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란 매직, 이번엔 시간이다

'테넷', 시간을 거꾸로 뒤집어, 다른 시간도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권이지 | 기사승인 2020/09/03 [11:14]

놀란 매직, 이번엔 시간이다

'테넷', 시간을 거꾸로 뒤집어, 다른 시간도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권이지 | 입력 : 2020/09/03 [11:14]

[씨네리와인드|권이지 객원기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테넷.' 개봉 전부터 감독의 팬들을 비롯, 많은 관객들의 기대를 모은 작품이다. 요즘 상황으로 인해 관객 수가 많지는 않지만 높은 예매율을 자랑하며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테넷.' 평소 공간, 기억 등을 주제로 새로운 시도를 해 왔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이번에는 시간을 거꾸로 뒤집는 역발상을 선보였다 

 

▲ '테넷' 포스터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테넷'의 핵심은 '인버전.' 용어 그대로 시간을 거꾸로 뒤집는다는 뜻이다. 영화 예고편을 보면 알 수 있듯 주인공들이 '사토르(케네스 브래너 분)'와 미래 세력에 맞서 과거로 역순행함으로써 세상을 지키는 것이 영화의 핵심 플롯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일반적인 타임 슬립 영화들과 다르다. 타임 슬립이나 리프를 소재로 다룬 작품에서는 주인공이 과거의 특정 시점으로 돌아가 그 순간부터 다시 순행적으로 사건들을 겪는다.

 

하지만 '테넷'에서는 필름을 거꾸로 돌리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듯이 주인공들이 과거의 특정 시점으로 가도 혼자 거꾸로 움직인다. 이 점이 바로 놀란 감독의 매직이다. '테넷'을 보고 느낌을 한 줄로 요약하라면 '거꾸로 튼 필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단 한 번도 영화의 테이프를 역순행적으로 돌린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 작품이 없었는데, '테넷'에서는 그 놀라운 광경을 러닝타임 안에서 수십 번 보여준다. 

 

▲ '테넷' 스틸컷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그럼에도 이번 영화는 그렇게 단순하게 정의되지 않는다. 양자역학을 주제로 우주의 5차원 공간까지 등장하며 시공간이 얽혔던 '인터스텔라'처럼 '테넷'의 시나리오 또한 복잡한 물리학 법칙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테넷'에서 사용되는 물리학적 내용은 엔트로피를 역으로 활용함으로써 물건이나 사람이 거꾸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면 '테넷'은 열역학 제 2 법칙에 근거하고 있는데, 1법칙에서는 엔트로피가 증가하거나 일정한 방향으로, 즉 자연의 섭리에 어긋나지 않게, 또 일반적 시간의 방향처럼 순행적으로 흐른다. 그러나 제 2 법칙에서는 이러한 내용을 뒤집어 엔트로피가 거꾸로 움직일 수 있고 그에 따라 시간도 역순행적으로 흐를 수 있다. 그 모든 과정이 한 동작도 빠짐없이 그대로 영화 속에 펼쳐진다. 

 

이러한 물리학적 법칙을 대략적으로 알고 나서도 영화는 곧바로 이해하기 힘들다. 영화 관람을 하고 나서 시간이 흘러도 작품의 논리적인 구조나 인물들의 타임라인을 완벽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과거 '인셉션'이나 '인터스텔라'가 그러했듯 '테넷' 또한 한 번에 이해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영화를 자세히 이해하고 싶다면 N차 관람이 필요한 것 같다.

 

