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의 PC주의와 뮬란의 오류

김준모 | 기사승인 2020/09/29 [10:00]

디즈니의 PC주의와 뮬란의 오류

김준모 | 입력 : 2020/09/29 [10:00]

[씨네리와인드|김준모 기자] 최근 유행하는 단어 중 하나가 PC. PCPolitical Correctness의 줄임말로 정치적 올바름을 의미한다. PC주의는 정치적으로 올바르면서 인권이 고려된 차별과 편견이 없는 세상을 추구한다. 이 단어가 유행하게 된 건 다인종국가가 살아가는 미국의 상황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가 흑인 최초로 대통령이 된 것과 미투 사건이 터지면서 흑인 인권과 페미니즘 등 다양성의 가치가 PC주의로 연결됐다.

 

PC주의는 보수적인 성향이 짙은 아카데미 시상식을 무너뜨리는 쾌거를 이룬다. 여태까지 훌륭한 연기나 작품을 선보여 온 흑인 영화인들을 무시했던 아카데미는 제88회 시상식 당시 여론의 집중포화를 당했고, 89문라이트’, 90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91그린 북등 다양성의 가치를 담은 작품들을 작품상으로 택하며 그 가치를 수용했다. ‘문라이트는 흑인의 삶과 동성애, ‘그린 북은 이탈리아계 이민자와 흑인 연주자의 우정을 담았다.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은 농아와 괴생명체의 사랑을 비롯해 흑인과 동성애자 등 폭넓게 다양성의 가치를 담아냈다. 이런 아카데미의 변화가 있었기에 제92회에서는 동양권 영화로는 최초로 기생충이 작품상을 비롯해 4개 부문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게 된다. 이런 PC주의에 가장 충실한 제작사로는 디즈니를 뽑을 수 있다. 디즈니는 새로운 스타워즈 시리즈와 자신들의 클래식 애니메이션 실사화에 PC주의의 가치를 담아냈다.

 

▲ '블랙 팬서' 스틸컷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잠자는 숲속의 공주의 마녀 말레피센트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가 하면, ‘알라딘에서는 공주 자스민의 캐릭터성을 강화시켰다. ‘스타워즈시리즈에서는 로봇의 인간적인 측면을 강조하며 로봇과 인간 사이의 우정을 보여줬고, 흑인 주인공 핀과 중국인 캐릭터 로즈 티코를 추가하며 다양성을 더했다. 히어로 시리즈 어벤져스의 마지막 편에서는 여성 영웅들이 한데 뭉치는 장면을 통해 페미니즘적인 가치를 표현하기도 했다.

 

이런 디즈니의 선택은 세계적인 환호를 받았다. 그 절정은 블랙 팬서였다. 이 마블의 흑인 영웅은 그해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후보로 언급될 만큼 화제였다. 미국이 아닌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했다는 점과, 여성 전사들이 등장한다는 점 등 인종문제와 페미니즘 이슈를 적절하게 다루며 영화가 추구하는 다양성과 PC주의에 있어 디즈니가 한 발짝 앞서 있음을 보였다. 하지만 이런 디즈니의 PC주의는 역차별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북유럽 계열의 미녀 배우들을 배제하고 백인 배우가 맡을 수 있는 역할도 흑인으로 바꾸는 등 피부색과 인종을 이유로 캐스팅에 잡음을 일으켰다. 특히 디즈니의 대표적인 프린세스 캐릭터인 인어 공주의 에리얼을 실사화에서는 흑인 배우로 캐스팅하며 논란은 정점에 이르렀다. 그래도 할 말은 있었다. PC주의. 정치적 올바름을 위해 다양성을 추구한다는 그들의 입장은 적어도 일관성을 지녔다.

