지금껏 전쟁 영화는 침략과 항복의 반복으로 희열과 분노를 오고 가거나 전쟁 영웅을 기리는 방식으로 제시되었다. 역사적 사실을 재구성하여 반성적 사고를 이끌거나(조조래빗), 영웅담을 얼마나 생동감있게 묘사하는가(1918)에 혈안 되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전쟁 이후의 삶을 다룬 영화가 반가운 이유는 구태여 덧붙일 필요가 없다.

 

  © 수입 (주)T&L 엔터테인먼트 배급 (주)팝엔터테인먼트

 

영화는 이야의 숨소리로 시작한다. 스산하고 규칙적이지만은 않은 숨소리가 서사 전체를 옭아맨다. 전선의 승패, 환호와 탄식이 아닌 전쟁 이후의 삶을 조명한 것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야는 전쟁에서 뇌진탕 증후군으로 제대한 군인이었고, 아들 파슈카와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며 삶을 영위한다. 변변치 않은 삶이지만 파슈카와 볼을 맞대고 아이의 웃음소리로 버티던 일상이 무너져내린다. 마샤가 돌아오면서 둘 사이의 실마리가 풀리는데, 마샤와 이야의 관계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러시아가 여성 군인을 징발한 기록을 전제로 둔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와 두 여자 이외의 삶을 그려내는 데에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야가 돌보던 환자들 대부분은 전쟁 증후군을 앓고 있었고, 심지어는 그중 한 명의 죽음을 돕기도 한다. 그에게 주사를 놓은 후 피워낸 담배가 자욱하게 짙어질 때 피폐해진 삶을 감히 짐작도 할 수 없게 만든다.

 

  © 수입 (주)T&L 엔터테인먼트 배급 (주)팝엔터테인먼트

 

마샤는 옆방의 세탁소 이웃으로부터 원피스를 빌려 입고 돌아본다. 생사를 오고 가는 전선에서 얼마간 침식되었던 웃음이 방 안에 부유한다. 마샤의 웃음이 끊이지 않고 치맛자락의 움직임이 멈추지 않는데, 이는 전쟁이 앗아간 것이 웃음이 아니라 감정, 행복이었음을 시사한다. 미장셴과 연출에 극찬을 받았지만, 전쟁 이후의 여성의 피폐한 삶을 그려내는 방식이 결국 불임, 생명 잉태 불능 상태라는 점에 아쉬움이 남는다. 메마른 둘 사이가 극히 격해지는 순간은, 대부분 마샤의 감정선 변화에 기인한다. 마샤가 파슈카의 죽음을 알게 된 후 분노, 이야에게 아이를 만들어 달라는 환희에 찬 부탁들 너머에는 남편만이 아니라 자궁 또한 전선에서 잃었다는 마샤의 비소가 깊게 자리한다. 전쟁이 여성의 신체에 남긴 상흔이 일방적이고도 일관적이다.

 

내 안은 텅 비었어.” 아야는 마샤를 향해 말한다. ‘잃은 아이를 아이로 갚는다는 사실이 꽤나 기괴하지만, 마샤의 삶의 희망은 새 생명에서 온다. 마샤에게 임신하지 않은 사실을 알린 이후, 둘 사이의 미묘한 긴장감은 절정에 달한다. 마샤의 기행이 지속되자 이야는 도망을 결심한다. 극의 갈등이 해소되기를 기대했던 것과 달리 짐을 싸던 중 이야의 뇌 병변 증상이 나타난다. 다시. 이야의 숨인지, 멈춰가는 숨인지 모를 소리가 방안을 가득 메운다. 이야의 공허한 눈은 창밖을 향하고 마샤는 그를 감싸 안고, 폐부로 들어차는 깊은숨을 나눈다. 이때 폐부에 차는 것이 애증인지 사랑인지 혹은 집착인지 그 경계가 모호하지만, 우리가 전쟁을 겪은 여성의 숨을 들었고 복원 가능성을 보았다는 점은 분명히 할 수 있다.

 

 

보도자료 및 제보cinerewind@cinerewind.com

이은서
씨네리와인드 객원취재부 기자단 3기
cinerewind@cinerewind.com

Read More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