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잊혀가는 것들에 대하여, '뎀프시롤'은 웃프게 그 애틋함을 전달한다 [Jeonju IFF]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영화 '뎀프시롤'

강준혁 | 기사입력 2019/05/07 [10:05]

모든 잊혀가는 것들에 대하여, '뎀프시롤'은 웃프게 그 애틋함을 전달한다 [Jeonju IFF]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영화 '뎀프시롤'

강준혁 | 입력 : 2019/05/07 [10:05]

▲ 영화 '뎀프시롤'.     © 전주국제영화제

 

시대는 항상 변화한다. 세상에 있어 그 어떤 찬란했던 존재라 할지라도 결국은 서서히 잊히고 사라지기 마련이다. 우리가 즐거워했던 그 모든 순간들은 시간 속에 빚 바란 사진이 되어 소멸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간신히 들추어본 몇몇 기억은 사람들의 입 속에서 가끔이나마 추억으로나마 회자되고는 하겠지만, 대체로 그것은 아쉬움과 씁쓸함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지나간 과거일 뿐이다. 그렇게 우리는 매일 옛 것을 떠나보내고, 새로움을 좇아 탈바꿈을 갈망한다. 이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변모를 향한 구애’이다. 

 

그렇다면 과거라는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인 것일까. 물론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가끔 생각이 나 우연찮게 들추어보는 사진첩과 같이, 보이지 않으면 또 굳이 찾아보고 싶은 것이 바로 그 ‘사라지는 것들’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왜일까. 불멸이란 존재할 수 없는 것임에도, 왜 우리는 추억을 주억거리며 굳이 옛 일을 되뇌어보려 하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그 지나간 시대가 끝났다고 할지라도, 지금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끝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결국은 잊힐 수밖에 없는 존재라 할지라도 그를 그리워하고 또 소중히 하고 싶어 할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 영화 '뎀프시롤' 스틸컷.     © 전주국제영화제

 

영화 ‘뎀프시롤’은 그 그리움의 흔적을 집요하다 할 정도로 끈질기게 파고든다. ‘판소리’와 ‘복싱’이라는, 오늘날 기준으로도 “한 물 갔다”라 평가되는 소재가 결합되어 우스꽝스럽고도 신선한 자극을 준다. 그 판소리 복싱을 추구하는 병구(엄태구 役)는 ‘잊혀진 인물’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는 과거 전도유망했으나 지금은 펀치 드렁크에 따른 알츠하이머에 시달리며 자신의 옛 코치였던 박 관장(김희원 役에)게 얹혀사는 신세이다. 그는 과거의 영광을 잊지 못하고 복싱을 다시 할 수 있기를 갈망한다. 심지어, 그는 고장 난 TV를 자신에게 투영하고 “아직 쓸모 있는데 왜 버리냐며” 울부짖기까지 한다. 박 관장 역시 재개발 대상인 자신의 체육관을 포기하지 못하고, 또한 병구를 끝끝내 내버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외에도 영화는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꾸준히 안타까움을 표출한다. 병구를 양쪽으로 압박하는 장의사 건물, 헐값으로 팔리는 카메라의 필름, 관중 없는 복싱 신인왕전과 같이, ‘뎀프시롤’은 이미 우리에게는 옛 것으로 취급되어 사라지기를 기다릴 뿐인 대상에 연민의 어루만짐을 보내고 있다. 

 

이와 같이 과거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함을 전달하는 메시지는 병구가 언급하는 “단 한 번이라도 저와 함께 했던 사람들에게 의미 있어 보이고 싶어요”라는 대사로써 완성된다. 아무리 잊히고 사라진다 할지라도 결국 ‘사랑하기’를 그만 둘 수 없음을 명백하게 내비치는 것이다. 즉, 단지 아쉬움을 표출하는 것을 넘어, 지금 그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해 지금까지의 고마웠던 마음을 전달하고자 한다. 종반부 병구의 복귀전에서 그가 완성하여 토해내는 ‘판소리 복싱’은 그 감정을 폭발시키는 종착점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실패할 수밖에 없지만, 결국 환상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을지라도, 포기하지 않았기에 웃음을 지어내 보일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접근의 방식은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크게 갈릴 수 있게 하는 지점일 수도 있다. 더욱이, 본 영화가 동명의 단편 영화를 장편으로 리메이크 한 것을 감안했을지라도, 독립영화의 성격이 거칠게 묻어나는 탓에 앞서 언급하였던 지점들은 영화 전반에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어 아쉬움이 느껴진다. 웃음을 유도한 것 같은 장면도 가끔 서글프게 느껴지는 지점이 많은데, 만약 이것이 정혁기 감독이 희망했던 대로 ‘웃픔’을 전달하는 방식이었다면 매우 성공적이라 할 수 있겠지만, 완전한 코미디를 바랐던 사람들에게는 다소 의아함이 느껴질 수도 있게 한다.

 

▲ 영화 '뎀프시롤' 스틸컷.     © 전주국제영화제

 

다행스럽게도, 어찌 보면 뻔해 보이는 이 이야기를 무리 없이 끌고 나가는 것은 배우들의 열연이다. 이전까지 강렬한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역할을 자주 맡아왔던 엄태구는 이번 영화에서 소심하고 위축된 복서 역할을 맡아 완벽하게 이미지 변신을 이루어냈다. 특히, 엄태구 특유의 발성이 캐릭터의 어눌함과 훌륭하게 어울려져 확연히 다른 모습을 선보인다. 또한 작년 영화 ‘물괴’로 인해 연기력에 있어 많은 우려를 받았던 이혜리 역시 본 영화에서는 딱히 모난 모습을 보이지 않은 채 활기찬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두 사람이 키워나가는 연애의 감정 역시 자연스럽게 그려지며 알콩달콩한 모습에 미소를 자아나게 한다. 다만 그녀가 맡은 민지의 이야기가 영화 전반에 모두 녹여지지 않은 채 단순히 구직 서류 몇 장으로 지나간 것은 또 하나의 지적될 만할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의 제목인 ‘뎀프시롤’은 1920년대 미국을 풍미했던 유명 복서 ‘잭 뎀시(Jack Dempsey)’로부터 유래된 만화 속의 기술이다. 강렬한 위빙을 통해 묵직한 펀치를 날리며 상대를 타격하는 필살기지만, 정작 이 기술을 사용한 주인공 ‘일보’는 그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파멸하고 만다. 잭 뎀시 역시 좋지 못한 자기관리로 인해 현대 복싱 기술의 발전 이후 도태되고 말았다. 어찌 보면, 이 제목은 본 영화의 주인공인 병구에게 참으로 어울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지금까지 언급하였듯이, 영화는 절망만을 노래하지 않는다. 그를 뛰어넘어, 과거에 대한 소중함을 어루만지고 사랑할 것을 강조한다. 이 영화의 제목에 아직까지 ‘가제’가 붙어있는 까닭은 바로 그 때문이 아닐까. ‘뎀프시롤’은 오는 6월 정식으로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그 때 어떠한 새로운 이름으로 다가와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을지 기대해볼 일이다.

 

[씨네리와인드 강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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