 ▲ '테넷' 스틸컷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영화의 절반 정도까지는 이해가 수월하나 과거의 사토르와 현재, 미래의 사토르가 공존하는 장면부터 관객들의 이해가 매우 어려워지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인버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시공이 복잡하게 얽히기 때문이다. '왜 사토르가 두 명 등장하지?' 부터 '도대체 등장인물들이 어떤 시점으로 가서 인버전을 한 거야?' 까지 다양한 의문이 생기게 된다. 이 모든 것들을 논리적으로 이해하려 애쓰기보다는 직관적으로 인버전 영상을 즐기고 나중에 타임라인을 차차 정리해 보는 방식으로 영화를 관람하면 효과적인 작품 감상에 더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관객들의 입장에서 '테넷'의 핵심은 스토리보다도 영상미이다. CG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아날로그적 방식을 추구하는 놀란 감독의 특성상 영화가 주는 사실적인 느낌이 굉장히 뛰어나다. 앞서 '인셉션'에서도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애리어든(엘렌 페이지 분)'이 처음으로 꿈을 설계할 때 등장했던 폭발 씬이 모두 실제 촬영이었듯 이번 '테넷'에서도 대부분의 작품들이 다양한 로케이션에서 실제 촬영되었다. 이는 놀란 감독이 공개한 비하인드 영상에서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 '테넷' 스틸컷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그 외에도 '테넷'에는 다양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얽혀 있는데 우선 시나리오에 대한 후일담이 인상적이다. 보통 놀란 감독이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5~6년에 걸쳐 영화를 선보이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였는데 시나리오를 작성하는 데 6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이토록 감독의 노력이 들어간 시나리오이기에 내용은 매우 흥미롭지만 많은 이해를 요한다. 관객들도 영화를 직접 보기 전까지는 영화 예고편이나 티저만으로 내용을 전혀 짐작할 수 없다. '이해하지 말고 느껴라,' '당신에게 줄 단어는 하나, 테넷' 이라는 문구처럼 작품을 이해하기보단 느끼고 '테넷'이라는 한 단어 외에는 모두 논리보다 직관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더불어 영화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만한 비하인드로는 '사토르 방진'이 있다. 사토르 방진은 흔히 '회문'이라 하듯이 거꾸로 읽어도 똑같이 읽히는 단어들이 마방진처럼 얽혀 있는 것이다. 'TENET'이란 단어 또한 역으로 읽어도 같은 소리와 뜻으로 읽힌다. 'SATOR'를 거꾸로 읽으면 인버전의 근거가 되는 회전문 'ROTAS'가 되는 것처럼 주인공들의 이름이나 소재 등이 모두 회문으로 구성되어 영화의 신비함을 배가한다. 

 

  ▲ 사토르 마방진  © 구글 검색 결과


원래 영화의 제목이 '회전목마'로 구상되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고려할 때 인버전을 통해 과거 또는 현재(과거의 관점에서는 미래)의 주인공들이 동시에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서로 다른 시간도 동시에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회전목마라는 제목이 작업 당시 사용된 이유가 정확히 공개되진 않았으나, 회전목마에서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같이 움직일 수 있듯이 서로 다른 시간선을 가지는 등장인물들도 같은 활동을 해 낼 수 있다는 아이디어 때문이 아닐까 하고 유추가 가능하다. 

 

또한 시간에는 절대적인 방향이 없다는 생각도 든다. 순행이 정답이거나 역순행의 관점에서 영화를 봐야 한다거나 등의 정해진 것은 없다. 인버전을 통해 시간을 역순행하던 인물도 순행하는 시간선에 편승할 수 있고 순행과 역순행이 원할 때마다 자유롭게 가능하다는 것이 시간이 흘러가는 방향의 상대성을 보여준다. 이것은 놀란 감독의 새로운 생각인 듯한데 시간이 흘러가는 방향에 자유를 부여하고자 했다는 것이 참신한 아이디어로 느껴진다. 

 

'테넷'의 영화 내용상 난이도는 상당하나 영화적으로 전혀 새로운 시도임은 분명하다. 그동안 놀란 감독의 '메멘토,' '인셉션,' '인터스텔라' 등 작품들을 좋아했던 관객 분들이라면 이번 영화를 보며 과거의 작품보다 훨씬 진화되었다는 느낌과 동시에 놀라움과 감동을 느낄 것이다. 테이프를 거꾸로 튼 것처럼 물웅덩이, 새들 등 주변환경과 주인공들이 거꾸로 움직이는 모습은 관객에게 짜릿함을 선사한다. 내용이 이해되지 않더라도 감독과 배우가 심혈을 기울인 영상과 시간의 역발상을 즐기는 것만으로 '테넷'을 본 가치는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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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이지
씨네리와인드 객원취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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