 

▲ '뮬란' 스틸컷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물란이 남긴 오점

 

뮬란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실사화 작품 중 가장 큰 기대를 모았던 영화다. 최근 디즈니가 추구하는 다양성의 가치, 그 중에서도 페미니즘에 가장 걸맞는 진취적인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모아나이전 포카혼타스와 함께 유색인종 프린세스 캐릭터인 뮬란은 중국 전승 문예 목란사에 등장하는 화목란을 주인공으로 한 캐릭터다. 화목란은 연로한 아버지를 대신해 정체를 숨기고 전장에 나가 무공을 세운 인물이다.

 

디즈니 프린세스가 왕자를 기다리는 수동적인 캐릭터가 대다수인 반면 뮬란은 남성의 세계에 스스로 뛰어들어 운명을 개척했단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디즈니 클래식 애니메이션 실사화 프로젝트 이야기가 나올 때부터 뮬란은 주목을 받았고, 루시 리우 등 액션으로 유명한 동양계 할리우드 배우들이 뮬란 역으로 물망에 올랐다. 그리고 실사화 된 뮬란은 중국 무협영화에 맞춘 표현과 디즈니의 다양성의 가치를 강화했다.

 

당시 인어공주의 흑인 캐스팅 논란과 비슷한 시기에서 뮬란역으로 중국의 미녀배우 유역비가 캐스팅 된 것에 대해 이야기가 있었다. 원작의 마스코트였던 용과 귀뚜라미를 빼고 뮤지컬적인 요소를 제거한 다음 무협의 장르적 구성을 택한 게 지나치게 중국을 의식했단 이유다. 배우 캐스팅 역시 공리, 견자단, 이연걸 등 중화권 내에서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배우들 위주로 캐스팅이 이뤄졌다.

 

▲ '뮬란' 스틸컷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이 점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있다. 중국은 현재 미국과 함께 G2로 불릴 만큼 거대한 경제시장을 형성했다. 할리우드 영화 역시 중국자본의 영향을 받을 정도다. 몇몇 작품의 경우 중국 개봉만으로 손익분기점을 넘기도 한다. 중국의 위력을 생각했을 때 이에 맞춰 흥행을 고려한 작품을 만드는 건 자연스런 일이다. 더구나 작품의 배경도 중국이며, 원작 역시 중국에서 가져왔다.

 

문제는 작품 외적인 부분에서 터졌다. 뮬란 역의 주연배우 유역비가 홍콩 시위에서 경찰을 지지하는 내용의 글을 SNS에 올리며 전 세계적으로 보이콧 운동이 벌어졌다. 홍콩 시위는 홍콩과 중국 사이의 범죄인 인도 법안에 반발하며 일어난 시위다. 중국 내에서 민주화 운동을 벌이거나 정권의 부패나 비리를 폭로한 인사들이 홍콩으로 도망칠 경우 이 법안을 통해 중국으로 송환될 수 있다.

 

이에 반발한 홍콩 시민들은 시위를 일으켰고, 이에 정권은 무력으로 시위를 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유역비는 시위대에 폭력을 행사한 경찰을 지지하는 SNS 글을 올리며 논란을 일으켰다. 민주주의가 추구하는 다양성의 가치는 디즈니가 추구해 온 PC주의의 일환이다. 유역비의 발언은 이에 어긋나지만, 개인의 일탈에 머문다. 디즈니 입장에서도 글로벌 흥행을 노리는 영화의 주연배우가 저런 글을 올릴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 그런데 중요한 건 다음이다. ‘뮬란은 일부를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촬영했다. 그리고 엔딩 크레딧에 이곳의 정부보안국에게 촬영에 도움을 줘서 고맙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 신장 위구르 자치구가 어떤 지역인지 안다면 이 디즈니의 행동이 그들의 가치를 스스로 훼손하는 어리석은 행동임을 알 수 있다. 신장지구 위구르족은 교화 수용소에 약 100만 명 이상이 구금되어 있으며, 이들에 대한 고문이 행해지고 있다.

