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보단 낯선 곳

'천국보다 낯선', 짐 자무쉬 감독이 말하는 천국이란

김유빈 | 기사승인 2020/09/03 [11:32]

천국보단 낯선 곳

'천국보다 낯선', 짐 자무쉬 감독이 말하는 천국이란

김유빈 | 입력 : 2020/09/03 [11:32]

▲ '천국보단 낯선' 포스터 (주) 안다미로, 백두대간

 

[씨네리와인드 김유빈 리뷰어] 언제나 로드 무비 속 주인공을 보면서 생각했다. 여행은 사람을 변화 시키는가? 우리는 새로운 곳으로 갈수록, 성장할 수 있는 걸까. 로드무비의 주인공은 언제나 여행을 통해 성장한다. 하지만 짐 자무쉬 감독의 주인공은 언제나 정체된다짐 자무쉬 감독의 '천국보다 낯선'은 그러한 특징을 가진 대표적인 로드무비다. 여행의 목적은 불분명하며, 주인공의 자아 성장과 깨달음이란 찾아볼 수 없다. 영화에서 주인공들은 기대를 안고 새로운 곳으로 향한다. 하지만 어떤 곳이든 도착했을 때, 활기보단 우울함 그리고 연대보단 갈등을 겪게 된다. 그 모습은 이들이 어떤 곳을 가든 변함없이 반복된다. '천국보다 낯선'은 제목처럼 우리가 어떤 장소에 갈 때, 그곳이 기대와 달리 천국보단 낯선 곳일 수 있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천국보다 낯선'은 1984년 개봉됐다. 개봉 당시 영화는 아마도 가장 미국적이면서, 미국적이지 않은 영화였을 것이다. 당시 할리우드는 70년대부터 이어진 아메리칸 드림소재가 여전히 열풍 중이었다. 대표작으론 존G 감독의 '록키'와 현재까지 인기가 많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대부' 같은 영화가 있다. 짐 자무쉬 감독의 '천국 보다 낯선'은 아메리칸 드림에 관해 당시 영화들과는 다른 주장을 내세운다. 그는 오히려 잿빛의 미국을 보여준다. 또한 헐리우드 특유의 공식을 사용하지 않았기에, 그는 미국 인디 영화에 주력으로 언급되게 된다. 영화가 주목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앞서 말한 미국적인 요소를 제한한 것 외에도 형식에 있다. “제가 이 영화의 형식을 좋아하는 이유는 관객이 보고 싶은 것을 더 자유롭게 택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짐 자무쉬 감독이 말했다. 감독은 독특한 형식으로 주제를 연출했다. 당시 할리우드 영화들과는 꽤나 다른 방식의 스타일을 선보였는데, 이것은 아마도 그때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던 미국인들에게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 만한 충격을 주지 않았을까 예상한다.

 

▲ '천국보다 낯선' 스틸컷 (주)안다미로, 백두대간    

 

영화 형식의 연출에 대해 이야기 하기 전에, 영화에서 미국을 어떻게 보여주는 지 알아보자. 영화는 세 가지 시퀀스로 이루어져 있다. 헝가리 출신 에바가 뉴욕에 오는 이야기 신세계’. 윌리와 에디가 클리블랜드로 떠나는 이야기 ‘1년 후’. 그리고 에바와 윌리, 에디가 플로리다로 휴가를 떠나는 이야기 천국’. 세 시퀀스에 나오는 장소는 전부 미국이다. 영화는 초반부에 에바가 뉴욕 거리를 걸어가는 장면을 시작으로, 미국의 전반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러닝 타임 내내 보이는 것은 허름한 공업시설, 우울한 거리, 어두운 사람들이다. 영화 속 미국의 모습은 아메리칸 드림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미국 배경의 미장센과 주제가 가장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장면이 있다. ‘새로운 곳에 왔는데 모든 게 그대로 같아’. 기찻길은 끝이 안 보이고, 인적이 없다. 끝이 안 보이는 기찻길 위에서 에디가 말한다. 황량한 가운데 윌리도 서 있다. 왜 하필 이들은 기찻길 위에 서서 이런 말을 했을까. 기대에 찬 채로 온 클리블랜드이지만, 보이는 건 뉴욕과 같은 우울한 거리이고 생활하는 것도 뉴욕에서와 별 다를 게 없다. 러닝타임 내내, 윌리와 에디는 항상 어딘가를 향해 떠난다. 하지만 갈수록 더 이상 어디로 향할지 모르겠는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이들이 가는 곳은 전부 미국이었으나, 아메리칸 드림은커녕 어딜 가든 황량한 기찻길 위에 있는 것과 같았을 것이다.

