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가을 찾아온 ‘러브레터’

[서평] 이와이 슌지, '라스트 레터'

김준모 | 기사승인 2020/09/04 [13:58]

늦은 가을 찾아온 ‘러브레터’

[서평] 이와이 슌지, '라스트 레터'

김준모 | 입력 : 2020/09/04 [13:58]

▲ '라스트 레터' 표지  © 하빌리스

 

[씨네리와인드|김준모 기자] 95년 작 러브레터는 현재에도 그 감정이 통용되는 로맨스 영화의 대표작이다. 이 작품은 후지이 이츠키라는 남자의 실종에서 시작된다. 옛 연인을 잊지 못하는 와타나베 히로코는 졸업앨범에 적힌 이츠키의 주소로 편지를 보내고 놀랍게도 후지이 이츠키에게 답장을 받게 된다. 알고 보니 동명이인의 여학생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은 와타나베 히로코와 똑같이 생겼다.

 

러브레터는 남성과 여성에게 서로 다른 감수성을 전해주는 작품이다. 남성에게는 첫사랑의 아련함과 향수를 전해준다. 남자의 첫사랑은 무덤까지 간다고, 첫사랑을 잊지 못한 그 순정이 마음을 자극한다. 반면 여자에게는 후지이 이츠키의 감정이 다소 이기적이고 잔인하게 다가온다. 얼굴이 닮았다는 이유로 와타나베 히로코를 선택했다는 점과 뒤늦게 자신을 좋아했다는 걸 알게 된 또 다른 후지이 이츠키가 받을 상처를 고려하지 못했다는 점이 이유다.

 

라스트 레터는 이런 러브레터의 감성을 다시 한 번 선보이는 작품이다. 중국과 일본에서 같은 내용의 작품을 각각 만든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는 아직 국내에 개봉하지 못했지만, 그 원작인 책은 발매되어 그의 감성을 기다리고 있던 독자들의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준다. 작품은 러브레터처럼 편지를 통해 아련한 기억을 되살린다. 아날로그 세대에게는 그 시절의 추억을, 디지털 세대에게는 색다른 느낌을 준다.

 

작품은 오토사카의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된다. 작가인 오토사카는 학창시절 기억을 바탕으로 쓴 미사키이후 책 한 권 내지 못하는 작가다. 그가 동창회를 향한 건 이 소설의 주인공, 미사키를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 정작 그곳에서 만난 건 미사키인 척 연기를 하는 그녀의 동생 유리다. 어린 시절과 달리 유리의 얼굴은 미사키를 닮아있다. 오토사카는 호기심에 유리인 걸 알지만 미사키인 척 그녀를 대한다.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오토사카는 유리인 척 하는 미사키한테 문자로 고백을 한다. 어쩌면 미사키가 아니었기에 더 쉽게 이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오토사카가 새 책을 쓰지 못하면서 작가의 꿈을 포기하지 못하는 건 미사키 때문이다. 학창시절 글을 잘 쓴다는 미사키의 말에, 그녀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소설이 작가의 꿈으로 이끌어줬기에, 오토사카는 만날 수 없는 미사키와 자신을 이어주는 통로가 작가란 직업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한 통의 문자는 유리의 삶을 바꿔놓는다. 유리의 남편 소지로는 오토사카와 유리 사이의 관계를 의심하다 못해 핸드폰을 망가뜨린다. 이에 유리는 편지로 오토사카에게 불만을 토해내는 건 물론 자신의 사사로운 이야기를 모두 그에게 보낸다. 유리는 왜 미사키인 척을 한 걸까, 왜 그녀는 오토사카한테 편지를 보내며 미사키의 이름을 쓰는 걸까. 그 이유는 이 작품이 ‘24년 전추억을 말한다는 점에서 있다.

 

오토사카와 미사키에게 24년 전은 학창시절이다. 두 사람은 대학교 시절 다시 만나 사귀었다는 점에서 이들 사랑의 마침표는 24년 전이 아니다. 이 마침표는 오토사카와 유리 사이의 관계다. 당시 유리는 오토사카를 짝사랑했고 오토사카를 부추겨 미사키에게 쓰게 한 연애편지를 자신이 보관하고 주지 않았다. 이 편지를 보며 유리는 마치 자신이 미사키인 마냥 감정을 이입했을 것이다.