 

중국 정부는 치안 개선 목적을 이유로 이들을 구금하고 있다고 하지만, 이유는 이들이 무슬림 소수민족이기 때문이다. 2017년 중국은 이곳의 800년 된 모스크를 폐쇄했고 많은 유산을 파괴했다. 그리고 위구르 언어를 학교에서 금지시켰다. 이렇게 중국은 민족 통일을 위해 소수민족에 탄압을 가하며, 아무런 잘못 없는 이들을 감금하고 고문해 사상교육을 시키고 있다. 국제사회가 이를 규탄하는 목소리를 낼 때, 디즈니는 고맙다고 말한 것이다.

 

 

▲ 애니메이션 '뮬란' 스틸컷  © 브에나비스타코리아

 

가치의 추구에는 책임이 따른다

 

이는 디즈니가 추구하는 다양성의 가치에 위배된다. 디즈니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회사다. 이런 곳이 중국 내 신장 위구르 문제를 몰랐을 리는 없다. 이는 결국 디즈니의 PC주의가 그들의 기조나 철학이 아닌 사업에 머무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심한 말로 하자면 돈벌이가 되니까 PC주의를 택한 것이다. 그들이 진정으로 이 가치를 중시하고 있었다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벌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뮬란은 중국 내에서의 흥행을 위해 중국의 미인배우를 주연으로 내세우고 무협을 주된 표현으로 삼는다. 반면 인어공주는 미국 내 PC주의와 흑인 인권 문제로 인종을 흑인으로 바꿔 주인공으로 만든다. 여기다 최근에는 피터팬의 실사영화 피터 팬 & 웬디에서 요정 팅커벨 역으로 흑인배우를 캐스팅했다. 그리고 디즈니는 이번 뮬란 위구르 사태에 대한 그 어떠한 해명이나 사과도 내놓지 않고 있다.

 

최근 미국사회의 문제점은 지나친 PC주의다. 자신들이 옳다고 여기는 걸 강하게 추구하며 이와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에게는 원색적인 비난을 가한다. 디즈니를 비롯한 글로벌 그룹과 사회의 리더들이 이 PC주의에 적극 동참하는 이유는 돈과 표가 되기 때문이다. 그들의 편을 드는 것만으로 확실한 내 편을 만들 수 있다는 건 불안한 시장경제와 정치 지표에 확실한 아군을 얻는 것이다.

 

디즈니는 PC주의의 가치를 내세우며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자신들의 히어로 영화를 올려야 된다고 주장했다. 그런 그들이 이 가치를 훼손하는 사건을 벌이고 말 한 마디 없다. 만약 이 문제가 흑인 또는 페미니즘과 연관되어 있다면 반응이 달랐을 것이다. 실제로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흑인 시위가 전 세계적으로 번지면서 인종문제가 화두에 올랐다. 이때 동양인의 미국 내 차별 문제가 거론되기도 했지만 흑인들은 이 문제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흑인의 인권이고 이는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PC주의의 다양성과 평등보다 자신이 우선인 건 모든 운동과 시위의 공통점이다. 인류애적인 가치의 추구는 참으로 높고 힘든 실현이 요구된다. 그럼에도 디즈니는 PC주의를 내세웠고, 결국 그 가치를 지키지 못했다. 그들 역시 PC주의에 편승해 이익을 보려는 근시안적인 시간을 지녔음을 이번 뮬란을 통해 보여줬다.

 

국내에서도 뮬란의 보이콧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디즈니 자체 OTT인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 공개됐지만 국내에는 극장에 개봉했다. 최근 할리우드 텐트폴 영화가 연달아 개봉이 밀린 상황에서 뮬란은 기대에 비해 낮은 성적을 기록 중이다. 디즈니의 가장 진취적인 프린세스는 스스로의 가치를 무너뜨린 디즈니에 의해 오점으로 남게 됐다. 이 오류는 디즈니가 수정해야 할 문제다.

 

 

김준모 기자| rlqpsfkxm@cinerewi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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