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 속의 고독, 소음 아래의 공포

영화 '공포분자'가 그려낸 현대상의 세 가지 키워드

임채은 | 기사승인 2020/09/11 [11:27]

군중 속의 고독, 소음 아래의 공포

영화 '공포분자'가 그려낸 현대상의 세 가지 키워드

임채은 | 입력 : 2020/09/11 [11:27]

*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씨네리와인드|임채은 리뷰어] 도시 속에서 사는 것은 고요 속의 외침게임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커다란 헤드폰을 귀에 쓰고 제시어를 정확히 전달하는 게임말이다. 우승을 위한 게임의 규칙은 단순하다. ‘헤드폰을 벗지 말 것’. 시끄러운 세상에서 우리는 서로의 말소리를 놓치고 입모양을 읽어보려다가 실패한다. 그리고 오해한다. “정답을 외치며 그럴듯한 단어를 내뱉어보지만, ‘오답이다. 귀를 막고 있는 헤드폰은 제대로 된 대화를 차단한다. 단호한 규칙 속에서, 삭막한 세상 속에서 오해만 늘어간다.

 

▲ '공포분자' 스틸컷  © (주)에이썸픽쳐스

 

'공포분자'에도 목이 터져라 자신의 존재를 외치지만 응답받지 못하는 인물들이 나온다. 그들은 존재자로 인정받기 위해 타인을 비방하기도 하고 불륜을 저지르기도 한다. 감독 에드워드 양은 현대를 살아가는 등장인물들을 한땀 한땀 엮어냈다. 그들은 어찌됐든 엮이기야 하겠지만 완성된 모습이 질기고도 튼튼한 양탄자일 보장은 없다. '공포분자'는 1986년에 만들어졌지만 어쩌면 지금, 이곳의 풍경일 수도 있다. 영화가 그려낸 현대상을 세 가지 키워드로 정리해봤다.

 

#소음

 

현대는 온갖 소음이 가득하다. 비행기, 자동차, 선풍기, 냉장고 등에서 흘러나오는 소리. 일상 속에 녹아들어 익숙해진 소음도 있지만,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것도 있다. 이를테면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까지 집어 삼켜버리는 지하철의 소음같은 것 말이다. 지하철을 타고 가다 소음 구간을 맞닥뜨리면, 작은 소리는 거대한 소음에 파묻히고 활발히 오고가던 대화도 중단된다. '공포분자'에도 일상을 가로지르는 여러 소음이 나온다.

 

 

▲ '공포분자' 스틸컷     ©(주)에이썸픽쳐스

 

 

한 건물에서 총소리가 울려 퍼진다. 뒤이어 사이렌 소리가 울리고 경찰차가 현장에 도착한다. 경찰은 진압을 시작한다. 사건 현장에서 한 소녀가 창문으로 도망쳐 나온다. 그 과정에서 다리를 다친 소녀는 얼마 가지 못하고 신호등 앞에서 정신을 잃는다. 시끄러운 총소리나 사이렌 소리와 대비되게 소녀는 어떠한 신음도 없이 조용히 하고 쓰러진다. 다른 곳에는 사랑하는 애인이 자신을 떠나, 수면제 한 통을 삼킨 여인이 있다. 그녀를 싣고 가는 앰뷸런스 소리는 그녀의 고통까지 삼켜버린다. 이렇게 현대인들의 신음은 다른 소음으로 대체된다.

 

 

#오해

사진작가 소년은 창문으로 도망치는 소녀를 프레임에 담는다. 셔터를 누름과 동시에 소녀에게 압도된다. 그는 애인을 떠날 정도로 사진 속 소녀에게 빠지고 만다. 그녀의 사진 조각들로 벽 한켠을 채워놓는다. , , , 귀 각각의 환상과 기대를 모아 그녀의 얼굴을 완성한다. 자신과 어울리는 사람이라, 자신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 오해하며. 하지만 소녀는 소년이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 '공포분자' 스틸컷     ©(주)에이썸픽쳐스

 

 

따르르릉. 째질듯한 전화벨이 울리자 소설가 주울분은 수화기를 든다. 상대방은 당신의 남편과 당신에게 할말이 있다며 남편 이립중의 불륜을 암시한다. 마음이 복잡해진 주울분은 상대가 제시한 약속 장소에 나가지만 그곳에 상대방은 없었다. 사실 그것은 장난 전화였고, 외출금지를 당한 소녀가 심심해서 벌인 일이었다. 하지만 주울분의 깊은 곳에 뿌려진 의심의 씨앗은 물을 주지 않아도 알아서 자라 혓바닥까지 솟아올랐다. 의심의 줄기는 그녀와 옛 연인과의 키스를 정당화하고, 남편에게 이별의 말을 내뱉는 데 일조한다. 부부생활은 그렇게 끝을 맞이한다.

 

 

#허구

현실은 고통이 가득하다. 주울분은 자신의 소설조차 읽어보지 않은 남편의 무관심에 지쳤다. 이립중은 과장으로 승진하기 위해 무엇이든 무릅쓸 수 있다. 그들은 사랑으로, 승진으로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길 원한다. 이런 욕구들은 고통을 수반한다. 고통이 가득한 현실에서 사람들은 허구로 도피한다. 우리는 현실과는 다른 결말을 기대하며 책을 읽고 영화를 본다. 때론 그 허구를 직접 만들기도 한다.

 

▲ '공포분자' 스틸컷  © (주)에이썸픽쳐스

 

주울분이 떠나고 혼자 남은 남편은 그제서야 아내의 소설을 읽는다. 그리고는 단순한 오해로 여자가 자신을 떠났다고 착각한다. 그는 소설은 허구라 단정짓던 사람이지만, 점점 소설과 현실을 혼동한다. 소설이 너무 섬뜩할 정도로 현실적인 탓도 있지만, 그가 현실과 허구의 차이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해서이기도 하다. 애초에 그의 관심은 아내가 아니라 승진에 쏠려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내도 떠나고 승진도 못 한다. 현실을 견디지 못한 그는 친구(고보명)에게 과장으로 승진했다며 거짓말을 하며 자신이 만든 허구 속으로 들어간다.

 

등장인물들은 거미줄처럼 가느다란 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관계의 줄은 끈끈하지도 않고 나약하다. 서로를 이해하고 있다는 착각 속에 살며 제대로 이해하기도 전에 상대는 떠나버린다. 이탈자에도 불구하고 삶이라는 게임은 끝나지 않는다. 상대가 발음하는 존재의 말을 듣기 위해, 우리는 우리 귀를 막고 있는 헤드폰을 벗어 던져야 한다. 비록 우승은 멀어지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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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은
씨네리와인드 객원취재부 기자단 4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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