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동그라미로 살아간다는 것 [Jeonju IFF]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질 를르슈 감독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

안지영 | 기사입력 2019/05/06 [08:11]

이 세상에서 동그라미로 살아간다는 것 [Jeonju IFF]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질 를르슈 감독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

안지영 | 입력 : 2019/05/06 [08:11]

여덟 남자가 검은색 가운과 검은색 수모, 검은색 수영복을 입고 나란히 수영장으로 들어온다. 수영선수일 거라고 생각했다면 그 추측은 틀렸다. 음악이 시작되면 남자들은 가운을 벗고 물속으로 뛰어들어가 군무를 보여줄 테니까. <세라비, 이것이 인생(2018)>의 주연을 맡았던 프랑스 배우 질 를르슈가 이번에는 메가폰을 잡고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을 연출했다. 중년의 남자들이 싱크로나이즈 수영(수상발레) 대회에 도전하면서 각자가 처한 위기를 돌파해내는 내용이다. 그저 흔한 코미디일 것으로 생각했으나 기대 이상의 감동과 청량함을 선사한 행운 같은 작품이었다. 

 

 

▲ 포스터     © 네이버 영화


서로 안 맞는 동그라미와 네모의 이야기

 

“확실한 게 없는 세상에서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네모는 동그라미의 틀 안에 절대 들어갈 수 없고 

반대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영화는 동그라미와 네모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선명한 눈동자, 터지는 폭죽, 둥근 가슴 등 동그라미에 해당하는 것들은 자유롭고 아름답다. 반면 성경책, 각진 교육, 날선 말 등 네모에 해당하는 것들은 규칙으로 동그라미를 뭉개버린다. 한 개인이 동그라미고, 사회가 네모라면 개인의 삶은 어떻게 될까? 영화는 동그라미가 네모의 세상을 살아가는 법에 관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네 귀퉁이가 모자라서 네모가 되지 못한 존재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네 귀퉁이가 모자라 네모가 되지 못한 존재들이다. 각자 어떠한 결핍으로 인해 사회의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동그라미들인 것이다. 주인공은 2년째 백수생활을 하며 가장으로서 인정받지 못한다. 수상발레를 함께 하는 다른 팀원도 모두 가정에 불화가 있거나, 빚쟁이이거나, 이방인이거나, 걸핏하면 무시당하거나, 이루지 못할 꿈을 가졌거나, 강박에 시달린다. 이들을 지도하는 두 코치 역시 각각 정신적 결핍과 신체적 불편을 안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이들은 모두 자신이 속한 사회나 가정에 완전히 녹아들지 못하고 삶을 부유한다. 

 

동그라미의 반격

 

동그라미들이 모여 수상발레에 도전한다고 하니 주변 사람들은 이를 비웃는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국제선수권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낸다. 각자의 장점으로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우고 함께 나아갔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은 사회의 기준에서는 뒤처진 부류였으나 각자 뛰어난 장점이 있었다. 어느 한 사람이 흔들리면 다른 사람들이 도전 정신, 따뜻한 관심, 강한 의지, 다양한 아이디어 등을 통해 그를 붙잡아줬다. 국제선수권 대회에 참가해 군무를 선보이는 장면에서 그들이 서로의 팔을 잡아 원을 만드는 모습을 정성 들여 화면에 담아낸 것은 이러한 함의를 보여주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결속과 성과의 기저에는 결핍에서 오는 좌절과 분노가 있었지만, 유대와 신뢰로 이를 이겨냈기에 그 과정조차 아름답다.

 

 

▲ 스틸컷     © 네이버 영화


네모의 틀에서 살아남은 동그라미

 

영화는 동그라미들에 관해 이야기 하고 있음에도 전형적인 ‘네모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흥행 공식에 맞는 무난한 장르와 진부한 스토리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장르는 누구나 보기 좋은 코미디와 드라마이고, 스토리 역시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감동적인 엔딩을 만들어내는 진부한 전개를 취한다. 심지어 섬세함이나 개연성이 부족한 부분도 포착된다. 남자 수중발레팀의 나머지 2~3명의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으며, 쟁쟁한 선수들 사이에서 금메달을 딸 수 있었던 이유도 온전히 이해되지는 않는다. 영화니까 저런 결말이 가능할 것이라는 씁쓸한 생각이 스쳐 지나가게 되는 것이다. 이럴 때 대개 영화는 관객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지 못한다.

 

하지만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은 특별한 경험을 주기에 충분했다. 우선,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의 코미디는 블랙코미디이다. 영화는 초반부터 개인들의 아픔을 충분히 설명함으로써 관객의 마음에 연민과 답답함의 벽을 쌓아올린다. 이러한 바탕 위에 코미디적인 요소도 비극적인 상황에 접목한다. 보험금을 타려고 차에 불을 질렀다가 몇 달 동안 보험료를 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거나, 물건을 훔치려다 걸리는 상황 등이다. 관객들에게 답답함을 해소할 만한 청량감을 주면서도 영화의 흐름은 해치지 않기 때문에 코미디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또한, 세련된 사운드 트랙과 동적인 장면들은 영화에 경쾌함을 더해주었다. 작곡가 존 브리옹(John Brion)이 작업한 곡들을 중심으로 배경음악이 영화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아무 대사 없이 수중발레를 연습하는 장면의 비중 또한 상당하다. 음악과 움직임이 영상의 분위기에 영향을 많이 주다 보니, 영화가 마치 한 편의 뮤직비디오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음악을 듣고 화면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경험이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저 함께 웃고 울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었다. 영화를 보다 보면 잘 해보고 싶어 노력할수록 일이 꼬여 신음하고, 자신을 미워하는 모습이 우리 자신과 같아 인물들에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 그래서 러닝타임 내내 그들의 도전을 응원하고, 성공에 함께 기뻐할 수 있다.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후 달라진 그들의 일상을 슬로우 모션으로 비춰줄 때는 통쾌함과 함께 울컥하는 마음이 차오르는 경험도 할 수 있었다. 조금 진부하고, 도식적이어도 누군가에게 울림을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은 영화가 아닐까?

 

동그라미로 살아간다는 것

 

사실 우리는 모두 동그라미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구나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느끼고 이를 바꾸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긍정적인 태도지만 때로는 결핍을 채우려 애쓰다가 삶이 다 지나가 버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자기 뜻대로 채울 수 없는 결핍이 존재할 때는 이를 인정하고 삶의 다른 영역에서 노력하는 지혜도 필요할 것 같다. 그래서 “의지만 있다면 동그라미도 네모 틀 안에 들어갈 수 있고 그 반대도 가능하다”는 엔딩 나레이션이 조금 아쉬웠다. 세상의 많은 동그라미들이 네모 틀과 상관없이 행복해질 날을 기대해본다.

 

[씨네리와인드 안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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