 

이런 소녀의 순수한 마음이 여전히 유리에게 남아있다. 유리는 그 시절 자신이 표현할 수 없었던 마음을 오토사카에게 내비친다. 당시에 그녀는 오토사카한테 편지를 쓸 수 없었고, 불만을 지니고 있어도 표할 수 없었다. 때문에 그녀는 언니가 되어 그때의 욕구를 해소한다. 오토사카의 짓궂은 호기심 못지않게 유리 역시 학창시절의 마음으로 돌아가 장난을 친다. 그 시절 소녀의 영혼이 중년이 된 그녀의 몸으로 들어온 것이다.

 

작품의 서술자는 오토사카지만 스토리의 진행은 유리의 가정을 중심으로 한다. 그 이유는 유리가 미사키의 가정과 합쳐졌기 때문이다. 오토사카의 작가적 상상력은 어떠한 결론에 도달하는데 그건 미사키의 죽음이다. 유리가 미사키인 척하는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 답밖에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오토사카는 미사키와 자신의 끈이 끊어졌다는 생각에 가족이 그토록 만류했던 작가의 길을 허무하게 포기하기에 이른다.

 

미사키의 죽음은 유리와 오토사카에게 상실과 아픔을 남긴다. 이는 미사키의 자식들 역시 마찬가지다. 유리는 아유미와 에이토 남매가 자신의 딸 호소카와 달리 성숙하다는 점을 눈 여겨 본다. 남매는 어른의 역할을 해주지 못했던 아버지와 아버지로 인해 우울증에 시달렸던 어머니 미사키로 인해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버린다. 이 남매가 품은 기억은 고통과 상실뿐이다. 유리가 오토사카를 통해 옛 기억을 되살린다면, 남매는 새로운 기억을 얻는다.

 

미사키는 몸으로는 경험할 수 없었던 행복한 미래를 영혼을 통해 얻게 된다. 그녀의 죽음은 오토사카와 유리를 다시 만나게 했고, 아유미와 에이토에게 새로운 가족을 얻게 만들었다. 그리고 과거의 기억으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던 오토사카에게 새 미래를 그려나갈 힘을 준다. 어디선가 보고 있을 미사키를 위해, 그녀의 자식들을 위해 훌륭한 어른이자 작가가 되고자 하는 미래를 말이다.

 

이 작품은 감수성과 함께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러브레터를 떠올리게 만든다. 얼굴이 닮은 두 여성과 다소 강압적인 남성(‘러브레터에서는 와타나베 히로코를 짝사랑하는 선배 시게루가, ‘라스트 레터에서는 유리의 남편 소지로와 미사키의 남편 아토가 이런 캐릭터로 등장한다), 학창시절의 추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감정이 그러하다. 때문에 이 작품의 제목 라스트 레터러브레터의 편지의 마지막 종착역 같은 느낌을 준다.

 

자신을 짝사랑했던 유리의 마음을 오토사카가 호기심을 이유로 다소 장난스럽게 생각한다는 점과, 유리를 향한 소지로의 강압적인 태도나 복수가 거북하게 느껴지는 측면은 있지만 작품이 지닌 감수성은 이를 상쇄하는 힘을 보여준다. 이런 힘이 러브레터를 여전히 첫사랑을 대표하는 영화로 기억하게 만드는 이유일지 모르겠다.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이와이 순지는 그 시절의 감성을 잃지 않는 피터팬 같은 면모를 보인다.

 

러브레터가 어딘가 살아있을지 모르는 후지이 이츠키에 대한 긴 여운을 남기며 막을 내린다면, 이 작품은 그 맑고 깨끗한 모습과 마음으로 주변 사람들을 기쁘게 만들었던 미사키의 영혼이 행복을 가져다주면서 끝이 난다. 이제는 사랑이 두려운 중년의 늦가을에 찾아온 이 러브레터는 누구나 마음에 품고 있을 첫사랑의 감정을 자극한다.

 

 

김준모 기자| rlqpsfkxm@cinerewi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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