 

▲ '천국보다 낯선' 스틸컷 (주) 안다미로, 백두대간 

 

영화의 여러 형식적 연출 중 흑백은, '천국보다 낯선'을 온통 잿빛으로 만든다. 흑백은 장소의 황량함과 인물의 쓸쓸함을 더해주는데, 동시에 빛과 그림자를 강조한다. 세 인물이 탄 차가 플로리다로 향하는 장면에서, 차 안에 비치는 가로등과 헤드라이트 불빛이 돋보인다. 생기 있는 빛 덕분에, 플로리다로 향하는 세 인물의 기대와 즐거움이 잘 보여지게 된다. 그들이 향하는 플로리다가 천국이 아닌 낯선 곳임을 알기 전이지만 말이다. 또한 흑백은 뉴욕’ ‘클리블랜드’ ‘플로리다각 다른 장소의 색채를 통일시킨다. 이것은 미국의 황량한 모습이 어디든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로 짐 자무쉬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그게 제가 여행을 하면서 느끼는 거에요. 미국에는 연속되는 일정한 톤이 있어요.” 자무쉬 감독이 느낀 미국의 톤은 영화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 같다.

  

'천국보다 낯선'에는 미국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섹스, 죽음, 욕망이 없다. 클리셰를 넣지 않은 것은 물론, 할리우드의 다양한 공식을 생략한 것이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롱테이크와 암전이다. 할리우드의 대표적 편집 방식에는 연속 편집’(논리적인 시간과 공간, 사건의 연속성을 유지시키는 방식의 편집), 비가시성 편집’(영화가 편집되었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하도록 자연스럽게 연결함으로써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드는 편집)이 있다. 짐 자무쉬 감독은 이러한 편집 방식을 사용하지 않는다. 애초에 할리우드 영화는 잘게 나누어진 컷들로 이루어져 있기에, 관객들은 영화가 보여주는 것만을 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천국보다 낯선'은 모든 씬이 하나의 컷으로 이루어져 있고, 관조적 시점의 카메라로 롱테이크를 찍어냄으로써 관객들은 영화 속 사소한 것들을 자유롭게 찾을 수 있게 된다.

 

영화의 모든 씬과 씬 사이에 암전이 존재한다. 암전은 관객에게 다음 장면을 상상해보라는 자무쉬의 의도이다. 우리는 암전의 길이에 차이를 준 것에 주목해야 한다. 암전의 길이는 갈수록 짧아진다. 이것은 인물, 관객들의 마음과 동일한 호흡으로 진행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암전은 관객들에게 제공되는 상상의 여백이다. 인물들이 클리블랜드 혹은 프로리다에 도착할 때, 그들은 새로운 장소에 대한 이상과 기대감을 갖고 있다. 그들을 지켜보는 관객들도 이들과 비슷한 기대감을 갖고 있다. 관객은 에바와 윌리가 마이애미 바다에서 뭐하고 놀까?’ 하고 암전 속에서 다음을 상상한다. 하지만, 곧 인물들과 관객들은 뉴욕이든, 클리블랜드이든 별 다를 게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라지는 기대감에 관객들이 상상할 거리는 줄어든다. 이 호흡에 맞춰 암전의 길이도 짧아지는 것이다. 이러한 자무쉬 감독의 암전은 '천국보다 낯선' 이외에 1995년 '데드맨'에서도 이어진다

 

'천국보다 낯선'을 본 많은 관객들이 시적이다라는 말을 한다. 시퀀스마다 반복되는 행동과 사건이 운율을 느끼게 하지만, 우리가 주목할 것은 수미상관 구조이다. 영화는 처음과 마지막 전부 홀로 있는 에바를 보여준다. 첫 장면에 이제 막 뉴욕에 도착한 에바를 보여준다. 마지막 장면에선 헝가리로 떠날 수 있음에도 가지 않고, 숙소에 남아있는 에바를 보여준다. 첫 장면에서 에바는 이제 막 도착한 미국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감을 갖고 있다. 그 기대감은 에바가 미국에 첫 발을 내딛으면서 튼 스트리밍 제이 음악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의 에바는 새로운 곳으로 갈 수 있음에도 떠나지 않는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 어디에도 가지 않고 머무른다. 수미상관은 비슷하면서도 달라진 에바를 보여준다. 새로운 곳에 간다 한들, 그다지 변할 게 없다는 것을 알기 전과 후의 모습이다. 이러한 처음과 마지막 에바의 모습이 대비되면서 주제를 부각시킨다.

 

▲ '천국보다 낯선' 스틸컷 (주) 안다미로, 백두대간  

 

영화는 우리에게 어디든 천국이 될 수 없음을 이야기 한다. 천국보단 낯섦이 앞설 테고, 어딜 가든 우리 스스로의 모습은 그다지 변함없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마냥 냉소적이지만은 않다. 짐 자무쉬는 언제나 단순한 것에 끌린다고 말해왔기 때문이다. '영원한 휴가'에서부터 최근 '패터슨'과 '데드 돈 다이'까지 그의 영화에는 언제나 사소한 것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천국보다 낯선'에서 에바가 스트리밍 제이를 들으며 처음 등장하는 모습. 그리고 춤을 추는 에바, 강한 빛 아래 드라이브하는 세 인물. 고모와 카드게임을 하는 모습. 음악을 들으며 춤을 추고 함께 차를 탈 수만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 천국이 될 수 있다는 자무쉬의 메시지가 담긴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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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빈
씨네리와인드 객원취재부 기자단 4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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